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표정이 내 기분을 결정짓듯, 나의 얼굴도 그의 하루를 물들인다
남편의 표정에 따라 내 하루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가 웃으면 공기가 부드러워지고, 그가 굳은 얼굴을 하면 집 안의 온도까지 조금 내려간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잘 웃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은 늘 그를 ‘인상 좋은 사람’이라 말한다.
“항상 웃으시죠?”
“되게 편해 보여요.”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작게 웃는다.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나는 남편의 굳은 얼굴을 너무 자주 본다.
설거지할 때, 손끝에 물이 닿을 때마다 생기는 주름진 이마.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 때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일을 마치고 노트북을 덮는 그 찰나의 표정.
그 어떤 미소도 머물지 않는, 단단한 얼굴이다.
“좀 웃으면서 하면 안 되나?”
내 속에서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늘 입 안에서 삼켜진다.
그의 하루를 생각하면, 그 표정마저 이해가 된다.
남편은 아침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온다.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하는 날이 많고, 집에 와서도 다시 노트북을 연다.
하루 종일 머리로 일하고, 몸으로 책임을 짊어진다.
그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어제 새벽에는 남편이 약통을 뒤적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두통약을 삼키며 한숨을 내쉬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며칠 전엔 속이 답답하다고 했다.
“괜찮아,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이 진짜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그의 굳은 표정은, 아마도 ‘나 힘들어’라는 무언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 표정은 늘 내게 무언가를 말한다.
“나도 좀 쉬고 싶어.”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나도 사람이라 그래.”
남편은 불평을 잘 하지 않는다.
늘 “내가 할게.”, “괜찮아.”, “금방 끝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들 뒤에는 ‘나도 조금만 도와줘’라는 진심이 숨어 있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가족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 굳은 얼굴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조용히 그를 안아준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휴대폰을 같이 본다.
때로는 ‘괜찮아?’라는 말보다, 함께 있는 침묵이 더 따뜻하다는 걸 배웠다.
남편이 유일하게 환하게 웃는 순간은 요리할 때다.
주방에서 칼질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간을 보며 “음~ 딱 좋아.”라고 말한다.
그 순간만큼은 얼굴 전체가 환해진다.
나는 그 표정을 좋아한다.
그 표정을 보면, 세상 어느 고급 레스토랑보다 따뜻한 밥상이 차려질 것만 같다.
남편의 요리들은 참 단순한데, 이상하게 깊은 맛이 난다.
재료를 볶고, 물을 붓고, 끓이고, 야채를 넣고, 간을 본다.
그 단순한 순서 속에 남편의 하루와 마음이 녹아 있다.
재료가 익는 동안 동안 남편은 잠시 표정을 푼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 앞에서, 그는 가장 편안한 얼굴을 한다.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미소 짓게 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남편이 굳은 표정을 짓는 건, 나에게 그만큼 솔직하다는 뜻 아닐까?
밖에서는 웃음을 유지하고,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상냥한 얼굴을 유지하지만,
집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거다.
그의 굳은 얼굴이, 사실은 신뢰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예전엔 남편이 인상 쓸 때마다 나도 기분이 흔들렸다.
그의 표정 하나에 하루의 온도가 좌우되는 게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의 얼굴이 내 기분을 흔드는 건, 그만큼 내가 그를 아끼기 때문이다.
무관심했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결국 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표정을 읽고, 그 안에 숨은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
때로는 짜증이 섞여 있어도, 그 안의 피로를 먼저 이해해 주는 일.
그게 사랑의 가장 현실적인 형태 아닐까.
며칠 전, 남편이 말했다.
“나는 예쁜 영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그 한마디가 괜히 마음을 울렸다.
아, 내가 그의 거울이었구나.
그의 표정이 내 기분을 결정짓듯, 나의 얼굴도 그의 하루를 물들이고 있었구나.
그래서 요즘은 노력한다.
그가 집에 들어올 때 웃는 얼굴로 맞이하기.
괜히 잔소리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참기.
그리고 그가 굳은 표정을 지을 때, 먼저 다가가 “괜찮아?” 하고 손을 잡아주기.
사랑은 거창한 말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표정을 읽고, 그 안의 온도를 나누는 것.
그가 오늘도 굳은 얼굴로 설거지를 한다면, 나는 그 뒤에서 조용히 허리를 감싸 안을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어깨가 살짝 내려가고,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나는 알아차릴 것이다.
그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가 다시 부드러워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