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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sum Oct 22. 2018

예비 소집

까미노 일지


착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밀린 숙제 취급을 하는 사람과 자투리 시간을 때우기위한 의자쯤으로 여기는 시람들을 만났다. 왜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지 궁금했다. 쉬워져서라고 생각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내가 개인주의자라는 걸 깨달았다. 남들은 눈치 보느라 하지 못하는 얘길 나는 거침 없이 뱉는 타입이란 걸. 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를 돌아봤다. 그동안 차갑고 냉정하고 예민하고 그래서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진짜 나는 그렇지 않으니 상관없다, 내지는 내가 당신에게 그리 했다면 아마도 나는 당신을 싫어하는가봅니다, 했다.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아마도 그 즈음의 나는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었나보다. 난생 처음 타인의 템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변화는 때로 거추장스러운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독기 바짝 오른 모기 새끼 한 마리가 대롱을 세우고 주변을 멤돌았다. 벌처럼 쏘였다. 가려울 줄 알았는데, 아팠다. 나를 밀린 숙제 취급하던 인간과 자투리 시간을 때우는 의자 쯤으로 여기던 인간들이 생각났다. 화가 치밀었지만, 불을 뿜는 대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긴긴 날을 집에서 보냈다. 잠에 잠식될 정도로 잠만 잤다. 겨우내 자다 볕도 들지 않는 감옥 같은 골방에서 깨어나 공격력을 키웠다. 다시는 절대 지지 말아야지, 어금니를 깨물고 다짐했다. 밤마다 턱이 아팠다.

용감해지고 싶었다. 싫다고 거절하면서 후회가 없었으면 했다. 아쉬워도 뒤를 돌아보지 말았으면 했다. 이 불안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고립을 택했다.

그 무렵의 나는 다음 생에는 무생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남은 삶이 너무 귀찮아 어떻게 흘려보내야 조용히 묻힐까 고민했다. 돌멩이처럼 살고 싶다고 했더니 이번 삶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천년고찰 주춧돌로 태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될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한가진 곳에 나무로 살고 싶다 했더니 수목한계선에서 바람을 지고 사느라 키도 크지 못할 거라고 했다. 쉬운 게 없었다. 몸을 뉘일 곳이 없었다. 절망 속에 잠을 잤다. 아주 길게 오랫동안. 그렇게 겨울을 흘려 보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소복이 쌓인 눈 아래 검게 멍이 들고 있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만신창이가 된 후에 생각했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먼 곳의 날씨를 아침마다 체크하면서 욕망이 자랐다.

살아난 것을 어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가보다.


오랫만에 자발적으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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