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를 맞으며 얻은 지혜
버스에서 내리려는 데 한두 방울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급히 피해 버스정류장 차양 안으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린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피하며 우산을 펴 들었다.
비를 피하는 나, 사람들... 반면 비를 맞으며 기뻐하고 있을 내 풀들... 피식 웃음이 났다.
게으른 주인으로 인해 자주 목말랐을 텃밭 채소들이 쑥쑥 자랄 절호의 타이밍이다. 고맙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후 찾은 텃밭은 그야말로 싱그러움 자체였다.
열무를 수확하고, 채소 이파리들을 따왔다. 봄날의 풍성함을 식탁에서 맘껏 누리며 건강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비단 채소를 먹어서만이 아니라 텃밭의 풍성함과 함께 호흡하는 기분이랄까.
유독 비 많은 봄날, 못지않게 볕도 많고 바람도 적당하다.
신영복 선생께서 자신의 책 '강의'를 통해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하나의 체계로서의 자연은 완전한 개별적인 것들의 조화이자 관계라고.
태양과 바람과 비가 나의 텃밭을 가꾸어주고, 그 텃밭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태양과 바람과 비와 텃밭에 감사하고 약간의 수고를 더해 텃밭을 가꾸고 쓰레기를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조화롭다. 그러고 싶다.
그러나 최상위 포식자 인간에게 자연은 하나의 대상이자 자원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생성과는 다른 질서, 인위적 질서가 도를 넘어 '위기'를 가져왔다.
이제는 봄날 '잦은 비'를 맞으며 지난해 '기후 장마'를 떠올리고, 올여름을 걱정하게 되었다.
잠시 건강한 텃밭 식물들이 여름철 장마를 견뎌낼 수 있을지, 곳곳에 범람할 홍수피해는 또 어떨지...
자연이 최고의 질서일 수 있는 것은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하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런 점에서 "자연은 최고의 질서"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신영복, 강의, p.38)
그러나 그 질서에 도전한 인간들... 자연의 응답이 두렵다.
자연의 질서 속 최상위 포식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의 절제'일 것이고, 그것이 곧 최고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 욕망은 자연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조차 이기적인 어떤 태도들을 포괄한다.
그러고 보니 텃밭에 자라는 내 풀들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그들의 주인이 아니었구나.
단지 하나의 개체로 온전한 그들과의 관계 속에 풍요를 누리는, 또 다른 하나의 온전한 개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