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발아’를 시도했다. 자급자족 모임에서 시도한 아파트에서 작물 기르기의 일환이었다. 놀랍게도 새싹을 발아시키는 데에 흙이 필요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통에 물 먹은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에 씨앗을 얹어주면 되었다. 다시 키친타월로 살짝 덮어주고 물을 뿌려준 후 뚜껑을 덮었다. 그렇게 5일~7일이 지나니 씨앗이 껍질을 벗고 싹을 틔워주었다. 이렇게 발아한 씨앗을 다시 흙에 옮겨 심고 물을 주니 몰라보게 쑥쑥 자라 이제는 초록색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조금 더 지나면 빨갛게 익어 먹기 좋은 방울토마토가 될 테지.
씨앗은 생명력이 강하고 영양분이 많아 일정 조건만 맞으면 스스로 싹을 내고 자란다고 한다. 어디선가 날아든 작은 씨앗들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수만 종류의 풀과 꽃과 나무들로 자라 다른 생명들의 생존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씨앗 한 알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 씨앗이 품은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하고 신비롭다. 다만 그저 심어주면 자라니 그 감사함을 모르고, 곳곳에 존재하니 당연하다 여길뿐. 일상은 신비의 연속이며 우리는 기적 속에 살아간다.
나는 오늘 짧은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들을 챙기고, 우리 집 작은 강아지를 돌볼 것이다. 나의 삶에는 경로가 있고 잘 지켜지지 않는 계획들이 존재한다. 계획이 어긋나는 것은, 순간의 선택과 조건의 조화로 말미암는다. 그리고 그 어긋남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현실이 내 앞에 있고, 내 삶의 경로를 말해주며, 현재의 나를 설명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고, 우연한 만남들이 실은 우연한 것이 아니며, 나의 생존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생명을 품은 한 알의 씨앗이 만들어낸 현실이고 열매인 것이다. 그저 우연히 내 손에 혹은 나의 텃밭에 날아든 것 같은 씨앗들,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그곳엔 경로가 존재한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만나 내게 생명력 있는 무엇이 되기까지.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존재일 터다.
창가에 자라고 있는 방울토마토와 바질과 화초들. 그 너머 창밖 이웃들과 다양한 소음, 사람 사는 냄새. 우연히 마주한 저들과 나는 무슨 관계인가. 각자가 잉태한 생명력과 필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섬세한 조건들이 만들어낸 마주침. 그렇게 우리는 한데 엮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는지. 그렇게 거대하고 신비롭게, 평범하게, 한 알의 씨앗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