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은퇴했다
망고맛 주스나 젤리가 아닌 진짜 망고를 처음 먹어본 건 20여 년 전 즈음이라고 했다. 계모임에서 따뜻한 나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이틀 이상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는 엄마는 함께 가지 못했다고 했다. 경기가 좋고 이자율이 한창 높을 때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매월 조금씩 돈을 모아 순번을 정해 목돈이나 금반지를 타는 방식의 계가 흔했는데, 아마도 그 모임의 출발점도 그랬을 거다. 이자율이 낮고 자녀들이 모두 출가해 경조사 때 목돈을 모아줄 일도 사라지자 모임의 성격은 잘 먹고 잘 놀자는 방향으로 변했고, 그즈음의 몇 해 전부터는 모임 때마다 여행 경비도 따로 걷었다고 한다. 다들 현금으로 돌려 달라고 하면 여행 계가 의미 없어진다는 이유로 여행을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모은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다.
총무를 맡은 아주머니께서 여행을 다녀오며 선물로 가져다준 것이 망고였다고 한다. 키친타월로 둘둘 말아 성인 남자 주먹만 한 걸 두 알 건넸단다, 우리끼리 놀다 와서 미안하다면서. 엄마는 당시 망고와 함께 받은 여행 기념품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망고 맛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고. 검역법 상 생과일을 가지고 입국할 수 없으니 아마도 과일가게에서 사 온 것이었을 거라고 내가 말했다. 작은 창문이 있던 하노이의 호텔방에서 망고스틴을 까먹으면서. 사실 나는 망고처럼 지나치게 달고 끝 맛이 떫으며 미끄덩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없는 당뇨도 부르는 것 같은 건과일은 더더욱 별로다. 그럼에도 더운 나라로 출장 갈 때마다 트렁크 가득 건과일을 채워온 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망고를 보면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평생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손님이 많을 때는 바빠서, 손님이 없을 때는 돈이 아까워서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했다.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손님이 올까 봐 물도 거의 마시지 않는 엄마가 가게 문을 잠그고 평일 낮 시간대의 계모임에 참석할 리가 없다. 손님이 많으면 많아서, 없으면 없어서 가게를 비울 수가 없다는 거다. 언젠가 무슨 이유에선지 종일 굶었다는 엄마는 밤 10시가 넘어 집에 와서는 급한 대로 밥을 비벼 먹은 일이 있다. 너무 빨리 또 많이 먹어 숨을 쉬는 게 곤란할 정도였는데, 그날 엄마는 배가 너무 불러 누울 수가 없어 소화제를 먹고 앉아서 잠을 잤다. 그때는 엄마 인생의 모험담 중 가장 엣지 있는 스토리라고 놀렸지만, 사실은 가장 슬픈 일화 중 하나다. 주로 평일 낮 시간대에 열리는 계모임에 엄마가 참석하는 일은 드물었다.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손님이 올까 봐 물도 거의 마시지 않던 당시의 엄마에게 가게를 몇 시간씩 비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센스 있는 총무 아주머니는 모임 때마다 엄마에게 음식을 배달시켜 주거나 도시락을 싸오곤 했다.
끼니를 자주 거르다 보면 강박이 생긴다. 엄마도 그랬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둔다. 단골 식당에 가면 주인장은 아예 엄마 옆에 공깃밥을 하나 더 놔준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는 탄수화물 중독자처럼 또 숨 쉬기 곤란해질 정도로 밥을 먹는다. 몇몇은 엄마에게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물만 마셔도 찌는 사람의 고충을 아느냐면서. 손님이 많을 때는 바빠서, 손님이 없을 때는 돈이 아까워서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한다는 걸 몰랐기에 했던 말일 거다. 당시의 엄마는 밥을 너무 많이 먹어 커피나 과일, 쿠키 같은 디저트를 전혀 먹지 않았었다. 포만감이 없는 음식은 비효율적이라 여기는 사람처럼 굴었다.
