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걸어남기
③ 드디어 트레킹의 시작점으로

/베시사하르를 향해

by 부랑자
콧구녕 속이 탄광이 되었다.


/선택./

지금 여기서 뭐해!
/나 어떻게 찾은 거야?!
...
구걸하는 아이야. 돈 주면 안 돼.

만식이었다. 그는 네팔리들 사이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해 난감해하고 있던 나를 잡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볼 일을 마치고 나를 데리러 숙소에 갔는데 그곳에 내가 없어서 거리로 나와 날 찾고 있었다고 했다. 그에게서 후광이 내렸다. 이게 신이 아니면 뭐가 신이야? 천주교 신자지만 냉담자의 생활을 하고 있어 무교나 다름없던 나는 기간제 신앙인이 되기로 했다.


많이 위험했던 상황은 아니었는데 거기서 아이에게 돈을 줬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너나 할 거 없이 돈을 달라고 했을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네팔의 화폐가치와 내 벌이를 생각해본다면 해봤자 몇 푼 안 되는 돈이라 그냥 줘도 상관없을 금액이었겠지만 나로 인해 외국인한테는 돈을 뜯어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새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여행을 다니면서 꽤나 많이 겪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 잡히고 에워싸인 적은 처음이었다. 다음에도 이렇게 단순히 못 본척하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에 엮인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냉정하게 그 손길을 뿌리치고 도망을 가는 게 맞을까, 아니면 불쌍하니까 혹은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냥 몇 푼 쥐어주고 빠져나오는 게 맞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잊을 수 없는 카트만두의 해질녘/

아무튼 큰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트레킹을 위해 몇 가지 준비물을 사기 위해 상점가로 나섰다. 만식이는 내 아담한 배낭을 보더니 이게 다냐며 준비할 게 많을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이라곤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 품목을 제외하고 운동화와 편한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한 달짜리 여행치곤 6kg도 채 나가지 않는 23L짜리 배낭이 많이 아담하긴 했지. 사실 네팔 현지에서 구입하고 렌트하는 게 훨씬 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적게 가져온 것도 있었다. 근데 웬걸? 그다지 싸지 않았다. 그들이 이야기한 '저렴하다'의 정의는 한국 브랜드 등산 용품과 비교하면 '저렴하다'였던 거 같다. 나이 지긋하신 프로 등산러분들은 메이커로 휘감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까.

혹시 모를 고산병에 대비해 약국에서 다이아목스를 샀고 만식이가 잘 아는 상점에 가서 우비, 대용량 텀블러, 모자를 좋은 가격에 구입했다. 침낭이나 등산 스틱도 빌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건 자기가 내 몫까지 다 챙겨 왔으니 걱정 말란다. 뭐지 이 녀석?? 생각 이상으로 상냥하고 섬세한 친구였다. 간혹 가다 여성 트레커들 상대로 끝없이 플러팅을 하거나 금전적인 목적을 포함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포터들이 있다고 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트레커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타멜 거리를 벗어나 동네 구경을 시켜준다는 말에 아주 신이 나서 저녁을 먹기 전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주택가에 진입을 했는데 여행자 거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하교를 하는 아이들과 각자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주민들을 상대로 무언가를 판매하는 상인들 모두가 어우러진 풍경이 어린 시절 내가 뛰놀던 '우리 동네'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진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동네 전역이 흙먼지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 바로 카트만두인지라 내 기관지는 이미 흙먼지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피부 발진은 애저녁에 나타난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이곳의 해질녘 풍경에 마음이 풍요로워진 나머지 원래 공기란 이런 것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곳 역시 혼자서 산책할 엄두는 나지 않을 거 같다. 혼자 다니기 조금 위험.



아, 식사를 빼놓을 순 없지!

재료 본연의 맛. 목에 한가득 차는 퍽퍽함. 배때지 장독대가 가득 차는 진정한 변비의 맛.

위에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야기는 그냥 맛이 없다는 뜻이다.



/도시에 비가 내리면 산에는 눈이 쌓인다./

만식이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도시에 비가 내리면 높은 산에는 눈이 쌓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트레킹 일정이 조금 걱정됐다. 진짜 내일부터 시작이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안나푸르나 라운딩(AC)의 시작점인 베시사하르까지 가야 한다. 11여 시간 동안 펼쳐질 대장정이다. 내일부터는 인터넷도 못할 텐데 휴대폰을 목숨과도 같이 생각하는 인터넷 중독자가 과연 인터넷 없는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걱정과 함께 잠들었다. 태어나서 걱정을 가장 많이 했던 날이 아닌가 싶다.


전날 만식이가 알려준 버스 터미널로 혼자 가야 하는 줄 알고 일어나자마자 숙소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내 말과 동시에 만식이가 등장했다. 아. 너 나랑 같이 가는 거구나? 난 또 알아서 찾아오라는 줄 알았지(ㅋㅋ). 그가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가야 버스 터미널(Naya bus park, Gongabu)로 향했다. 도착한 그곳에는 외국인이 하나도 없고 일 떠날 채비 중인 현지인들만 있었다. 아니 여기 투어리스트 버스 타는 곳 아냐? 이건 무슨 풍경이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 너무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어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로 향한 만식이는 버스표를 구입해왔고, 다른 여행자들의 여행기에서 봤던 로컬 버스나 투어리스트 버스가 아닌 태권도 학원차보다 작은 봉고차로 날 데려갔다. 이걸.. 타고... 7시간을.. 가는 거라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참 여러 교통 수단들을 경험했었는데 이런 식의 장거리는 또 처음이네. 그치만 걸어갈 순 없잖아? 타야지 어떡해.

나에게 오는 시선들에 꽤 큰 스트레스를 받은 지라 난 앞으로 절대! 남을 빤히 쳐다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왜이렇게들 빤히 쳐다보는걸까?




내가 닭띠라서 그런가. 아무튼 닭띠답게 닭장에 무사 탑승 완료.

콧구녕은 이미 탄광이 되었지만 더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손수건을 적셔 입과 코를 막고 혼돈의 카오스 카트만두를 떠나 베시사하르로. 이제 걷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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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걸어남기 ③ 안나푸르나 라운딩 / 트레킹의 시작점으로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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