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은퇴했다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엄마는 의식을 치르듯 이불을 빨고 행주를 삶는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익어가는 동안 예전에 삶아서 말려둔 행주를 꺼내고, 세탁기를 돌린다. 널어둔 이불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과 숟가락을 삶을 때 넣는 세제 냄새를 맡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을 며느리에게도 나눠주고픈 거겠지, 엄마는.
절에 나가면서 소원해졌지만, 한때 엄마는 큰일을 앞두고 점을 치러 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5만 원짜리 희망’ 대신 고기를 사 먹는 게 이롭다 했지만, 엄마는 고민 않고 희망 쇼핑을 택했다. 5만 원짜리 희망을 ‘야매 청심환’이라 바꿔 부르기 시작한 건 엄마의 간절함을 알고 나서부터다. 희망 섞인 도사님의 한 마디가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면 나쁘지 않은 거니까. 엄마의 덧없는 쇼핑 덕분에 자매님과 나는 한 차례씩 개명 위기에 놓였었고, 누군가는 손금을 새로 그리는 시술을 받을 뻔도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고민으로 가져다준 돈이 꽤 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도사님으로 인해 가족이 겪은 물리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언젠가 도사님을 알현하고 온 엄마는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도사님이 엄마더러 ‘장군 사주’라고 했단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세울 사주인데, 전쟁 없는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으니 사업가로 대성할 팔자라나. 도사님은 배포를 크게 갖고 사업을 크게 키워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하필 장군 사주에 쫄보 심장이 장착되는 바람에 엄마가 도사님 말씀을 이행하지는 못했지만,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그즈음의 엄마는 꽤 오랫동안 5만 원짜리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분명 도사님은 ‘번만큼 새는 곳도 많다’고 했지만, 듣기 싫은 말은 쿨하게 귓등으로 흘려버린 듯했다. 장군다운 배포로.
점괘를 믿는 건 아니지만, 큰 빚지지 않고 애들 셋을 대학까지 가르쳤으니 어쩌면 엄마 사주는 장군이 맞을 수도 있다. 살림 솜씨에 비해 돈 버는 재주가 좋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엄마는 가끔 어린 시절 얘기를 했는데, 엄마의 할아버지는 소작농 열댓을 부리며 크게 농사를 지었는데 그 안 살림을 큰 이모와 둘이 맡아 했노라고 했다. '며느리에게 소박맞기 좋은 시어머니상'이라 놀림받을 만큼 손이 큰 편이니 큰살림을 했었다는 게 완전 거짓말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해 그 큰살림을 꾸렸던 건 큰 이모고 엄마는 당시 철딱서니 없는 동생 1에 지나지 않았을 거다. 사실 엄마는 살림에 소질이 없다.
그런데 비위가 약하다. 비위가 약하다는 것에는 ‘내가 더러운 건 참아도 남이 더러운 건 못 참는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엄마에게 청소란 ‘몸에 닿는 곳’을 열심히 치우는 것을 말한다. 엄마아들 가족의 방문에 앞서 이불을 빨고 행주를 삶는 것도 '할머니 집에 놀러 왔다 배앓이했다'라고 할까 겁나 입에 들어가고 몸에 닿는 것들을 치우는 거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과 냉장고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나 찬장에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는 그릇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보기 싫은 물건은 베란다에 내놓고, 테이블 위의 물건들은 잠시 바닥에 내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올려둔다. 엄밀히 말하자면 청소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리를 못하는 거다.
엄마에겐 청결의 마지노선이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수건과 행주, 걸레를 자주 삶았다. 늦게까지 장사하고 들어와 행주를 삶느라 눈꺼풀이 무거워 5분 간격으로 '넘치지 않는지 봐'라고 잔소리를 해지만 괜찮았다. 빨래를 삶고 나면 며칠씩 집에서 비누 냄새가 났고, 마음까지 뽀송뽀송해지는 그 냄새가 나는 좋았다. 명절이나 행사 때 여러 사람이 집에 다녀가면 내놨던 숟가락과 젓가락을 삶았고, 소파 커버와 발 매트를 빨았다.
엄마가 은퇴한 뒤 집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칼라행주의 등장이다. 공짜로 얻어온 게 많았지만,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데 삶을 수 없어 비위생적이라며 사용하지 않던 거다. 컬러도 하나 같이 불량식품 같다나. 칼라행주와 함께 청소포와 물티슈도 등장했다. 자매님이 걸레 빨기 귀찮다고 사들이기 시작한 건데, 이젠 엄마의 최애가 됐다. 편하고 때도 잘 진다고 좋아한단다.
'으아악-' 과일 주스를 갈다가 엎지르는 바람에 행주로 닦을지 걸레로 닦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가 물티슈를 내민다. 이걸로 대충 걷어내고 걸레질을 하라는 손짓과 함께. 바닥을 닦고 식탁에 튄 주스 잔해를 닦아내는데 세제가 묻은 물티슈라 그런지 찌든 때가 묻어 나왔다. 엄마 얼굴께로 들이밀며 왜 식탁을 제대로 닦지 않느냐고 따졌다. 엄마는 조금 전에 밥 먹고도 닦았다며 당당하게 답한다. 이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실 녹내장 수술을 한 뒤로 예전처럼 시야가 맑지 않다고 덧붙인다. 바짝 성질을 부린 게 멋쩍어 물티슈를 손에 쥔 채 쭈뼛대자 엄마는 '안 보이는 건 없는 거'라며 웃는다. 그러고는 식탁을 닦으러 돌아서는 등에 대고 말했다, 행주 말고 물티슈로 해, 빨기 귀찮아.
비위가 약한 엄마는 요즘도 식당 청결 상태가 좋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먹기 싫은 음식을 먹고 나면 며칠 씩 배앓이를 한다. 자매님 말로는 눈 수술 후 ‘눈에 뵈는 게 없어’ 채하는 날이 줄었다고 하지만, 시각이 흐릿해진 대신 후각이 더 또렷해져 아직도 주기적으로 크게 배앓이를 한다. 예전에는 왜 곱게 자란 것처럼 유난이냐고 타박을 했는데, 나이가 들고 나서는 엄마가 후각이 예민한 건 장사하느라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해 생긴 고질적인 위장병 때문이고, 가리는 음식이 많은 게 아니라 음식 경험이 부족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낯가리는 음식이 많은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상처가 되는 말을 뱉지 않는다.
요즘 엄마는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칼라행주를 말려서 개켜 두고 면 행주를 꺼낸다. 사용하던 것 대신 삶아둔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고, 이불 빨래를 한다. 여전히 텔레비전과 냉장고 위의 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냥 두고 테이블 위의 잡동사니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정리는 하지 않는지만, 부엌 한편에 꽃무늬 앞치마는 걸어 둔다. 이불과 행주를 삶는 비누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냄새를 엄마 며느리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이 냄새를 엄마 냄새라고 내가 여기듯 며느리도 시어머니 냄새로 기억해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