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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sum Mar 21. 2024

갈보카 바다거북 보호소

터틀 비치부터 갈보카 바다거북 보호소까지


터틀 비치의 바다거북 식사시간

스리랑카 동남부 해안 여행의 묘미는 서핑과 스노클링이고, 파도가 찰랑이는 곳까지 가서 돌고래를 보는 일인데, 모두 흥미 없는 나는 바다거북을 찾아다녔다. 미리사에서 히카두와로 이동한 다음 히카두와 기차역 근처 바닷가에 숙소를 잡고, 아침저녁으로 바다거북이 밥 먹으러 온다는 터틀 비치까지 그들 밥 때 맞춰 왔다갔다 했다. 대부분 비치가 연결되어 있어 맨발로 터덜터덜 걸어 갈 수 있는데, 욕심 많은 대형 리조트가 중간 해변을 가로막아 집을 짓는 바람에 현지인들처럼 맨발로 찻길을 5분 이상 걸어야 했지만, 우리 동네가 아니니 참는 걸로.

터틀 비치 주변에는 산호초 군락이 해변 근처로 형성되어 있는데, 평소 바다에 사는 바다거북이 너무 뜨겁지 않은 시간에 그곳에 와서 식사를 한다. 관광객들이 수초를 한 봉지씩 사서 한쪽 끝을 잡고 물 위에서 살랑살랑 흔들고 있으면, 물 속에서 의외로 빨리 움직이는 바다거북이 잽싸게 다가와 고개를 스윽 내밀고 풀을 받아 먹곤 한다. 그 짧은 순간 관광객들은 사진도 찍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수영도 한다. 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하며 고대했던 순간이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너무 시시해서 ‘이러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나’ 신세한탄을 하며 다시 터벅터벅 갔던 길을 돌아 숙소로 오는 길에 이상한 텃밭을 발견했다.


해변가의 바다거북 보호소


라이프가드 쉼터처럼 보이는 오두막 아래 낮게 울타리를 치고, 짐승이나 사람이 밟지 못하도록 페트병을 잘라 거꾸로 씌워 놓았다. 각각의 페트병 아래는 날짜처럼 보이는 숫자가 쓰여 있었는데, 신기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 ‘바다거북 알이 자라는 중’이라고 알려줬다. 어렴풋이 스리랑카 바닷가에 몇 개의 바다거북 보호소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났다. 바다거북 방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니 3일 후 아침에 다시 오란다. 아직 알이 부화하지 않았고, 그 즈음 태어날 애들이 있어 아침 9시쯤 오면 방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특별히 알을 갓 깨고 나온 새끼 바다거북을 만져볼 기회도 주고 직접 방생해줄 기회도 줄 테니 그때 꼭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알이 너의 것이냐 물으니, 청년은 '우리의 것'이라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틀 후 아침 히카두와를 떠나 콜롬보로 가야했기에 바다거북 방생식에는 참석할 수 없노라 답했다.



스리랑카 친구들은 아락에 콜라를 마셨고 나는 라이언 맥주


숙소로 돌아와 주인 청년에게 바다거북 보호소 얘기를 하자, 해변을 따라 크고작은 보호소가 꽤 여럿이며, 2~5월은 바다에 살던 바다거북들이 알을 낳기 위해 해변으로 올라오는 시기라고 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내가 지금 풀문 즈음에 히카두와에 있으니 어쩌면 밤에 거북이 산란 장면을 목도할 수도 있다고 희망을 줬다. 그러면서 전날 밤에 찍은 거라며 거북이 산란 동영상을 보여줬다. 숙소가 위치한 비치 바로 앞에서 찍은 거란다. 숙소 주인은 오늘 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비치에 앉아 술을 마실 생각인데, 운이 좋으면 바다거북 산란 장면을 볼 수 있으니 함께 하자고 했다. 와인숍에 가서 아락과 맥주를 사서 해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변가 레스토랑과 펍이 문을 닫아 불빛이 약해지고 고요해지길 기다렸다. 캄캄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현지인들은 물에서 올라오는 거북이 등껍질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알아챈다고 한다.

그날 밤 두 마리의 바다거북이 뭍으로 올라와 산란할 자리를 살피다 바다로 돌아갔다. 안전한 곳을 찾아 천천히 움직였고, 바닥을 다지고 구멍을 파 알을 낳을 자리를 마련하다 그냥 사라진 거다. 숙소 주인은 거북이가 눈도 밝고 귀도 밝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 챈 것 같다며 내일 저녁에 다시 시도해 보자고 했다. 나는 덕분에 야생에서 저렇게 커다란 바다거북을 두 마리나 봤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고마운 청년들.

(이날 밤의 대화가 결국 휴대폰을 찾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지)


방으로 돌아와 ‘바다거북 보호소’를 검색했더니 구글맵이 꽉 차도록 많은 보호소가 나왔다. 옥석을 가리기 힘들어 숙소 주인에게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한 곳만 추천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갈보카 바다거북 보호소’의 위치를 보내왔다. 친구들에게 물어 의견을 종합한 결과란다.



