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거리는 살기 위해 필요한 간격이다
다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아이 이야기를 한다. 말은 아이 이야기인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부모 안에 눌어붙은 죄책감과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지 못할까”라는 민낯이 드러난다. 그걸 마주하는 순간마다 나는 안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너무 정상적인 일이라는 걸. 영유아 시기에는 몸이 고단하다. 잠을 못 자고, 허리가 부서지고, 하루가 물리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 고단함의 결이 바뀐다. 이제는 마음과 정신이 먼저 닳아간다. 이 역시 정상이다.
내일 오사카 출국을 앞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현금이 필요해 환전을 하고, 작은아이 학원 라이딩을 오가다 보니 저녁이 되자 몸이 말 그대로 녹초가 됐다. 그 와중에 사춘기 딸은 시건방짐과 되바라짐의 끝판왕을 갱신 중이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버튼처럼 눌렸다. 첫아이 사춘기 때보다 나는 더 쉽게 폭발했고, 뒷목은 퉁퉁 부어 있었다. 육신의 한계는 숨길 수 없었다. 집은 엉망진창,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또 뭘 두고 왔나 봐.”
입으로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진심이었다. 몸도 마음도 나를 떠난 느낌. 그래도 여행 갈 책은 챙겼다. 늘 그렇듯, 도망치듯 읽을 책을 가방에 넣었다. 아, 제발 숨통이 트이는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길.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랑이 많은 남편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서늘해진다. 우리는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지만, 추억보다 짜증과 열받음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번 여행도 그 오마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기억만 남고, 나에게는 이 쓸데없이 큰 짜증과 화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란다.
사실 가족은 늘 좋지만은 않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게 정상에 가깝다. 매일 얼굴을 보고, 감정을 숨길 수 없고, 가장 약한 부분을 들키는 관계니까. 그래서 가족에게는 거리가 필요하다. 물리적인 거리이기도 하고, 감정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숨소리에도 화가 난다. 잠시 떨어져야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이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필요한 간격이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가족이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아이가, 배우자가, 가족이라는 이름이 내 인생의 위안을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만 가족은 도구가 아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도 아니다. 가족은 거울에 가깝다.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어디까지 버티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비춰준다. 보기 싫은 얼굴도 그대로 보여준다.
오늘의 분노, 오늘의 쓰러짐은 실패가 아니다. 내가 지금 너무 멀리 와 있고,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이 거울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잠시 멈춰 서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부디 이번 여행에서는 서로에게서 한 발짝 떨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돌아와 다시 이 거울 앞에 설 때, 조금 덜 아픈 얼굴로 나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2월은 리베카 솔닛의 책으로 나를 돌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