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의 동거
꿈은 상상의 크기와 비례한다
흔한 사랑앓이 하나 없이, 십 대는 흘러갔다. 성적은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 만큼 부모님을 설레게 하지 않을 만큼. 자율학습을 빼먹어 반성문을 몇 번 썼지만, 문제아도 모범생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의 꿈은 교복을 벗는 것. 어쩌면 꿈의 크기는 상상할 수 있는 세계와 비례할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서러운 것은 처지는 힙이나 자글자글한 주름만이 아니다. 꿈이 점점 현실적으로 변한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나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꿈을 꿨었다. 축지법과 장풍을 배우고 싶었고, 슬픔만 잊는 약과 미래로 가는 구두를 갖고 싶었다. 그나마 현실적인 꿈은 종합 유흥 빌딩의 건물주가 되는 것. 지하에 소주방, 1층에 커피숍, 2층에 PC방, 3층에 당구장. 4층에 살면서 공간을 반으로 나눠 가까운 친구 몇몇이 드나들기 쉽도록 비영리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스무 살 무렵의 꿈이 바뀐 건 이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생일마다 좋아하는 아이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싶었다. ‘우리끼리 어워즈’나 ‘롤링페이퍼’ 같은 프로그램에 음악과 춤, 맛있는 음식이 곁들여진 일종의 소셜 파티. 물론 두 가지 꿈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불안이다
불안은 행복과 불행에 모두 존재하는 그림자 같다. 취재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욕망이 만나는 부분에서 이뤄진다. 기자의 역할은 욕망 이면의 진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가끔 사실 나열 그치기도 하고, 나의 기대와 취재원의 욕망이 어긋나기도 한다. 독자의 칭찬이나 취재원의 인사에도 불안은 스며있다. 내 시선이 바른 지, 글은 곧은지 나 자신을 의심하고 재촉한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후회되는 일은 그 불안 속에 흘려보낸 시간들이다. 불안과 필연적인 외로움의 해법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다. 겨우 찾은 하나의 방법이 여행이다. 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에서 내려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좋았다. 오래된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마을 사람들 표정과 옷차림, 집의 형태와 집을 둘러싼 풍경을 보고 있으면 불안이 분산된다. 그 낯선 경험들이, 질문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
나의 지금의 꿈은 나와 친해지는 것이다
엄마는 나를 낳고 열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한다. 뱃속에 비뚤게 자리 잡고 있어 분만이 쉽지 않았다고. 가끔 뱃속에서부터 비뚤어졌던 걸 보면 지금은 잘 자란 거라고 칭찬인지 구박인지 모를 말씀을 하시곤 한다. 여전히 비뚤어진 것인지, 아직도 나는 관심사가 남들과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가 많다. 남들과 다른 시선은 업으로 글을 쓰는 이에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목을 끌지만 맹탕인 경우도 있으니까. 그 단점을 보완하는데 10년이 걸렸다.
좁은 문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내게 글쓰기란 여전히 고독과 싸워야 하는 고단한 직업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글에서 나를 분리시키려 노력했지만, 완성된 글 속에는 내가 숨어 있다. 타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불안한 내가. 최근에는 그 텍스트 뒤에 숨었던 자아를 표면으로 끌어내는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것이 여행 다음으로 선택한 불안과의 동거 방식이다. 다시 말해 나와 친해지는 방법. 발화점 낮은 물질처럼 가볍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세상에 남들은 눈치 채지도 못하고 관심이 없는 이러한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묻겠지만, 고민 없이 써 내려간 글처럼 미래의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