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적 면학 일기

엄마가 은퇴했다

by soulsum

여름이 되자 엄마는 무기력증과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감옥 같던 집을 벗어나 복지회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백수가 된 엄마를 살뜰히 챙기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놀러 다니려면 애창곡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엄마를 노래교실로 이끌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달에 두 곡 정도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강사는 <전국 노래자랑>에 초대 가수로 나왔던 누구와 <아침마당>에 나왔던 누가 자신의 제자라고 은근히 으스대며 그 노래들을 가르쳤는데, 남진과 나훈아에서 유행가 계보가 멈춘 엄마는 노래교실에 몇 번 다녀오더니 선곡이 별로라고 투덜대곤 했다. 그래도 그만두지는 않았다. 틈틈이 노래교실에서 나눠준 책을 펴놓고 복습을 하기도 했다. 깔깔대며 박수를 치고 노래하다 보면 소화가 잘 되고 기분도 좋아진다나. 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노래교실 사람들과 버스를 대절해 남쪽으로 소풍도 다녀왔다. 선생님의 선곡 센스에 대한 불만은 여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트로트만 주야장천 틀어주는 채널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사가 왜 이렇게 안 외워지냐.


TV에 노래교실에서 배운 노래가 나오자 따라 부르던 엄마가 한숨처럼 뱉어낸 말이다. 곁에서 듣기엔 박자와 음정이 문제인 것 같은데 가사를 탓하다니. 엄마의 흥은 노래교실 아주머니들에 비해 너무 하찮은 것이었고, 노래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건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다음 분기에 또 노래교실에 등록했다. 치매 예방 차원이라고 했다. 가게를 할 때는 늘 긴장을 하고 있었고, 가격을 계산하고 재고를 헤아리며 나름 머리를 썼는데 몇 달 사이 한없이 멍청해진 기분이라고. 그대로 몇 년이 지나면 치매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엄마의 노래교실 서사는 훗날 <미스터 트롯>과 연결된다. 운명적인 선택이었던 거다.


노래교실 등록하면서 아주머니들과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건강 체조 강좌도 등록했다. 코어 힘을 기르는 맨손 체조를 가르쳐주는 수업인데,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장년층도 동작을 익혀 셀프 트레이닝하기에 좋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몸을 잘 못 쓴다. 젊어서 엄마는 나름 사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에어로빅을 배웠고, 골다공증 때문에 그대로 나이 들면 굉장히 괴로운 노년을 보낼 거라는 의사의 으름짱에 수영도 배웠다. 그러나 모두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예순 즈음에 배운 요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진짜 몸을 잘 못 쓴다. 엄마는 건강 체조를 취미가 아닌 생존의 영역으로 분류한 듯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에 나갔고, 지름이 20cm 정도 되는 탱탱볼과 요가매트를 구입해 집에서 40분씩 배운 동작을 반복했다.

나는 그 체조가 노래교실보다 백배 나은 것 같으니 다음 분기에도 꼭 등록하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하지만 당시 보건소에서 공무원 생활의 말년을 보내던 이모로부터 ‘장애 있는 분들 우선으로 하는 수업’이라는 말을 듣고는 등록을 포기했다. 엄마는 경계가 뚜렷한 사람이다.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할 줄 알고, 탐나더라도 결코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보건소 건강 체조를 포기하고 복지회관의 건강 체조 강좌에 등록했지만 며칠 만에 그만뒀다. 함께 다니던 아주머니들이 등록하지 않았고, 혼자 다니려니 흥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자매님과 나는 보건소에 비해 복지회관 수업의 난이도가 높고, 그래서 몸이 따라주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했다.


‘엑셀로 가계부를 정리하겠다’


는 꿈을 안고 컴퓨터 교실에도 등록했다. 안 쓰는 오래된 노트북을 꺼냈다. 부팅 속도도 느리고 작업 속도도 느렸지만, 작동은 됐다. 쓸데없는 프로그램을 모두 지우고 한글 타자 프로그램을 깔아줬다. 타이핑 속도가 빨라지면 엑셀도 깔아주고, 가계부 템플릿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와 달리 컴퓨터 교실에서는 휴대폰 사용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이메일 계정을 만들고 앱을 다운로드하는 일, SNS에 가입해 사진과 글을 업로드하는 방법, 포털에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법, 그리고 간단한 사진 편집과 관리법 등에 대해서. 노년 층이 배우기에 엑셀은 ‘고급 기술’이라 다음 학기에 가르쳐준다고 했단다. 엑셀은 못 배웠지만 덕분에 엄마는 페이스북 계정이 생겼고,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추천해준 임영웅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이 서사 또한 훗날 <미스터 트롯>과 연결되며 '운명적인' 선택으로 남게 된다.


가을이 됐다.

