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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Sep 24. 2020

가지구이

단순한 건강요리

육아휴직 때는 아이에게 손수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복직하고 나서 손수 밥? 글쎄... 쉽지 않았다.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아침 준비와 아이 등원 준비를 해놓고 5시 반에 출근하고 나면, 퇴근 후 오후 5시 반에 주차장에 도착하여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찾으러 가기 바빴다.


아이는 한창 바깥에서 놀고 싶어하고, 어디서든 그토록 엄마와, 엄마와, 엄마와 함께 놀고 싶어 한다.

(이 시기엔 다 그렇다. 이 시기엔 사회성이 부족해서 엄마 외엔 함께 논다기보다 같은 공간에서 따로 논다.)

아이의 놀이가 그렇다 보니 엄마는 집안일을 잘하기 어렵다.

엄마는 아이와 7시까지 놀아주고 나면 이미 너무 지쳐서 침대에 눕고 싶지만, 밥을 먹이고 아이를 씻겨야 하고, 설거지에 빨래, 아이의 저지레로 엉망이 된 집도 정리해야 한다.

가사노동 중에도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

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었다.

복직하고 일 년 가까이 우왕좌왕하며 집안은 갈수록 엉망이 되었다.

유일하게 쓸고 닦는 시간은 주말뿐이었고, 그마저도 아이가 매달리거나 외출 계획이 있으면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기 일쑤였고, 필요에 의해 주문한 택배 물건들은 일단 쌓아놓고 시기를 놓쳐 못쓰게 된 것들도, 있는 줄 모르고 또 사는 물건들도, 잘 둔다도 뒀는데 찾지 못하는 일들도 생겼다.


어느 날,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죄책감이 밀려왔다.

복직 전에는 좋은 것만 먹이겠다며 이유식/유아식/간식 등 최대한 사먹이지 않고 직접 장봐와서 만들어 먹였는데 복직한 엄마는 돌변해있었다.

모든 것을 놔버린 채 성인식을 그냥 먹였고, 있는 반찬이나 주문한 음식에 나오는 것들을 최대한 잘 섞어 먹였다.

다행히 까다로운 입맛이 아닌 아이는 그간 잘 먹어주었다.

그러나 어쩌다 잘 먹지 않으면 엄마는 화가 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화는 아이에 대한 화였을까?


배우자를 돌아보니 배우자도 피둥피둥 살이 올라있지만, 뭔가 모르게 푸석했다.

담낭을 제거한 뒤로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만 먹으면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전에는, 매끼마다 신선한 채소를 곁들인 건강식을 챙겨 함께 했는데 지금은 외식에 인스턴트에 뻔한 배달 음식을 매일같이 먹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난장판이 된 집안과 쌓여만 가는 집안일

요리하기가 무서웠다.

친정엄마처럼 대식구 밥상을 뚝딱 차려내는 요리 고수도 주부 9단도 아니었기에, 나는 한 가지 요리를 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집안을 돌아보니 집안도 늘 엉망이었다. 아이가 간혹 재채기를 연달아하면, 집안이 너무 더러워서 비염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했다.

나는 일과 가정 어느 하나 잘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의 건강이 아니라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불편한 마음으로 내 상황을 돌아보며 고민하다가,


우선은 밥만이라도 하자.


잡곡과 콩을 섞어 밥을 하고, 조미가 덜 된 반찬을 파는 가게를 물색하여 반찬을 네 종류씩 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반찬을 한 가지씩 해 먹게 되었는데, 5분이면 끝낼, 한 끼 수준의 반찬이었다.


첫 번째가 '가지구이'였다.

준비재료 : 가지, 소금, 오일

1. 물기 없는 가지를 2등분하여 약간 도톰한 크기로 넙적넙적 썬다.

2. 도마 위에서 바로 가지의 넓적 면에 허브솔트(또는 모든 종류의 소금_맛소금 제외)를 뿌려준다.

3. 팬 달군 후 약불로 줄이고 버터나 들기름(또는 갖은 종류의 오일)을 얇게 둘러 소금을 뿌리지 않은 면부터 가지가 닿게 올린다.

4. 색상이 약간 반투명 하지면 반대로 돌려 마저 굽는다.

가지를 매우 좋아하는데, 가지를 무쳐먹으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지를 볶든 무치든 그 시간도 부담스러웠고, 식재료를 준비하고 양념을 하는데도 시간이 소요됐다.

단순한 가지구이

버터나 들기름의 고소함 때문인지 소금의 짭조름함 때문인지 매우 맛이 있었다.

(그렇다고 짠 음식은 아니다. 가지가 혀에 닿았을 때 겉면에 묻어 있는 소금 때문에 짭조름하게 껴질 뿐, 실제로는 담백했다.)

가지구이는 다행스럽게도 나뿐 아니라 배우자와 아이도 잘 먹어서 자주 해 먹는 요리가 되었다.


가지는 날로 먹을 수 있는 채소이므로 덜 익혀서 먹어도 괜찮다.

가지를 너무 익히면 담을 때 부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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