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없는 여자

엄마가 은퇴했다

by soulsum

엄마는 꼼꼼한 성격이 못 된다. 먹는 것이든 쓰는 것이든 모자란 것보다 남는 것이 낫다는 주의라 ‘손이 크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타인에겐 관대하나 자신에겐 박한 엄마의 소비 스타일을 두고 자매님은 ‘허세’라 부른다. 꼼꼼하지 못하나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엄마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손해는 오롯이 엄마 자신이 뒤집어쓴다는 거다.


얼마 전 엄마는 요로결석으로 수술을 했다. 2004년과 2005년에도 몸에 돌이 생겨 수술을 했으니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평소 같으면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느니 운동 부족이라느니 잔소리를 해댔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엄마는 칠십 대의 할머니였다. 보통은 점심시간에 수술을 하고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하다 퇴근한다는데, 엄마는 돌아와 꼬박 하루를 앓다가 다음날 동네 병원에 입원했다. 울렁증과 매스꺼움은 결석을 레이저로 잘게 부순 후 몸 밖으로 배출되기까지 겪는 흔한 증상이지만, 밥을 못 먹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자 겁이 난 모양이다.

말만 해도 기운 빠진다며 휴대폰을 무음에 놓고 전화를 피하던 엄마는 입원 3일째가 돼서야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자매님 말로는 엄마가 기운을 차리자마자 병원비를 걱정 중이란다. 은퇴 후 매월 정해진 한도 내에서 지출을 관리해야 하는데 이런 지출은 예산에 없었나 보다. 마침 고료를 받은 게 있어 병원비 반을 보탤 테니 걱정 말라하면서 물었다.


근데 엄마는 보험이 없어?

가족이 보험의 필요성을 처음 깨달은 건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아빠는 꽤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옮길 때마다 다른 병명을 추가하곤 했다. 당시 우리는 병원비를 의논하기에 너무 어렸고, 시간이 한참 지나 엄마가 말하기를 ‘보험 하나 없이 병원비를 내느라 힘들었다’ 했다.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르자마자 한 일이 자매님과 나, 엄마아들의 암보험을 드는 일이었다. 추가할 수 있는 특약을 모두 추가했다. 십여 년이 지난 후 엄마아들에게 보험설계사 절친이 생기면서 당시 우리가 가입한 보험이 얼마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건지 알았고, 전문가의 말에 따라 해지할 건 해지하고 유지할 건 유지하면서 보험 내용을 바꿨다. 실비 보험 얘기도 그때 처음 나왔는데, 자매님과 내가 쉽게 가입한 것과 달리 (아, 나는 프리랜서라고 한 차례 거절당했었구나!) 엄마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의 지병이 있고 나이가 많아 거절당했단다. 꼬박꼬박 약 잘 먹고 잘 관리해오던 혈압도 보험 거절 앞에 살짝 올랐다 내려왔다고 한다.

친구 아버지 장례를 보러 시골집에 들른 엄마아들이 뒤늦게 엄마의 수술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이상하게 아픈 걸 엄마아들 가족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애 둘 키우며 빠듯한데 엄마까지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아니꼬운 부분이 없진 않으나, 엄마 며느리고 엄마아들이니 엄마가 알아서 하는 게 맞다고 여기기에 딴죽은 걸진 않는다. 엄마아들 역시 나처럼 물었다고 한다.


근데 엄마는 보험이 없어?


엄마는 가입한 보험이 몇 개 있으나 (거절당해 억울하지만) 실비보험이 없고, 여느 보험도 수술이나 입원을 보장해주는 게 없다고 말했다. 엄마아들은 보험설계사 친구에게 전화해 이것저것 물었고, 엄마가 가입한 보험 중에 수술비 지원되는 것이 있음을 알아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수술비와 입원비 대부분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답도 얻었다. 병원비를 되돌려 받게 되자 자매님은 아이고, 내가 효도 할라 했는데 기회가 없네! 하고 좋아했다.

