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요리(10)
망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먹을만한 뭔가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22년째 여전히 시행착오 중
이웃 작가님의 군침 도는 레시피 중에 따라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로 만든 요리다. 만드는 방법을 캡처해 두었다가 따라 했다.
짜잔. 그래도 보기에는 괜찮았다.
흠. 좋았어.
마침내 남편에게 먹어보라고 했다. 풉..
아주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한 것을 후회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윽.. 짜. 이거 왜 이렇게 짜요?"
아. 그렇죠. 조금 짜긴 했는데.. 윽 소리가 날 정도였구나. 에효. 이번에는 뭐가 잘못된 걸까? 캡처해 놓은 화면이랑 내가 해놓은 오이반찬이랑 뭐가 다를까?
너무 짜구나. 하면서 뚜껑을 급하게 닫았다. 며칠 지나면 먹을만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김치처럼 익으면. 하자마자 먹기엔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그거슨 에누리 차이?!
부추 대신 미나리로 대처한 게 마음에 걸렸다. 당근도 생략을 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오이 절일 때 소금과 설탕 넣는 부분을 조정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무조건 2 숟갈, 2 숟갈이 아니었을 거다. 내 오이들은 많이 날씬하고 가늘었으니, 조금 덜 넣었어야 하나보다.
그래도 절일 때 괜찮았고, 해놓고 먹을 때도 내 입맛에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늘 내 요리를 먹어야 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사실.
아니면 역시 새로운 건 무린가?
싶다가 또 요리하기가 싫어졌다. 에이.
나는 왜 요리를 못한다고 말하고 다녔을까?
"망쳐도 괜찮아" 괜찮다고.
결혼하면서부터 요리를 시작했으니, 22년 차 요리사다. 10년 차도 아니고 20년 차. 그러면 굉장히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할 줄 아는 것만 한다. 몇 개 되지 않아서 문제지만...
누군가 요리 잘하세요?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다. 다행히 내 얼굴에 혹은 몸짓에 요리가 없어서인지, 요리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다.
요리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일단 하기가 싫다. 어쩌다가 하기 싫어졌는지 생각해 봤다. 먹는 거 비슷한 걸 만들어야 하면 하긴 하는데... 가타부타 말 듣는 게 싫다.
하기 싫은데도 뭔가를 해서 매일 해서 먹어야 한다. 딸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선택의 영역이었던 요리는 필수가 됐다. 힘들지만 이유식부터 만들었다. 사서 먹이기도 했지만, 이유식책이랑 저울이랑 사서 서툴게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잘 먹는다.
뱃고래가 적어서 먹는 양이 많지 않았지만, 뭘 줘도 먹었다. 아이의 큰 장점은 뭐가 됐든 일단 먹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맛있다고 칭찬한다. 덜 맛있는 음식이나 약간 망쳐 보이는 것도 일단 먹는다. 먹어보고 안 먹는 한이 있어도 먹는다.
아이 덕분에 꽤 오랫동안 선택사항으로 여겼던 요리를 그래도 꾸역꾸역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여전히 할 수 있는 가짓수가 월등히 늘지 못했더라도, 뭐라도 준비해서 매일 먹는다. 감사하다.
잘하지 못하는 요리를 계속 망치고 망치면서 한다. 요리도 예술처럼 재능이 있어야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정 힘들면 외주(파는 반찬 사 오기 등)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는 날까지 해야 한다.
망쳐도 괜찮아. 어쨌든 했으면 그만이고. 아니면 말고. 너무 들려오는 말에 서운해하지 말고, 양껏 할 셈이다. 오늘 귀한 한 끼도 어쨌든 해냈으면 됐다. 괜찮다. 괜찮아.
저 위에 망친 오이 반찬도 4일 지나 짠 물이 더 빠지고 나니 처음보다 났다. 다음번에는 부추랑 당근 채친 것도 넣고, 절일 때 소금과 설탕도 덜 넣어봐야겠다. 두어 번 더 망치고 나면 감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