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걸어남기
② 네팔에서 엄마가 되다.

/아 네팔 괜히 왔나?

by 부랑자
나는 카트만두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기관지를 잃었다.

저기, 너 언제쯤 나오는 거야? 나 담배 피우고 싶어.
/비자받고 출구로 가는 길이야. 너 지금 어디에 있어?
"어! 여기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택시를 타자./


공항에 도착해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에서부터 연락을 주고받던 가이드 겸 포터 네팔리 만식이(가명입니다)에게 언제쯤 나오냐는 연락을 받았다. 출구에서 나가자마자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네팔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환하게 반겨줬다. 그가 부른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창문이 없는 택시였는데, 창밖에서 들이닥치는 흙먼지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손수건이나 마스크를 챙기라고 한 거였구나. 이거 보통 먼지가 아니다. 네팔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내 기관지는 모래 먼지에 잠식당했고 벌써부터 피부가 따갑기 시작했다.

나는 택시 탑승을 지양하고 도보와 버스를 선호하는 등 로컬 생활 체험에 집착하는 편이라 원래는 공항에서 숙소까지 걸어가거나 마을 버스를 타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 내내 비포장도로가 펼쳐져 있었고 창밖에선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빤히 쳐다보는 현지인들의 눈빛에 조금 겁이 났으며, 일단 먼지가 보통 먼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로 숙소까지 걸어갔었다면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개고생 한 번 진하게 경험한 상태로 여행을 시작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출국 전 만식이와 카톡을 주고받았을 때 숙소까지 혼자 걸어서 가겠다는 내 말에 그가 무슨 쉰소리를 하는 거냐는 말투로 '응? 내가 데리러 갈게-_-;;' 라고 했던 이유를 알았지 뭐니.



/우리 초면 아닌 거 같아./

타멜 거리에 도착해 체크인을 한 뒤 그가 안내한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포카라에 살고 있는 내 또래 네팔리. 남성. 포터 겸 가이드. 마운틴러버. 한국말 조금. 영어 유창.

그의 키워드이다. 포터 겸 가이드인 만식이와의 첫 만남은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나부터도 일단 처음 본 사람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잘 나누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 역시 친화력이 굉장히 좋은 타입이라 '나 예전에 스리랑카 여행 갔을 때 너랑 만난 적 있는 거 같아. 나 처음 보는 거 아니지?' 하고 서로 농담을 건넬 정도로 친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식사로 달밧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어차피 산에 올라가면 지겹게 먹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커리를 주문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표정이 없고 로봇 같아서 다가가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나는 친절하고 많이 웃어서 편하다고 했다. 그런가? 그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은 바로는 한국인들은 같은 한국인은 항상 못 본 척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외국인들에겐 국적 불문 상냥했던 거 같은데 말이다. 뭐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거니까.


계속 이야기 하겠지만 내가 저 콜라 때문에 개고생 중에도 살이 단 1kg도 빠지지 않았다.



/저 모자 쓴 남자는 인도 사람이야?
아니. 네팔리야. 네팔 모자거든. 저게 마음에 들어?
/응 이쁘다 내 취향이야.
사러 갈래?

거절했다. 왜냐하면 나는 머리둘레가 60cm인 보기 드문 대두이기 때문에 모자가 머리에 들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역만리까지 와서 머리 크기로 수치당할 수는 없지.



오른쪽 수박을 들고 있는 남자가 쓴 모자가 네팔 전통 모자인 '다카토피'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포터나 가이드를 고용하면 그와의 일정에서 교통비, 도시에서의 식비 등은 트레커가 부담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공항에서 탄 택시 요금을 만식이가 모두 지불했다. 내가 돈을 주려고 하니까 그럴 필요 없다며 거절을 하길래 조금 신기했다. 물론 타멜에서의 식사 비용은 모두 내가 지불했지만 말이다. 트레커에게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물어볼 걸 그랬다. 이제 와서 뒤늦게 궁금해지네.



/나한테 왜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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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식이 덕분에 덤탱이 쓰는 일 없이 유심 구입과 네팔 루피 환전을 마쳤다. 그가 자기는 잠시 볼 일이 있다며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2시간 뒤에 만나서 트레킹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가자고 했다. 나는 잠시 숙소에 들러 마당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는데 숙소 주인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했다. 한국말 왜 이렇게 잘하냐고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니 안산 공단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고 돈을 많이 벌어 네팔로 돌아와 지금 이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거라고 했다. 한국 사람 너무 좋다면서 네팔 전통주를 가지고 올 테니 지금 자기랑 술 한 잔 하자고 계속 졸라서 거절했다. 왜냐하면 난 지금 경계태세를 갖췄거든. 거기서 내가 한 번 더 웃었으면 바로 술을 들고 올 기세였어 아주.


거기 계속 앉아있으면 무언가를 거절해야 할 일이 계속 생길 거 같고, 방에 들어가자니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 안에 혼자 있어서 뭐하나 싶어 숙소에서 나와 타멜 거리 구경을 했다. 만식이랑 같이 다닐 때는 몰랐는데 숙소에서 나오는 순간 미아가 된 느낌이 들었다. 웬일인지 여행자로 가득하다는 이 타멜 거리에 그 순간에는 지나다니는 외국인이 하나도 없어서 느낌이 더 이상했다.

별 일이야 있겠어? 번화가잖아. 여러 상점들을 기웃거렸다.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많아 한 곳에 들어갔고 내 마음에 쏙 드는 힙색을 하나 구매했다. 마침 트레킹을 하는 동안 보조 가방으로 들고 다닐 것이 필요했는데 잘 됐다. 네팔 여인들이 직접 짠 가방인 데다 질도 아주 좋아 보였고 가방에 쓰인 색 조합들이 아주 예뻤다(이때 산 힙색은 아직도 들고 다닌다).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음 바가진가 싶은 마음에 깎아달라고 이야기했고 그녀는 웃으며 깎아줬다. 거의 1/3 정도 깎아준 거 같은데 후에 이거 얼마에 샀냐는 만식이의 물음에 금액을 이야기하니 헤엑! 했다. 그 가격조차 바가지였나 봐. 솜씨 좋게 짜인 예쁜 가방이기도 했고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냥 여행자 세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지 뭐.


그리고 처음 타멜 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혼자가 아니라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5초에 한 번씩 나에게 말을 거는 네팔 남자들 덕에 그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흰 피부를 가진 동양인 여자가 신기했는지 위아래로 훑으며 기분 나쁘게 웃어대는 건 기본이었고, 뭐 필요한 거 없냐며 은근슬쩍 팔을 잡아대는 것은 물론 나에게 마리화나를 가지고 있냐는 물음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리고 이날, 나에게 네팔리 아들이 생겼다. 구걸을 하는 아이였는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연신 엄마라고 불러댔다. 얘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제발 놔줘! 곤란해하며 아이를 뿌리치려는 내 모습을 보고 시시덕거리던 그 눈빛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굉장히 공포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그냥 돈을 조금 주고 도망가야 하나? 여기 나름 여행자 거리인데 그간 다녔던 아시아 국가들은 순한 맛이었구나 어떡하지? 나 여기 괜히 왔나?? 오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멀리서 나를 부르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하느님인가? 저기 혹시 알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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