며칠이 지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2004년에 담낭에 돌이 생겨 응급수술을 했고, 이듬해에는 신장에 돌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2004년 수술 당시에도 해당 보험에 가입해 있었고, 이런저런 서류를 떼 보험금을 청구하러 갔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입원비만 하루 1만 원씩 지원되고 수술비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그랬기에 2005년 수술 후 3일 입원했던 비용은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고. 보험사 놈들이 이미 가입한 보험의 혜택 범위를 자진해서 넓혀줬을 리 만무하니, 필시 2004년 사건은 보험사 직원의 실수가 자명해 보였다. 2004년에 보험사 측에서 실수를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2005년 보험비를 청구하지 않은 것이니 그것 역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엄마는 꼼꼼한 성격이 못 된다. 자매님은 지난 2주 동안 병시중 아닌 병시중을 드느라 녹초가 됐(다기보다 본투비 귀차니즘 탑 클래스)고, 엄마아들은 치밀하지 못하다. 잘잘못을 조목조목 가려 미지급받은 보험금까지 수령하려면 쌈닭이 필요했다. 그렇다, 내가 우리 집 공식 쌈닭이다. 시골집 옆집이 공사하는데 철조 구조물을 상의도 없이 우리 집 담장 안으로 설치했을 때도 엄마와 자매님은 속으로 끙끙 앓다가 서울에 있는 내게 전화해 와서 해결해 달라고 SOS를 친 적이 있다. 왜?! 내가 공식 쌈닭이니까!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기 전 태세를 갖추기 위해 엄마에게 보험증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약관부터 꼼꼼히 살펴보고, 가입 이후 바뀐 약관이 있는지 체크할 요량이었다.

따박따박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하던 엄마가 메시지를 확인하는 간격이 점점 멀어지더니 읽씹을 시전 하기에 전화해 따졌다. 대 보험사를 상대로 전투를 앞둔 이 중차대한 시점에 읽씹이 말이 되느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아니- 보험증서를 보니까 2003년에 가입을 했더라고, 그때 보험금 청구하러 갔을 때 가입한 지 1년이 안 돼서 혜택을 못 받는다고 했던 거 같아, 입원비가 하루 3만 원인데 1만 원만 지급됐던 것도 그 때문이고... 그건 그렇고 재작년에 한 녹내장 수술비도 지원해준대, 얼마나 다행이야.... 여하튼 너 올 거 없어, 엄마아들이 와서 휴대폰으로 청구해준대....라고 쓸개 없는 여자처럼 말과 말 사이로 배시시 웃으며.

평생 쓸개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상실감에 그즈음의 사건들은 흐릿하게 기억하게 됐다는 엄마. 맹장만 떼어내도 설명할 수 없는 헛헛함에 시달리게 마련인데, 쓸개 없는 여자의 슬픔을 네가 어찌 아느냐는 투의 뻔뻔함. 그제야 엄마는 보험사가 얼마나 큰 회사인데 주먹구구식으로 보험료를 지급하겠느냐며 외려 역정을 낸다. 이전까지는 보험설계사 개인의 능력이 보험금 지급 여부와 액수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하더니, 췟!

50대 후반에 깬 결석과 달리 70대 초반에 깬 결석은 엄마의 몸과 마음에 치명상을 남겼다.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오래 하려면 체력이 우선이라고 하루에 두어 시간씩 하던 가벼운 운동을 멈추자 체력은 급격히 약해졌고, 입원 직후 2~3일 죽만 먹으면서 체중도 급격히 감소했다. 잘 먹으면 금방 체력을 회복하던 50대 후반과 달리 지금은 아무리 잘 먹어도 다시 힘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보험 사태가 마무리되고 내가 말했다, 크든 작든 같은 증상으로 수술을 세 번이나 한 거면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 거다, 물을 적게 마셔 생긴 병이라니까 억지로라도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엄마는 허허 웃으며 움직이면 뱃속에서 파도가 칠 정도로 물을 많이 마시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엄마의 가게가 있던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오래된 한옥을 도로 쪽만 리모델링한 집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대문 안쪽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남의 집 드나드는 것 같다며 꺼려했다. 공중화장실은 가게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더럽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았다. 무엇보다 그 잠깐 사이 손님이 다녀가진 않을까 걱정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물을 적게 마시면 화장실 갈 일도 없는 거다. 재건축을 하면서 가게 안에 화장실을 지어준다고 했지만 엄마가 거절했다고 한다. 창이 한쪽으로 난 집에서 덥고 습한 날의 화장실 냄새를 어찌 관리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물을 적게 마시는 것은 직업병이고, 담석은 산재처리를 해야 마땅하나 엄마가 오너였기에 하소연할 데는 없다.

엄마가 쓸개 없는 여자로 산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다가 홍천에서 원주를 거쳐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 병원까지 왔을 때 우리는 누구도 보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말로 뱉지 않았지만, 엄마가 쓸개 없이 살아갈 날을 걱정했던 것처럼 우리는 엄마 없이 살아갈 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서 말했다, 아깝다. 지난 보험비까지 다 청구해서 반띵 하자 할라 했는데. 엄마가 답했다, 보험료도 내가 내고 병원비도 내가 냈으니 넌 거마비 정도만 챙겨줄 생각이었다, 고. 딸년에게 보험료 청구소송을 (야매로) 대행시키면서 5만 원에 퉁치려고 하다니! 간 옆에 쓸개를 떼어 내더니 세상살이가 대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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