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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sum Mar 11. 2024

패션 어부와 스틸트 피싱

스리랑카 전통 어업을 찾아서 part. 1



사진 모델이 된 어부들, 그들을 패션어부라 부르리

스리랑카라고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스틸트 피싱이다. 페타라 불리는 장대 위에 앉아 물고기를 낚는 모습이 물새가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과 같다해 스틸트 피싱이라 불린다. 스리랑카는 가까운 바다에 파도를 막아줄 산호초 군락이나 섬이 없어 망망대해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파도가 섬에 직접 와 닿는데, 특히 남부 해안은 파도가 너무 높고 거칠어 제자리에 서 있기가 버겁다. 하여 사람들은 얕은 바다 위에 장대를 꽂아 낚시터를 만들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후의 바다에 나가 낚시를 했다고 한다. 스리랑카 전통 낚시법이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역사가 긴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식량부족과 과밀한 어업 조건에 시달렸고, 전후 산호초에 남아 있던 철제 기둥에 올라 낚시를 하던 것이 스틸트 피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코갈라 해변에서 스틸트 피싱을 볼 수 있다 해서 찾아갔으나, 그들은 ‘패션’ 낚시꾼이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외다리에 올라 낚시하는 시늉을 내고 모델료를 받아 생계를 꾸린다고. 십장 격 되는 이가 혹여 관광객이 도촬을 하지 않을까 매의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괜히 심술이 나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다.


관광객도 쉬어가는 뜨거운 시간이 되면 모델들도 각자 할 일을 한다

코갈라 스틸트 피싱 촬영지는 2군데다. 1번 비치는 관광객 단체 버스가 서는 곳으로 좀 더 넓고 모델도 많다. 마침 1번 비치 쪽에 이르렀을 때 중국인 단체 관광 버스가 섰고, 나는 아래쪽 2번 비치로 이동했다. 낮잠을 자려던 모델 두어 명이 촬영 준비를 마쳤노라 내게 알렸고, 나는 돈을 주고 사진을 찍을 만큼 간절함이 없음을 어필했다. 행색이 초라하고 (이 더위에 버스 타고 다니느라) 동공이 풀린 내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모델 할배는 나무 그늘로 이동해 그물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검게 그을린 마른 손이 새 그물의 반짝이는 실과 대비됐고, 능숙하게 추를 교차하며 그물을 짜는 모습이 스틸트 피싱 모습보다 신기했다. 할배가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 사진을 찍으라며 말을 건다. 자신은 돈을 받고 사진 찍히는 어부 모델이지만, 낚시 장면이 아닌 그물 손질 장면을 찍는 건 돈을 안 받아도 된단다. 바람이 불었고 나무에 주렁주렁 걸어둔 산호초가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사위를 채웠다.


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하며 그곳에서 보고 싶은 장면 몇 가지를 메모해뒀는데 (이 메모가 여행 계획의 모든 것이라는 점이 함정) 그 중 하나가 ‘마댈’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해변 모래사장 위에 야자 나뭇잎으로 지붕을 얹은 집을 짓고 공동생활을 하며 고기를 잡는다고 했다. 마댈은 가까운 바다에 긴 그물을 쳐놓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 양쪽에서 그물을 끌어당겨 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 방식을 말한다. 배가 없어 먼 바다로 나갈 수 없는 어부들이 사용하던 방법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댈은 12월부터 5월까지 스리랑카 해변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스틸트 피싱에 적잖이 실망한 후 마댈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아주 허름한 기사식당 같은 곳에 들어가 로띠를 주문했더니, 잠시 휴식 중인 관광 가이드부터 동네 어르신까지 모두가 몰려와 내가 이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누구는 홍차를 가져다줬주고, 누구는 달커리를 추가해주며 친근감을 표했다. 그리고 몇몇은 관광 가이드나 툭툭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왓츠앱 연락처를동네를 남겼다. (사실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 아니라 식당 외관은 매우 허름했으나, 식당 한쪽은 대로를 면하고 있고 반대 쪽은 통유리로 바다가 보였기에 나는 그저 풍경 좋은 곳에 위치한 커피숍이라 생각했었다.)

마댈에 대해 물었더니, 이 마을에서 단체 어업을 하는 게 맞단다. 아, 잘 찾아왔구나. 언제쯤 그 모습을 볼 수 있냐 물으니 너무 더운 시간에는 사람도 물고기도 쉬는 시간이라 아침 6~7시 사이에 오거나 오후 4~6시 사이에 다시 오란다. 식당으로 찾아오면 마을 어업 대장을 소개시켜 줄테니 꼭 다시 오란다.


해질 무렵 미리사 해변 풍경 



아침부터 갈레 포트를 한 바퀴 돌고, 스틸트 피싱하는 곳을 기웃거렸던 나는 더위에 지쳐 숙소가 있는 미리사로 돌아왔다. 슈퍼에 들러 바나나와 수박과 요거트를 샀고, 해가 지는 해변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어제 본 멋진 서양 언니처럼) 책을 읽었다. 두 권의 책을 가져왔으나 전혀 읽지 못했다. 휴대폰 도난 사건으로 멘탈이 탈탈 털렸고, 긴 이동 시간에 비해 버스와 기차는 딱히 안락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창밖을 보느라 책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

여행의 절반 이상이 지나가고 있었다. 해변 앉아 개를 쫓으며 책을 읽다 사람들을 구경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제 만난 J가 다가와 종일 찾았다며 내일 아침에 시간이 되면 웰리가마로 서핑하러 가잖다. 정확히 말해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가자고. J는 하와이에 사는, 스리랑카에 잠시 머물며 서핑을 가르치는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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