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처음 해 보는 일(2) :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엄마탄생(24)

by 청자몽

원래 회색/ 중간/ 무념무상/ 좋은 게 좋은 거다로 살았다. 그러다가 뭔가 '좋아요'하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탄생 스물네 번째 이야기 :



"나는 이게 좋아!"라는 게 생기다.


8월 말에 씨를 심은 해바라기가 꼭 두 달 만에 꽃을 피웠다. 10월 말 해바라기 꽃 피었을 때 찍은 사진 ⓒ청자몽


원래 나는 '세모'였다.

이게 좋아? 저게 좋아? 하고 물으면, 세모. 그러니까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그냥 그렇다. 는 답을 했다. 뭐가 특별히 좋은 것도, 그렇다고 엄청 싫은 것도 없이 살았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그냥 하자는 대로 하고. 내 취향이 없다고 해야 될까? 그냥 그냥 살자는 주의였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좋아하는 게 생겼다.

아니, 좋다/ 싫다고 말을 해야 했다. 엄마는 이게 좋아. 저건 싫어. 그렇게. 왜냐면 아이가 뭔가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물었기 때문이다. 별로 선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답을 해줘야 했다. 이전에 나처럼 그냥 아무거나 되는대로 '세모'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세계란 그런 것이었나 보다.

좋아? 싫어? 둘 중에 하나. 나도 그래. 아냐. 나는 안 그래.라고 답하고 왜 그런지를 꼭 묻거나 답했다. 답을 해줘야 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제야 뭐가 좋은지, 뭐가 싫은지.. 내 취향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게. 그냥 말하면 되는데, 나는 왜 예전에는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이 살았을까? 씁쓰름한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이제 좋은 게 생겼다.

아니 좋은 건 좋다고 말하게 되었다.




해바라기가 좋아.


어떤 꽃이 좋아요? ⓒ청자몽

아이가 꽃에 관해 물었을 때, 나는 해바라기가 좋다고 했다. 해바라기? 왜요? 그건.. 전에 회사 다닐 때, 생일날 카드를 만들어주는데 그때 카드 만들어주는 이모가 엄마보고 키 크다고 해바라기를 카드로 만들어줬거든. 해바라기와 기린. 이렇게 2개를 받았지. 그래서. 그때부터 해바라기가 좋더라고.


싱겁긴 싱거운데.. 그런 이유로 해바라기가 괜히 좋아졌다. 실제로 두어 번 키워본 적도 있는데, 꽃까지 피워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해가 쨍쨍 내리쬐는 곳으로 이사 와서 성공했다. 해바라기는 길기도 길었지만, 꽃봉오리가 활짝 피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활짝 핀 해바라기를 보면서 뿌듯했다.

맨날 씨앗만 보다가 꽃으로 만나니 신기하기도 했다. 막연히 좋다고 생각하던 어떤 것이 쑥쑥 자라, 활짝 피어나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좋은 건 좋다고 말하고, 싫은 건 싫다고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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