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새로운 영웅

엄마가 은퇴했다

by soulsum

우리 집만의 독특한 호칭이 있다. 남동생을 ‘엄마아들’이라 부르는 건데, 포장하자면 아랍인들이 이름을 짓는 것처럼 엄마를 중심으로 호칭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남동생은 엄마 아들, 남동생의 부인은 엄마 아들 사모님. 가끔 엄마 아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자매님은 ‘너네 엄마 아들’, 엄마 아들 사모님은 (조카 이름을 넣어) 이시은 모친이라고 부르곤 한다. ‘아들, 밥 먹어’ ‘아들, 일어나’처럼 엄마가 아들만 따뜻하게 부른 데서 시작된 호칭이다. 옛날 사람이니 남아선호가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렇다고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아들은 소시지와 계란말이를 주고 딸들에겐 김치만 주는 식의 극단적인 차별을 했던 건 아니다. 출가한 아들은 며느리 소속으로 이관된 것과 같음을 엄마 아들 결혼 후 엄마에게 누누이 말해온 덕인지 엄마는 아들과 감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적정 거리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요즘 엄마에게, ‘아들 밥 먹어’를 말할 때의 나긋나긋하고 폭신폭신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다. 엄마 아들의 아들 얘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엄마의 시계는 드라마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가게는 10시 드라마가 끝난 11시가 돼서야 닫았고, 대학생이었을 때는 일일 연속극이 끝난 9시가 돼서야 닫았다. 중독성 강하다는 아침드라마에 맛을 들인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돌아가신 후 집에 한 달을 머물렀던 고모 영향이니, 꼬박꼬박 챙겨 보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7~8년 정도일 거다. TV를 볼 때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는 자매님과 달리 장사하면서 띄엄띄엄 시청했던 엄마에게 드라마는 킬링타임용이었던 것 같다. 손님이 없는 날은 없어서, 많은 날은 많아서 일찍 문을 닫을 수가 없다고 했다. 문을 여닫는 시간이 일정해야 손님들이 헛갈리지 않고, 그것이 가게 주인이 지켜줘야 하는 일종의 예의라고 여겼던 것 같다. 손님이 적을수록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가게를 그만두기 전까지 엄마는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도 잔뜩 찌푸린 채로 보곤 했다.


은퇴 후 문화센터와 복지회관의 다양한 강좌에 발을 들인 엄마는 은퇴 2년 차에는 노래교실에 나갔다. 음주가무에 재능도 취미도 없는데 웬 노래교실이냐 물었더니, 함께 어울리는 아주머니들의 원픽이 노래교실이라고 했다. 코어 근육을 길러준다는 체육교실에 함께 등록해준 것에 대한 보답 같은 거라고 여겼다. 보다 점잖은 취미생활을 하길 바랐던 나는 노래교실에서 받아왔다는 책자를 뒤척이며 한발 물러서 ‘그래, 엑셀보다 낫다. 대체 액셀은 왜 배우는 거야’ 물었다. ‘가계부 컴퓨터로 쓸 거야!’ 엄마는 확고했다. ‘그럼 노래교실은 노래자랑 나가려고 배우냐’ 했더니, 처음엔 딱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한두 시간 손뼉 치면서 노래하고 깔깔 웃다 보면 소화가 잘 되는 것 같아 다음 학기에도 계속 다니겠노라고 새침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가 말했다. 지금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치매에 걸리는 거라고 한다. 가게를 할 때는 외상 장부를 적고, 새 물건 가격을 외고 계산을 하면서 나름 머리를 썼었는데, 1년을 놀다 보니 머리를 쓸 일이 거의 없어진 것 같다고. 낮에 빈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멍한 상태가 되는데,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했다. 아무리 배워도 다음 날이면 다 까먹는 엑셀보다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 가사를 외다 보면 뇌를 계속 사용하게 되니 치매를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나. 유튜브로 노래 검색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매님의 노래방 마이크 연동 법도 알려줬다.


2월이 되면 엄마는 바쁠 예정이었다. 노인복지회관에 카페가 문을 열면 파트타이머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방생 기도를 간다며 전국의 유명 사찰을 다녀야 하고, 작은 텃밭에 파종도 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닫혔다. 어린이집 교사인 자매님은 특히나 더 주의를 줬다. “00어린이집 교사 XX 지역 최초 감염, 70대 노모에게 전염된 듯, 모친은 목욕탕, 절, 음식점 등을 다니며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은 것으로 추정” 이란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틈날 때마다 마스크 쇼핑을 다녔고, 하루가 멀다 하고 손소독제와 세제를 사들였다. 연장자에게 치명적이라는 얘기에 자매님은 엄마에게 외식 금지와 미팅 금지령을 내렸고, 엄마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로 실천하면서 집에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숨이 깊어갈 때 엄마에게 영웅이 생겼다. 엄마아들보다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상은 TV 속에 있었다. <미스터 트롯> 애청자가 된 거다. 9시만 되면 하품을 하면서 10시까지는 버텨야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수 있다며 졸음과 사투를 벌이곤 했던 엄마가 새벽 1시까지 자매님 못지않은 집중력으로 <미스터 트롯>을 시청했다. 노래 가사가 안 외워진다며 짜증을 내던 사람이 맞나, 엄마는 출연자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웠다. 신기해서 옆에 앉아 맞장구를 치니, 지난 경연에서 저 출연자가 무슨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잘했는데 이번에는 선곡이 별로다, 저 출연자는 까불면서 춤을 추는데 분위기 메이커다, 저 출연자는 성악을 했다는데 아줌마들이 좋아한다 등등 관전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다시 TV에 집중하는데, 이번에는 평이 없다. 영웅이다, 엄마가 엄마아들만큼이나 따뜻하게 쳐다보는 출연자 임영웅의 무대였다.


<미스터 트롯>은 재방송을 정말 많이 했다. 이미 여러 번 본 방송도 엄마는 처음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봤고, 자매님은 그게 불만인 듯싶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여기기로 했다. 엄마가 아는 노래가 늘었으니 무서워하는 치매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게 됐다고 믿으면서. ‘미스터 트롯 콘서트 하면 내가 티켓 예매해 줄게, 아줌마들이랑 갔다 와’ 장윤정 디너쇼도, 나훈아 디너쇼도 싫다던 엄마가 ‘무슨~ 괜찮아~’하면서 말끝을 흐리면서 ‘언제 하는데?’하고 묻는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전국투어 할 거야.’ 아이돌 팬질과 농구&야구 예매로 다져진 클릭근 보유자로 티켓팅은 자신 있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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