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은퇴했다
은퇴 후 엄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60에 그만뒀어야 했어’다. 이것저것 배우면서 이해력과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그런다. 일을 그만두면서 엄마는 남은 날들을 걱정했다. 연금이 두둑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유일하게 믿고 있는 게 월세 수익인데, 1층에 있는 가게 세 곳에서 나오는 걸 다 합해도 백만 원이 안 된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실비보험 가입도 거절됐으니 병원 갈 일도 걱정이었다. 엄마는 백수 전환 소식을 세입자들에게 알리면서 월세를 10만 원씩 올려달라고 말했단다. 그렇다 해도 주변 시세에 한참 못 미치지만, 말하고 나서 한동안 불편해했다.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장기 세입자인 이발소 아저씨는 손님이 없을 때마다 리코더를 불곤 했는데, 엄마는 세를 올려달라는 말을 한 다음부터 리코더 소리가 잦아진 것 같다고 했다. 기분 탓이겠지.
명심보감부터 컴퓨터교실까지, 제대로 마스터한 게 하나도 없으면서 엄마가 각종 강좌를 들으러 다녔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라크라메부터 꽃꽂이, 코바늘/대바늘 뜨개, 프랑스 자수, 십자수, 리틀 포인트 등 엄마는 40년 가까이 장사를 하면서 꽤 많은 수예 기술을 익혔는데, 이를 토대로 강좌를 개설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엄마에게도 ‘돈이 되는 취미생활’이 필요했던 거다. 그때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60에 그만뒀어야 했어. 문화센터에서는 젊은 선생님을 원했다.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이라 기관에서는 적잖은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봄이면 꽃을 심고 여름이면 풀을 뽑고, 만두를 빚거나 떡을 만들기도 했다. 빈자리가 나면 만두 빚으러 갈 거라던 엄마에게 상상도 못 한 기회가 찾아왔다. 거금을 투자해 스틱까지 구입했던 게이트볼을 미련 없이 그만두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바리스타가 되기로 결심했다.
1~2년 안에 지역에 있는 복지회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건물 내에 카페를 오픈할 계획인데,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60세 이상의 장년층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먼저 자격을 갖춘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무료로 바리스타 교육을 지원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취직까지 보장해준다고. ‘취직’이란 말에 솔깃했지만, 30대에 치른 운전면허 시험이 마지막인 엄마는 ‘시험’이란 말 앞에 한 걸음 물러섰다. 노인회장은 ‘필기시험에 붙을만한 사람이 자기밖에 없어’라며 엄마를 유혹했다. 일 년의 시간을 아무런 생산적 활동 없이 탕진한 엄마에게 ‘무료 교육, 일자리 알선, 전문직 바리스타’라는 말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떨어져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며 못 이기는 척 제안을 받아들였다. 평생 맥심 밖에 모르던 엄마에게 험난한 도전이 될 게 뻔했다.
카페라테, 카푸치노, 크레마, 로스팅, 블렌딩 등등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수업시간에 배운 새로운 단어들을 나열했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브라질 같은 나라가 어디에 위치한지도 모르면서 한참씩 커피 얘기를 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고 맞장구를 쳐줬다. 엄마의 도전에 필요한 건 용기니까.
필기시험을 이틀 앞둔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밝다. 자신 있느냐 물었더니 ‘기출문제를 풀었는데, 운전면허 필기시험처럼 문제를 읽으면 답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쉽다’고 답했다. 그 위로 자매님의 목소리가 포개졌다, 니네 엄마 공부 안 했어. 불길한 예감에 잔소리를 늘어놨다. ‘문제를 눈으로 풀지 말고 종이에 적어가며 외워봐, 어렴풋이 아는 거는 아는 게 아니야.’ 필기시험만큼은 한 번에 붙고 싶었던 엄마는 내 말대로 해보고는 큰 일 났다면서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기출문제를 달달 외웠다고 한다. 결과는 합격. 지금도 엄마는 70이 넘어 단 번에 시험에 통과한 것을 굉장한 훈장으로 여기고 있다.
실기시험은 2주 뒤에 치러질 예정이라고 했다. 걱정이었다. 요리에 취미 없고, 몸을 잘 못 쓰는 데다가 나이가 있어 기계와도 낯을 가릴 텐데 잘할 수 있을까. 우려와 달리 ‘필기시험 합격 뽕’은 엄마에게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주는 듯했다. 누구는 라테 거품이 안 나는데 나는 잘한다, 아메리카노 내리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카푸치노와 라테 차이가 뭔 줄 아느냐 등등. 그래서 더 불안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험 당일 수험생들은 담당 선생님의 차를 나누어 타고 시험장으로 갔고, 엄마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가지고 있던 청심환을 다른 아주머니에게 건넸다고 한다. 다 잘 될 테니 너무 떨지 말라고 격려까지 하면서. 엄마는 떨어지고 청심환 먹은 아주머니는 붙었다. 자신만만했던 엄마는 시험에 낙방하자 완전히 풀이 죽었다. 자매님은 '하여간 그 허세가 문제야, 청심환을 왜 남을 줘, 약을 나눠 먹는 사람이 어딨어' 하며 면박을 줬고, 나는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니 시험이지, 다음에 붙으면 돼' 하고 위로를 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시험은 2주마다 있었다. 그런데 하필 추석이 끼는 바람에 한 텀 쉬고 4주 뒤에나 진행된단다. 더 이상의 무료 교육도 없었다. 엄마와 불합격 아주머니 무리는 배운 걸 다 까먹을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그깟 에스프레소 기계, 내가 하나 사줄게. 내 식의 위로를 했더니 엄마가 솔깃해하며 물었다, 비싸지 않아? 가정용은 그냥 그래, 원리는 같으니까 연습하는 건 괜찮을 거야. 그제야 엄마는 시험에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놨다.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남들은 시간이 모자라다는데 엄마는 급한 성격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고, 라테는 거품을 전혀 만들지 못했으며, 기본으로 먹고 들어간다는 청결 점수도 낙제점이었단다.
