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그 날

세월호의 아이들과 유가족께 바칩니다.

by 흰 점

흠 없이 맑고 깨끗한 어느 날, 비 갠 뒤 청명한 가을의 대기, 그 날은 꼭 그와 같았다.

인왕산 자락 달동네에서 뛰놀던 그 시절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다 집 앞에 들어서는데, 문득 뒤돌아 바라본 정경은 너무나 깨끗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그 청아한 고요 속에 잠긴 묘한 불안감. 정체모를 불안 속에 넋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혼이 나간 듯 넋이 나간 듯 정신없는 엄마의 모습. 주섬주섬 무얼 챙기는지 울먹거리며 중얼거리며 곧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가셨다. 얼결에 들은 한 마디, 네 동생이... 죽을지도 몰라. 크게 다쳤대...

엄마의 뒤를 따라 대문을 나서는데, 시선을 사로잡은 청명한 하늘. 그 색이 노랗게 변하고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생전 처음 경험해 본 현상.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그와 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해보지 못했다. 다만, 청명한 가을 하늘, 비 갠 뒤 깨끗한 대기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그 후 40여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4월. 대한민국 국민에게 드리워진 슬픈 트라우마. 어릴 적 죽을 뻔했던 내 동생은 살아서 장가도 가고 아이도 낳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기억이 이리도 생생한데, 그분들은 과연 이 날들을 어떻게 견디실까.

아들 딸. 눈 앞에 수장되는 것을 생생히 목격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 동동 구르며 울부짖어도. 온갖 장비 다 갖춘 국가 속수무책 지켜만 보니. 그 폭력, 그 분노, 그 슬픔.

4월이면 잠 못 이룰 유가족의 전율에. 죄스럽고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부디 잘 견디시라. 나라를 나라답게 대한민국을 바꾸는 죽음이었던 것을. 아이들의 넋이 이 땅에 살아서 사람들을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고 이 땅의 미래를 바꾸는 것을. 부디 똑똑히 보시게 더 잘 견디시라.

4월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생이 죽음 후에 더 역동하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함께 경험하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으시고, 부디 강건하게 잘 이겨내시길....


흠 없이 맑고 깨끗한 어느 날, 청명한 가을의 대기, 이제 그 날은 4월의 그 봄이 밀어낸 듯. 슬픔은 더 크고, 가해자가 된 듯 괴롭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되새기고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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