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세시 Sep 17. 2020

마법의 호수

200711

옛날 옛날에,


해가 매우 뜨거운 여름이면 엄마는 아침 일찍 봉당 샘터 빨래를 가득 안고 나

아주아주 커다란 고무대야에 넣고 물에 푹 잠가두었다.

엄마가 빨래에 누런 비누를 칠해서 방망이로 처덕처덕 두들기면 흠씬 얻어맞은 빨래는

새하얀 거품을 연신 내뱉으며 곤죽처럼 퍼졌다.

아이들은 엄마의 방망이 질을 지켜보다가 고무대야에서 흘러 넘치는 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는

거품을 쫓아갔다.

다급히 그러나 살그머니 두 손으로 거품을 들어서,  벗고 시원하게 물살 따라 너울너울 춤추는 빨래에 다시 입혀주었다.


엄마는 빨래가 끝나면 집처럼 큰 대야를 씻어 물을 가득 받아 놓았다.

아이들은 점심에 나가서 땀을 조록조록 흘리도록 놀고 그 땀이 허옇게 마르도록 산으로 들로 바람을 쏘이다 허기가 지면 들어왔다.

엄마는 아이들이 대문에 들어서면 옷부터 훌훌  고무 대야로 떠밀었다.

희뿌연 회색의 샘터에 덩그라니 놓인 고무대야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빛으로 더욱 빨갛게 물들었고, 제법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볕에 물을 데우려고 받는 중 물장난으로 홀딱 젖었다.

"이야아아!!!!!"

아이 둘은 온종일 해가 데 둔 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었다.

잠수도 하고 물싸움도하고 물방귀를 만들어 장난치고, 개구리처럼 팔짝이며 물보라도 일으키다 시들해지면 물밖으로 나와 두리번 거렸다.

아이 한명이 먼저 봉당 가장자리에 쪼록 심어 둔 봉숭아 꽃을 따자 따라서 국화 잎이며, 얼굴보다 큰 백합도, 쑥부쟁이든 장미든, 분꽃에 능소화, 더러는 엄마가 잡초라고 뽑아버리는 까마중 열매랑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꽃과 잎사귀까지 모양모양 색색이 저마다 다른 것들을 따다가 대야에 던져 넣었다.

꽃과 잎사귀를 넣은 마법의 호수

"이건 마법의 호수야."

키가 더 자란 아이가 빨갛고 파랗고 물들어가는 열매들을 넣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마법의 세계로 여행을 하다, 하늘의 구름까지 마법처럼 분홍으로 물어서야

엄마의 우악스런 수건놀림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그들은 내내 저녁을 먹을때도 오늘의 아름다웠던 호수를 생각하다 어두운 밤이 되면 다시 새근새근 마법의 세계로 떠났다.




그 아이 커서

오늘,

아이에게서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그렇게 커보이던 이 다라가 이렇게 작았었나..?

물에 꽃과 잎을 따다 넣어 꾸며주고는

"이건, 마법의 호수야."

라고 말해주었지만

말배우기 바쁜 아이는 그 말을 읊조리듯 따라할 뿐이라

엄마는 이이에게서 아직 그 세계를 다시 소환할 수가 없다.


날씨는 마법을 부린듯 그때처럼 좋은데,

지금은 보다 더 키가 자란 동생도 곁에 없고,

엄마는 더이상은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의 물놀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뜨거운 센치함이 밀려오는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