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선물한 신발

by 흰 점


‘신발’은 때론 자유로, 때론 구속으로, 보호의 역할을 하면서도 구속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신발을 신음으로써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상징을 얻기도 하였고, 자신의 권리를 누군가에게 넘겨줄 때 신발을 벗어주거나, 누군가에게 신발을 신김으로써 그 지위의 회복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보다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하게 된 신발이지만, 신발은 기능적으로 발을 '보호'하고 건강을 돌본다. 기술의 발달과 경제력에 따라 짚신, 나무신, 고무신, 가죽신,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신발은 대체로 그 역할에 충실해왔다. 다만, 여성에 있어서만큼은 기능보다 ‘미’가 중요한 잣대가 되었고, 그 시선의 주체도 여성 자신은 아니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신발을 만드는 장인도, 그 신발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도 남성에게 의존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여하튼 잘록한 허리를 연출하기 위해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었고, 아름다운 발을 유지하기 위해 3~4세부터 ‘전족’을 실시하는 일도 있었다. 여기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남성의 시선이었을 것이며, 그 강요된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의 몸은 심각한 무리를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아가씨'에서 영화 초반에 신발을 잃어버린 숙희(하녀)에게 히데코(아가씨)가 자신의 신발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모부로부터 철저하게 성적 대상으로 가스 라이팅 당하며 길러져 온 히데코는 점잖은 차림의 남성들에게 외설적인 책을 읽어줌으로써 그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강요당한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 날 사기꾼 백작이 접근하고, 그녀를 망치기 위해 하녀로 숙희가 등장한다. 이 둘의 공모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결국 두 여성은 자신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던 이모부와 백작으로부터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다. 그들을 지배하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향한 여정, 속박되었던 삶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신들만의 시선과 욕망, 의지를 찾게 되는 그들에게 신발은 탈출과 해방의 상징이 된다.




반면, 최근 즐겨보는 드라마 속 열혈 변호사 홍차영은 늘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그녀가, 보기에도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닌다. 어디 그녀뿐이랴. TV 화면에서 젊은 여성이 하이힐을 신지 않은 장면은 보기 어렵고, 심지어 여성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들은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기도 한다. TV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거나 시대적 욕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하이힐이 멋져 보이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수 있으나 하이힐을 신고 하루를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사회는 변했으나 여성들이 아직도 '아름다움'을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패션 아이템으로 얼마든지 그 불편한 신발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그 선택이 혹여 강요된 아름다움은 아닌지. 어쩌면 억압이 보다 교묘해진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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