추석이 지나자 실기 불합격 팀은 새로운 커피 선생님을 수소문해 사비를 들여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새로운 선생님은 시험장에 있는 것과 똑같은 기계를 가지고 있었고, 엄마는 다시 자신감에 부풀었다. 우유 거품의 신이 됐고 잘난 채를 할 때마다 ‘국가공인 자격증이 아니라 크게 의미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하려다 삼키곤 했다. 그렇게 2주가 더 지나 엄마는 청심환을 챙겨 먹고 시험에 붙었다. 합격 통지 문자메시지가 온 날 아침, 며느리에게 전화해 ‘이제 바리스타라고 부르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며느리는 존경스럽다며 장단을 맞췄다. 며느리는 합격한 것도 좋지만, 70세가 넘어 무언가에 도전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아이들에겐 정말 좋은 교육이 된다며 감사하다고 했단다. 말을 저렇게 예쁘게 하니 엄마가 딸보다 며느리를 좋아하지.
엄마가 취직했다.
새해가 되자 엄마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복지회관에 들어선 카페에서 일하기로 했다.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회, 월급도 얼마 안 되고 근무 시간도 들쑥날쑥이지만 엄마 갈 곳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자매님과 나는 서비스업이니 착장이 단정해야 한다며 취직 선물로 신발과 블라우스 몇 벌을 건넸다. 하지만 첫 출근을 하기도 전에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됐고, 카페 오픈 일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1월에 고용 통보를 받았지만, 카페는 3월 말이 돼서야 가오픈을 했다. 한 달 가까이 손님을 받지 않은 채 매장을 청소하고 점검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용기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시험 친 이후로 커피를 만들어본 적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고, 여느 아주머니들의 사정도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안 매니저는 원두를 가져주면서 연습해도 괜찮다고 허락했다. 다음 날부터 엄마는 1000ml짜리 우유 두 통을 들고 출근을 했다. 한 타임에 3명씩 하루에 3조가 일을 하는데, 아홉 명이 매일 사용하는 원두 양이 꽤 많았나 보다. 며칠 후 매니저는 새로운 원두를 테이스팅 중이라고 둘러대고는 더 이상 채워주지 않았다. 예비 바리스타 아주머니들은 그리 호락호락한 분들이 아니었다. 가루 커피를 뜨거운 물에 녹여 커피 원액을 만들어 연습을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원두 2kg을 사서 집으로 보냈다. 조금씩 소분해 가져 가 나누어 쓰라고 했다. 엄마는 명심보감 수업에서 ‘딸과 함께’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을 했을 때처럼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간 채 ‘딸내미가 보내줬다’고 자랑을 했단다. 엄마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자신감을 충전한다.
그렇게 엄마는 할머니 바리스타가 됐다.
은퇴 후 엄마가 두 번째 직업을 갖기까지 2년이 걸렸다. 엄마는 원래 잠을 못 잔다는 이유로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그나마도 인스턴트커피를 몇 알 띄워 보리차처럼 마셨고, 밥을 먹고 나서 2차로 카페에 갈 때면 커피 값이 너무 아깝다고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커피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적극 찬성했다. 시험에 붙지 못하더라도 취향을 확장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사소한 기호식품에서 시작됐는데, 그 흔한 기호 하나 없이 살아온 엄마 인생이 안타까웠다고나 할까.
9월부터 엄마는 자격시험 없이 기술만 익우는 베이킹 클래스를 들을 거라고 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이들을 우선으로 선발했다며 우쭐해했다. 정확하게 계량해 레시피대로만 하면 되는 거라 요리 솜씨와는 상관이 없대, 하고 엄마가 말했다. 설령 엄마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성격 급하고 꼼꼼하지 못한 엄마가 ‘정확한’ 계량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까이꺼 대충’ 눈대중으로 라테를 만드는 바람에 카페에서도 이미 한 차례 컴플레인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평생 쿠키나 빵을 구워본 적이 없는 엄마는 베이킹 클래스를 듣는 동안 그만두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할 거다. 그때 되면 말해줘야지, 70대에 스스로 취향을 넓혀나가는 할머니가 얼마나 멋있는 건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