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 엄마의 난임병원 방문과 시험관 시술기

엄마탄생(4)

by 청자몽

노산 이야기는 여러 번 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임신하게 됐는지 전후 사정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엄마탄생 네 번째 이야기 :



2017년생, 그 아이는 지금 7살(만 5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더 쓰게 된 이유


몇년째 키우면서, 천냥금의 빨간 열매를 본 적이 없다. 꽃은 몇번 봤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검색해보니 '인공수정'을 해줘야한단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청자몽


병원에 입원한 와이프를 보러 가신다는 예비아빠와 이제 막 태어난 조카가 너무 예쁜 이모의 이야기를 보다 보니, 2017년 한 해 동안 있었던 나의 임신, 출산기가 떠올랐다. 여러 번 쓴 이야기인데도 워낙 강렬한 기억이라, 다시 새록새록 그때가 생각났다.

2017년에 태어난 아이는 지금 7살, 유치원 최고 형님반이다. 겨울생이라 그런지 키도 작고 야리야리하여 걱정이긴 한데, 제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을 거라 믿는다.

임신이 안 될 때는 임신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또 막상 임신하고 보니 아이를 무사히 낳았으면 좋겠다 싶고.. 아이를 낳고 보니, 또 새로운 걱정문이 활짝 열린다. <미생>에 나오듯, 우리네 인생은 문을 열고 또 열고 또 열기를 반복하는 것 아닐까?

작년부터 꾸준히 한 이야기지만, 또 쓴다. 이전에 하지 않은 이야기 중심으로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가, 같은 시기를 건너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험관 1차 실패


43살에 큰 마음을 먹고 난임병원 문을 두드렸다. 40살 이전에는 살아가기 버거웠고 따로 난임병원에 갈 기회도 없었다. 아이에 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아예 말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임신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2015년, 43살에 아는 분이 난임병원에 간다면서 같이 아이를 가져보자고 했다. 그 여자분은 당시 37살(만 35세)이었는데, 아이를 가지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 나보다 훨씬 가능성 있어 보였는데도 그랬다. 2015년 당시 만 35세가 넘으면 '노산'이라고 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해보지 않은 생각을 뜬금없이 하게 됐다. 당시에 남편네 회사 사람들은 결혼도 많이 하고, 아이도 많이 낳았다. 결혼식과 돌잔치를 가느라, 거의 매 주말을 어딘가 가느라 바쁜 남편을 보니 미안했다. (라고 생각했다고 남편한테 말한 적은 없다. 좀 미안했다.)

40 중반에 제2의 삶을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도 한참 하던 때였다. 아는 분 따라, 운동도 같이 하고 난임병원도 가게 됐다. 일단, 난임병원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이 처음에 반대를 해서 설득을 해야 했다. 남 할 때 같이 해보아요. 어떻게 난임 지원을 받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덕분에 수월하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 여자분은 확실히 젊은 데다가, 여러 가지 알아본 것이 많아서 인공수정으로 한 번에 성공했다. 반신반의하며 대충 했던 나는 시험관 1차에서 당연히 실패했다. 나이 때문에도 그랬지만, 난소의 임신 가능성 수치가 1.x로 나와서 인공수정은 안 되고 바로 시험관 하자고 하셨던 건데.. 안 됐다. 내 배에 내가 주사를 놔야 하고 시간 맞춰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좀 힘들었다. 몸도 이상해졌다.

갑자기 등장한 메르스 때문에 한참 뒤숭숭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친정과 시댁 양가 어머니가 차례로 병원에 입원, 통원치료를 하셔야 했다. 1차 시술 실패 후 몸과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차례로 병원에 가드려야 했다. 친정엄마한테는 시술 관련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많이 기대를 하셔서 부담이 됐다. 2차와 3차 때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1차 실패 후에, 왜 실패했나?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몸을 따뜻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임 정보 웹사이트에서 성공했다는 분들 사례를 며칠 동안 검색해서, 부족한 부분을 정리했다. 일단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나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고, 아는 분 회사에서 1년 가까이 일을 했다. 잠시 아이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하지만 지운다고 지워지겠는가? 그러는 중에 나이를 1살 더 먹게 됐다.




시험관 2차도 실패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 채로 일을 하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큰 마음먹고 44살에 그만뒀다. 이제 그만 두면, 다시 일을 구하기 어려울 텐데.. 괜찮을까? 두려웠다. 그렇게 목숨 걸고 하던 일인데, 놓으려니 아쉬웠다. 하지만..

시험관을 한번 더 해보고, 실패하면 그만두자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사이트에서 찾아서 정리한 대로 열심히 해봤는데도 또 실패했다. 분당에 있는 유명하다는 한의원에서 한약도 지어먹어봤는데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1차 때보다 2차 때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이제 나한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어떻게 하지? 아이 생각을 완전히 접을까 말까? 하다가, 남편과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1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도 3번은 하는데, 그래. 적어도 3번은 해봐야지.라고 다독였다.