자매님 말로는 엄마가 몇 해 전부터 식사와 디저트를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과일을 찾고, 가끔은 과일이나 떡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한다고. 그제야 그동안 엄마가 전투적으로 식사를 했던 이유가 뭔지 확실해졌다. 효율적인 식사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먹을 게 하나도 없어.
거짓말이다. 내 냉장고에 비하면 엄마 집의 냉장고는 백종원 급이다.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 내게 엄마는 한 시간 째 마트에 가잖다. 운전도 엄마가 하고 계산도 엄마가 하고 배달은 마트 아저씨가 해줄 텐데 대체 왜 종일 씻지 않아 더욱 초라해진 몰골의 내가 마트 행 필수품인가. 필요한 게 있으면 자매님에게 메시지를 보내 퇴근할 때 사 오라고 하면 되지. 과일이 먹고 싶단다. 그리고 직접 가서 보고 고르고 싶단다. 효도하는 셈 치고 안경에 모자, 마스크까지 쓰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체리를 골랐다. 며칠 전 00이네 놀러 갔을 때 체리를 내줬는데 너무 맛있었다나. 두 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체리를 닦는 엄마 옆에 서서 ‘먹을 만큼만 닦아, 체리는 물 묻으면 물러져서 못 먹어’ 잔소리를 했더니, 다 먹을 거라 다 닦아도 괜찮단다. 싱크대 앞에 서서 체리를 닦는 뒷모습이 꽤 신나 보인다. 집에 돌아온 자매님은 체리를 먹지 않았다. ‘니네 엄마 외국 과일 마니아잖아’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아, 언제부터!
자매님 말대로 엄마는 외국 과일 마니아가 돼 있었다. 사과는 산이 많아 먹고 나면 속이 쓰리고 귤은 시어서 싫단다. 자두나 고야는 쉽게 탈이 나서 별로고, 토마토는 어쩐지 약 먹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부터는 복숭아 알레르기도 생겼다. 달콤한 참외와 포도, 배 정도가 요즘 엄마가 먹는 과일이라고 했다. 아마도 엄마가 귤 대신 자몽과 오렌지를 사고, 멜론과 체리를 찾기 시작한 건 며느리가 들어온 후일 거다. 서울에서 시집온 며느리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었을 거고, 먼저 며느리를 본 계모임 아주머니들이 이것저것 조언을 했을 거다. 무작정 따르다 보니 엄마의 취향도 덩달아 알게 된 케이스라고나 할까. 다행스럽게도 마른 체형의 며느리는 젊은 시절의 엄마 버금가는 대식가라 가리는 과일이 없다.
망고 사줄까?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여행객이 감소하자 태국과 필리핀에 망고가 남아돈다고 한다. 양질의 망고를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게시 글을 보고 망고를 한 상자 주문했다. 망고 냄새가 일산까지 퍼졌는지 주말이 되자 엄마아들 가족이 시골집에 내려왔다. 엄마아들 가족의 방문을 앞두고 자매님과 엄마가 상의 없이 마트에 다녀오는 바람에 과일 풍년이었다. 살짝 치사한 기분이 들었지만, 몰래 몇 알을 김치냉장고 구석에 넣어뒀다. 반으로 갈라 벌집무늬를 낸 망고를 참외, 딸기와 함께 내줬다. 얌전히 포크를 사용하던 엄마아들의 아들이 포크를 내려놓고 망고 반쪽을 짚어들자 위기를 감지한 엄마아들의 딸이 나머지 반쪽을 들고는 갈아먹기 시작했다. 예상 못한 순간에 치트키를 쓰는 두 초등학생의 돌발행동에 엄마아들 사모님이 부끄러워했고, 엄마는 웃었다. 하나를 더 잘라 엄마와 엄마아들 사모님 앞에 놓아줬더니 다시 조카들이 덤벼든다.
“너희들은 앞으로 맛있는 걸 먹을 날이 많지만, 할머니랑 엄마는 아니니까 양보해.”
식탁에 앉아 망고 갈비를 뜯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엄마아들 사모님은 신박한 교육법이라며 ‘웃기지만 진실’이라고 했고, 엄마는 어린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욕을 했다. 무엇이 더 해로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