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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Sep 16. 2020

콩국수

200719

여름이면 시원하게 한그릇 먹기 좋은 음식으로 생각나는 것 중에 냉면, 냉모밀과 더불어 콩국수가 있다.

밖에서는 잘 안사먹게 되지만, 여름별미로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 콩국수다.

하지만 콩국수를 집에서 만들어먹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콩을 불리고, 삶고, 헹구고, 껍찔을 골라내고, 갈아서, 비지를 제거하고 먹어야하는 과정은...


그래서 나는 삶은 콩 그대로 착즙기에 착즙해 먹지만..

그 맛은 엄마의 콩국수에 비할 바가 못된다.


오늘도 여느날처럼 딸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는데, 평소보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오늘 네가 좋아하는 콩국수 해먹자."


라는 소리에 신이 났다.

목넘김이 매우 부드럽고 우유처럼 뽀얀데도 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마표 콩국은 여름에나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이제 연세가 있다보니 자주 못해주시는 음식이다.


엄마가 콩을 폭폭 삶아서 믹서에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삼십년도 더 된 일이 생각났다.

맷돌에 삶은 콩을 넣고 물조금 붓고 소금을 솔솔 뿌려 어처구니를 스르륵 스르륵 돌려주자

아래쪽에선 뽀얀 콩물이 비지와 함께 섞여 나왔다.


"할머니, 이게 뭐야?"


나는 이때 맷돌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아랫돌은 가만 있고 윗돌만 스륵스륵 도는게 무척 신기했다.

내가 돌려보겠다고 할머니 어처구니를 빼앗고 돌려보니 여간 무거운게 아니었다.


은비녀로 잿빛의 머리를 쪽지고, 모시적삼을 입고 고무신을 신으셨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는 흰머리가 싫다며 연한 붉은 빛이 돌게 염색하고 약간의 펌을 했다.

상의는 요즘 나오는 시원한 소재의 티를 입고 아랫도리는 그런 소재의 몸빼에 슬리퍼를 신었지만

어째서 콩국을 할 때마다 맷돌을 돌리고 비지를 빨던 할머니 모습이 보이는걸까?




친정엄마표 콩물을 가져온다는 소식에 저녁도 안먹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오자마자 말아줬더니 단숨에 후루룩 먹어치운다.


오늘 엄마의 콩국수는 '고소함의 극치'


뼈마디가 툭툭 불거진 손으로 고운 면보에 손수 빨아서 만든 콩국엔 맑고 진한 부드러움에 고소함과 소금을 간간히 더해 만든 정성이 짭쪼름하게 베어있다.


엄마가 내내 빨아서 만든 콩국을 맛 보라시길래, 냉큼 에 한 국자 받아서 소금 풀어 먹어보고는 그 맛을 세 살배기 딸아이에게도 맛보이려니

"우유?" 하고는 한모금 마시고 "아 매워"라며 안먹으려 한다.

이 좋은 걸...


"이건, 할머니 우유야.

 지금 안먹으면 앞으론 못 먹을 수도 있어."


라며 다시 주니 잠시 망설이듯 날 쳐다보다가

"할머니 우유?"라고 따라 말하고는 홀짝홀짝 다 마셨다.


그래, 넌 세 살이니까 아직 이 맛을 기억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종종 먹게 되어서 네가 컸을 때에도 '할머니 우유'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내 딸이 나처럼 엄마의 엄마 콩국도 기억할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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