PT는 받지 않았지만,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는 분 회사에서 일할 때, 그 회사 분위기상 퇴근하고 운동을 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때부터 시작한 운동이었다. 내 맘대로 만든 동작대로 스트레칭하고 기구 운동하고 땀 흘리다가 나왔는데, 돌아보니 그게 상당히 도움이 된 것 같다. 버스 타고 가야 하는 곳이지만, 계단 열심히 올라가서 갈 수 있는 산을 가끔 갔던 것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도움이 됐다.

돌이켜보면, 1차 실패하고 2차 하기 전에 갑자기 일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거기서 일하지 않았으면, 운동하는 습관 같은 게 붙었을 리가 없다. 세상에 쓸데없는 게 없다. 뭐든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시험관 3차에 성공


3차는 준비를 많이 했다. 마지막이니까 병원도 다시 잘 알아보고, 선생님도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결정을 했다. 임신 가능 능력치는 이미 0.x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첫날 의사 선생님께 제대로 혼났다. 이제 오면 어떻게 하냐고! 시험관 성공 확률은 1%라고 하셨다. 실패할 확률이 99%였다.

의사 선생님은 혼을 내면서, 비타민D를 처방해 주셨다. 약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다. 2차 때부터 영양제와 철분제는 계속 챙겨 먹고 있었는데, 비타민D도 더 먹게 됐다.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선생님은 버럭하고 좀 쌀쌀맞은 듯도 하고 무서웠지만, 능력자였다.

의사 선생님 몰래, 열심히 알아본 한의원도 같이 다녔다. 마지막이어서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한약은 시술하기 전에 끊었다. 한약 먹을 때 뜸과 침도 진짜 열심히 맞았다. 먹는 것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1차 때 함께 했던 지인이 알려준 대로, 3차 때는 그대로 지켜서 했다. 조금 황당하게 들렸지만 예를 들면, 시술받고 며칠 동안은 목욕하지 않는다./ 무향 비누로 세수만 하고 무조건 누워있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시술 후 한 3~4일쯤 지나면 머리 감는데, 무향 샴푸로 감는다./ 시술 전후로 전복을 삶아서 한 마리씩 먹는다 등등.. 을 지켰다.

그리고 운 좋게도 세 번째에 성공을 했다. 45살 3월이었다. 많이 늦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찾아와 준 아가에게 감사한다. 2017년 당시에는 만 44세까지 시험관 시술 지원을 해준다고 했는데, 만 43세에 성공했다.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한 셈이다. 의사 선생님도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가능성 없다고 절레절레 고개 흔드시다가, 시술 때 용기를 북돋워주시고 마지막에 분만 선생님도 추천해 주셨다. 노산이고 위험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12주 정도 되어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난임병원을 졸업하고(졸업한다고 표현한다), 분만병원으로 옮겼다. 동갑내기 남편은 좋아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는 내가 느끼는 부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걱정한다. 사실 나도 내 나이 때문에 미안하고 걱정이 된다. 마치 걱정 없는 사람인 거처럼 살다가, 문득문득 걱정이 된다. 말다툼하다가 이 부분 때문에 크게 싸우기도 했다.

화해 비슷한 걸 했지만, 이후로는 언급하지 않게 됐다. 남편과 나는 각자 생각한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엄마 이전에, 나의 삶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내 삶을 씩씩하게 살다가 기회가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삶도 살아지지 않을까 싶다.



33주 전까지의 생활


임신 당시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여서, 집에 있을 수 있었다. 초기 4개월은 내내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초기에 유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무서웠다. 병원은 동네 병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너무 노산이다 보니 큰 병원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 1시간 넘는 거리에 큰 병원을 다녔다. 차가 없이 지하철 타고 다녔다. (지금도 차가 없다.)

4개월쯤 누워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바깥세상은 여름이 되어 있었고, 슬슬 옷이 맞지 않았다. 조심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괜찮은 줄 알고 유튜브 보고 산모 운동(?) 이랍시고 따라 했다가 하혈했다. 엉엉 울면서 택시 타고 병원에 가서, 응급 선생님께 혼났다. 임신한 동안에는 운동을 포기하고 느긋하게 지냈다.

임신중독증 증세를 알게 된 33주 직전까지는 큰 일 없이 잘 지냈다. 노산이라서,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알게 됐다. 검사를 더 했던 것 같고, 태아의 성별도 빨리 그리고 바로 이야기해 주셨다. 노산이라서..

특별히 태교를 하지는 않았는데, 거의 집에 있다 보니 심심해서 바느질로 아기 용품(배넷저고리, 모빌, 장난감 공, 손싸개, 천신발, 조끼)을 만들었다. 뭔가 재미나고 긴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천천히 읽기도 했다. 매미소리를 아주 가까이서 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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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탄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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