히카두와 토박이 출신 다이버가 소개해준 갈보카 바다거북 보호소 Galbokka sea turtle hatchery
바다거북은 한번에 80~150개의 알을 낳으며, 이곳에서 40일 정도 보호를 받아 부화해 바다에 방생한다.
갈보카에서 드디어 만난 바다거북 1일차, 어제 부화했다는 바다거북 (아마도 올리브 리들리 바다거북 새끼었던 것 같;)
바다거북 중 두 번째로 크기가 작고 개체수가 많다는 올리브 리들리 바다거북 olive ridley sea turtle
등껍질이 예뻐 살해당한다는 대모 바다거북  hawksbill sea turtle
7종의 바다거북 중 5종이 있었음 (하나가 뭐였떠라.....)



아침 일찍 일어나 터틀 비치를 찍고 바다거북과 하이파이브를 한 다음 갈보카로 향했다. 버스 타고 1시간 남짓, 다시 10여 분 툭툭을 타고 이동해야 했으나 히카두와 토박이의 말을 리스펙하기로! 블로그 후기에 구리다는 말 일색인 여느 보호소와 달리 갈보카 보호소는 시스템이 꽤나 잘 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지불하자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1대1로 따라다니며 보호소 구석구석을 설명해줬다.

바다거북은 멸종위기 동물이다, 멸종해 가는 이유 중 하나는 폐그물이나 어선 프로펠러에 걸려 팔다리나 목이 잘려 죽거나 다쳐서 야생에서 도태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알이 정력에 좋다는 말에 불법으로 채취돼 매매되기 때문이란다. 물론 등껍질 패턴이 예쁜 바다거북의 경우 포획돼 등껍질을 벗겨 고가의 액세서리로 가공되기도 하고. 그래서 바다거북 보호소에서는 바다거북 알을 사들여 부화시키고 방생시키는 일을 하고, 다친 거북이를 치료하고 수술해 방류하기도 한단다. 현지 사람들은 바다거북이 산란하러 올라올 때 해변에 남긴 자국 때문에 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채취하거나) 보호하는데, 여행객들은 이 신호를 모른 채 밟아 알이 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보호소 내에는 여러 개의 수조가 있고, 종류와 나이, 크기 등을 적어 푯말을 붙여 놨다. 보호소 직원이 이곳에 온 바다거북의 이름과 부상 원인, 다시 바다로 돌아갈 시기 등을 알려줬다. 그중에는 팔다리가 잘려 수술 후 회복 중인 바다거북이 여러 개체였는데, 몸에 공기주머니가 생겨 물에 가라앉지 않아 평생 보호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바다거북도 있었다.

수조와 수조 사이에 어제 바닷가에서 본 텃밭처럼 모래밭이 있었다. 푯말에는 알을 낳은 날짜와 부화 예상 날짜, 그리고 바다거북 종류와 알의 개수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국가와 사람 이름이 적혀 있는데, 도네이션을 하면 그 바다거북이들의 부모가 되는 거란다. 부화하는 장면과 방생하는 장면을 촬영해 도네이션한 사람에게 보내주는 일도 한다고 했다. 너무 귀여운 프로젝트아닌가. 옆에는 갓 부화한 새끼들이 모여 있는 수조가 있었는데, 역시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다. 부화된 지 하루 밖에 안 됐다는 바다거북 새끼를 만져봐도 된다는 말에 살짝 잡아보니 새끼 강아지처럼 발버둥을 친다. 수일 내로 방생할 계획이라고 했다. 혹시 한 마리만 방생할 수 있는 영광을 내게 주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혼자 바다로 나가면 사망할 확률이 너무 높아 그게 어렵단다. 외국에서 (싹 다 모르는 사람이라 쌩얼도, 찜질방 패션도 모두) 앵간해선 느끼지 않는 부끄러움이 훅 밀려왔다. 이 경박함을 어찌하면 좋으리.


갈보카 바다거북보호소에서 구매한 티셔츠

보호소를 나오기 전 콜롬보 소재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한다는 소년의 설문조사에 주관식까지 꼼꼼하게 답하고(문법이 개판이었을텐데 알아서 알아듣겠지), 보호소 직원이 입고 있는 티셔츠와 같은 티셔츠를 샀다. 도네이션을 하고 이역만리에 자식을 심어놓을까 한창 고민했으나 역시 나는 탐욕스러운 게 잘 어울린다. 보호소 소 직원은 검정색보다 흰색이 어울린다며 이 또한 다른 형태의 도네이션라고 말해줬다. 따수운 스리랑카 사람들+_+; 여행 이틀 차에 휴대폰 도둑 맞아 지지리 궁상으로 여행했던나의 유일한 스리랑카 여행 기념품 되시겠다.


그리고 보호소 바깥 해변에서 마댈을 목도했는데, 그것은 다음 편에!



이건 비치 쪽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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