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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쉼'

by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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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심히 집 정리를 하다가 삐끗한 허리가 아직도 온전히 낫지 않아서 여전히 불편함을 안고 지내고 있다. 일어날때도, 누울 때도 조심스러워야 하고,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고... 집정리가 끝나면 마음에 두었던 일들을 열심히 해보자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몸상태로 인해 충분히 열정을 불태우기는 힘든 상황이 되버렸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일단 한 자세로 길게 집중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건만 그게 어렵게 된 것이다. 다행히 얼마전에 구입한 모션데스크가 있어서 앉아서 일하다, 자세를 바꿔 서서 일을 하는 것을 번갈아 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되긴 하지만, 앉아 있든 서 있든 허리에 문제가 없던 때보다는 쉽지는 않다.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새로 들여온 가구를 직접 조립하고 옮기다가 허리에 피로가 누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조립가구는 가격이 좋아보여도 결코 싼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건강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니까.)


다행히 처음보다는 조금 괜찮아진 듯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그 불편함이 오래가고 있음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병원에 몇번 방문한 것을 빼고는 몸관리를 제대로 못했다. 이렇게 다쳤을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임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는 매우 상식적인 충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요 며칠동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가구를 이동하고 재배치하는 일로 바빴다. 그러니 쉽게 낫기가 힘들 수 밖에. 또한 책상에 앉아 있더라도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쉰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낯선 일이었다. 그냥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어쩌면 평생 이런 식으로 살아왔겠구나 싶었다.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모르고, 가만히 모든 행위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무언가를 의욕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잘 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된다. 몸이 건강하려면 몸을 지휘하는 정신 건강이 좋아야 올바른 선택을 할수 있다는 것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건강에 관한 상념들이었다. 대통령은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가진 통치권자이다. 국민이 합의하에 그 한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그런 권한을 가진 대통령들의 건강은 어떨까. 일단 대통령이 된 인물들은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로 일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대중들은 그것을 바람직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어쩌다 여름 휴가를 가서 며칠 쉰다고 하면 '당신이 지금 그럴때냐?' 하며 쉬는 행위에 대해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없이 일만 하는 태도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불철주야'가 과연 '게으름과 무능함'의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작년에 일어난 계엄령을 떠올리며 다양한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 다른 모든 정치적 해석보다는 대통령이라는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그런 종류의 너무나 급작스러운 선택은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내몰렸을 때 내리는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만 있었더라면,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상황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어려운 순간이라도 좀 더 버티거나, 극단적이지 않은 다른 방안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언젠가부터 대통령이 된 분들이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고 있다거나 무리를 하고 있다는 기사가 날때면 그게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의 몸과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면 최선의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급에 있는 사람의 정신건강은 사실 혼자서 관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닌 것 같다. 사회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는 날카로운 바늘 방석 위에 앉는 것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생활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헤쳐지고, 인격모독을 당하고, 모든 잘못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그런 자리다. 그것을 상쇄할만한 영광이 있는가? 별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설령 임기를 마쳤다하더라도 안정된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수많은 재판을 받게 되고 결국 감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지 않았던가. 진보, 보수 이러한 이념적인 문제를 넘어서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인생의 후반이 그렇게 급격하게 초라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흐름이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정말 괜찮은 인재다운 인재가 그 자리에 오르려 할까?


한 대통령의 정책, 비젼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권리이지만, 건강한 비판을 너머서 '인간 혐오'로 치닫고, 그것을 열심히 부채질하는 언론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현재, 그리고 앞으로 올 우리나라 대통령의 정신 건강은 온전하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책을 펴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써야 하는 에너지를 온통 자기 방어를 하는 데 쓰게 될 것이다. 손해는 국민 몫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두번이나 탄핵이 되는 믿기 어려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어쨌든 대통령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랄까. 또한 지도자의 마음에는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한뼘의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 그 여유가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 모두가 대통령직에 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나 자신'이라는 왕국의 대통령이다. 내 집 하나 혹은 그냥 방 한칸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나의 자치령이다. 눈 밖에 있는 대통령을 비판하기 전에, 나는 내 왕국을 제대로 통치하고 있는지, 몸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결국 사람은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이다. 우리가 자치(self goverment)에 성공한다면,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의 수준도 차츰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As above, so below; as within, so without."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내면에서와 같이 외부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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