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탄생(6)
새치 또는 흰머리가 문제 될 줄 몰랐다. 염색 안 하고 다닐 때는 할머니들이 제일 많이 물었다. 할머니냐? 엄마냐? 고.. 그런데 염색을 한 다음에는 애들이 놀린다.
엄마 탄생 여섯 번째 이야기 :
머리 때문에 문제가 생길 줄이야.
염색 안한채 아이와 다니는 건 미친 짓이다.
보기 좋은 갈색이며 반곱슬인 머리. 저게 원래 내 머리였다. 이제는 아이의 머리를 보며, 내 원래 머리색을 추억한다.
원래 염색하지 말자 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아이 낳고 호르몬 교란이 온 탓에 면역력이 약해진 게 문제였다. 모유 수유 끝내고 몇 개월 지난 후, 염색을 했더니 지루성 두피염이 심하게 왔다. 비듬이 눈처럼 내리고, 두피가 심하게 가려운 데다가 빨갛게 피부병이 왔다. 병원 가서 약 받아오고, 샴푸 바꾸고, 별별 난리를 다하여 간신히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다시 염색을 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장원 원장님한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염받은 후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한동안은 아예 미장원 자체를 가지 못했다.
염색을 하지 않은 채,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건 미친 짓이었다. 사람들은 내 얼굴 보지 않는다. 아이 보고 예쁘다 하면서, 내 '머리'만 보고(정확히는 머리색) 할머니냐고 물었다. 사실 사람들이 아니고, 오지랖 넓은 할머니나 지긋한 나이의 쾌활한(?) 아주머니들이 그러셨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할아버지 한분도 할머니냐고 했다. 심하게 우는 아이 달래느라 등에 엎고 걷는데, 그걸 따라오시면서 "할머니가 고생 많으시네." 했다. 아이는 눈물을 그치고, 내려달라고 했다.
할머니와 아줌마와 오지랖 할아버지 등등에게 여러 번 할머니냐 소리를 들으며, 온갖 수모를 다 당하던 나는 문득 결심했다. 나 상처받는 건 괜찮은데, 내 애는 무슨 죄냐. 트라우마를 던져버리고, 작년 6월에 드디어 몇 년 만에 미장원 가서 머리 자르고 염색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괴롭히지 않겠지.
는 나의 착각이었다. 문제는 다시 시작됐다.
아이 친구들의 심리가 궁금해
아니 우리가 처음 본 사이도 아닌데? 2~3년 가까이 새콤이 엄마라고 하지 않았어?
염색하기 전 일이다. 그래도 작년이니까 유치원 다닌 지 한 2년쯤 됐을 때다. 딸과 잘 노는 아이가 어느 날 느닷없이 물었다. (그래도 얘는 예의는 있었다.)
"저... 혹시 새콤이 할머니세요?"
"아니. 엄만데. 나 엄마야. 맨날 '새콤이 엄마'라고 하더니, 왜 그런 걸 물어?"
왜 물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다행히 딸이 없을 때, 정확하게는 현관에서 아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 물었다. 물어봐 줘서 고마워.라고 덧붙였다. 궁금하면 물어야지.
작년 6월, 미장원에서 염색하고 유치원 현관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꽤 밝고 유쾌하다고 생각한 남자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아주 밝은 표정으로..
"새콤이 할머니?! 킥킥킥.."
뭐? 참나.
미장원에서 머리하고 가서, 색깔 자체가 달라졌을 텐데. 거기다 커트까지 싹 했는데.. 이게 왠 날벼락? 너무 기가 막혀서 대답은 안 하고 신발 갈아 신는 동안 노려보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얘도 분명 염색하기 전에 나한테 새콤이 엄마, 새콤이 엄마 불렀던 아이인데. 궁금했다. 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자아이라 말을 길게 자세히 못해서 그런 거였나 싶기도 하다.
('새콤이 엄마, 오늘 미장원 갔다 오셨어요? 머리가 많이 바뀌셨네요?')
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한 건가?
잘 모르겠다. 나랑 아무 억한 것도 없었는데.. 에이 쩝.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후로 나를 봐도 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잊어버리기로 했다. 기분 나쁘지만.
얘가 문제다. 진짜 문제.
3년 가까이 새콤이랑 가장 자주 함께 한 친구다. 얘의 엄마랑도 나름 친한 사이. 대화도 제일 많이 했다. 세 번째 아이랑은 따로 밖에서 롯데리아도 가고, 자주 놀기도 해서 문제 될게 전혀 없는데...
한 두어 달 전부터 딸을 괴롭힌다.
새콤 아빠나 다른 친구 엄마들은, 세 번째 아이가 새콤이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 같다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세 번째 아이는, 일명 아싸다. 아웃사이더.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타입이다. 그런데, 어쩔 때 보면 잘 놀다가 한 번씩 괴롭힌다. 그래서 내가 따로 그러지 말아 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괴롭히는 타깃을 넓힌 모양이다.
지난주 금요일 나한테 뜬금없이
"킥킥.. 새콤이 할머니?"
뭐어? 갑작스러운 공격에 표정관리를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그 아이는 건수 잡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월요일 현관에서 또 새콤이 할머니라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그 애 엄마가 당황해하며 죄송하다고 90도 인사를 했다. 반응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어이가 없어서,
"반사. 내 흰머리 왕창 가져가라. 내가 할머니로 보여? 참나."
어휴.. 써놓고도 어이가 없다.
이후로 그 아이 엄마한테만 인사하고, 그 녀석은 투명인간을 보는 듯하고 있다. 할머니나 아줌마, 할아버지한테 또 당할 때랑 또 다르다. 현재 내 머리는 짙은 검은색으로 염색한 상태고, 흰머리는 자세히 봐야 보일까 말까 한 상태다. 가르마 주변에 보이는 새치는 새치커버로 아침마다 덧입혀주고 있다. 얘는 왜? 나의 약점을 놀리는 걸까? 관심받고 싶나? 딱한 노릇이다.
화난다고 무턱대고 혼내기도 뭣하다. 그 아이 엄마가 상처받을 것 같다. 이젠 하다 하다 애한테도 당하는구나. 쟤는 왜 갑자기 저럴까? 속상하다.
엄마가 참 힘들다. 힘들어.
비 오는 날이라 우울과 슬픔이 함께 하는 날이다. 억지로 떠나보내지 않고, 속상함을 창피하지만 적어봤다.
원글 링크 :
엄마탄생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