복지회관과 문화센터를 오가면서 엄마는 시야가 넓어졌다. 도서관에 ‘명심보감’ 강좌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그날로 등록을 마쳤다. 고려시대 어린이들이 서당에서 배웠던 것처럼 <명심보감> 속 금언과 명구를 풀이하고, 필사해 의미를 되새기는 형식의 수업이었다. 대부분은 몇 번이고 반복해 같은 수강 중인 ‘고인물’이었다. 강사는 고등학교 교사로 퇴직 후 여기저기를 다니며 비슷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온 베테랑이었다. 칭찬이 후했다. ‘처음 오신 분이 너무 잘 따라온다’며 습관처럼 엄마를 칭찬했고, 그 칭찬이 엄마를 춤추게 했다.

엄마의 글씨는 반듯하다. 거의 까먹었지만, 엄마 피셜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로부터 사사 받아 천자문을 뗀 인재’이니 웬만한 한자도 척척 읽어낸다. 엄마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스스로를 재야의 숨은 고수라 여기는 듯했다. 모든 취미는 장비병으로 이어지고, 장비를 탓하지 않게 됐을 때 비로소 고수의 길을 걷는다 했던가. ‘복지회관 건강 체조가 마음에 안 들면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해 운동을 하라’는 말에 ‘비싸서 안 된다’ 던 엄마는 붓과 종이, 벼루, 먹 따위를 사들였다. 칭찬의 결과라 치부하기에 엄마는 손이 너무 크다. 장사를 해도 될 정도로 한지가 쌓여 있다.

그해 겨울, 엄마는 녹내장 수술을 했다.

의사의 말대로 눈에 바람이나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생활수칙을 철저하게 지켰고, 겨우내 집에만 머물렀다. 봄이 되자 명심보감 수업에 재등록했고, 명심보감 선생님의 칭찬에 힘입어 한글 캘리그래피 교실에도 등록했다. 컴퓨터 교실은 그만두고, 대신 녹내장 수술로 칩거하며 찌운 살을 덜어내기 위해 게이트볼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항공권이 가장 저렴한 계절을 기다려 여행도 한 차례 다녀왔다. 봄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엄마는 강사들에게 ‘딸과 해외여행을 가야 해서 2주일 정도 못 나올 것’이라고 말했고, 강사들은 무슨 여행을 2주일 씩이나 가느냐며 긴 여행 기간에 관심을 표했다. 살짝 들뜬 마음으로 엄마는 ‘해외여행’ ‘딸과 함께’에 말의 무게를 실으며 순식간에 나를 효녀로 만들어줬다.


게이트볼 회원들은 두 팔 벌려 엄마를 환영했다. 첫날부터 전용 스틱과 신발을 나누어주겠다는 이도 생겼다. 그러나 엄마는 ‘투자를 해야 본전 생각에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고 시크하게 거절하고는 거금을 들여 게이트볼 스틱을 구입했다. 예상외로 지출이 많아지자 신발은 나눔을 받았다. 아침 일찍부터 모여서 게이트볼 연습을 하고, 점심이면 함께 밥을 지어 나누어 먹었기에 살이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당히 그을린 피부 때문인지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엄마는 게이트볼을 그만뒀다. 동네 생활체육협회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 선수가 모자라 엄마 이름을 명단에 넣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대회 나간다며 더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실전 대비 야외 훈련에 돌입하자 숨이 막혔다고 한다. 여름이 일찍 온 탓에 겨우 5월인데도 기온이 30도 안팎을 기록하던 때였다.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신발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스틱도 함께 건네며 적당한 주인을 찾아주라고 했더니, ‘생각나면 다시 오라’기에 도로 가져와 우산꽂이에 모셔뒀다. 엄마는 아직도 산책을 하다가 게이트볼장 근처를 지날 때면 '내가 운동신경은 둔한데, 이상하게 공은 잘 맞췄다'면서 노년 박세리처럼 말한다.

글씨 쓰기에는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글 쓸 때 사용하는 붓은 한문 붓과 다르다며 장비부터 사들였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고 일주일 만에 여행을 다녀오느라 2주일이나 결석한 엄마는 캘리그래피의 기초를 배울 기회를 놓쳤고, 마음대로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급기야 ‘원래 글씨체가 있어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글씨체를 배우는 게 어렵다’는 선생님의 말을 곡해해 ‘고집이 세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받아들였다. 모멸감을 느꼈다며 그 후로 그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글씨 부심’에 스크래치가 났기 때문이라고 자매님은 말했다.

대신 명심보감 선생님의 ‘빈자리가 있으니 언제든 나와도 괜찮다’는 말을 순진하게 받아들인 엄마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오전과 오후 모두 명심보감 수업에 참석했다. 하루에 4~5시간씩 천자문을 외고 서예를 익혔다. 지난해 건강체조 교실에 다니며 어렵게 펴놓은 허리가 다시 굽을 때까지 한석봉 꿈나무의 편파적 면학은 지속됐다.


엄마의 덧없는 취미생활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의 관심은 야유회에서 부를 노래와 몸의 노화를 늦춰주는 체조를 배우는 것처럼 실용적이 아닌 배움 자체로 스마트해질 것 같은 인문학적인 것을 향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엄마의 취향에 너무 무심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얼버무리던 엄마에겐 확고한 취향이 있고, 그걸 말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칠순이 넘어서도 지적 허영심을 추구하다니, 내 엄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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