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의 두께 차이가 만들어낸 '숨 쉬는 소리'의 물리학
Sound Essay No.90
경주에 있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이 종을 타종하면 그 소리는 맑은 쇳소리로 시작했다가, 곧이어 웅장한 저음으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사람들은 그 소리가 마치 "에밀레(어미 때문에)..."라고 부르는 어린아이의 원망 섞인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현대 음향학자들이 정밀 분석한 결과, 이 종소리에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치밀한 음향학적 장치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리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맥놀이(Beat)' 현상입니다.
서양의 종(Church Bell)은 "땡!" 하고 치면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깔끔하게 끝납니다(Decay). 하지만 한국의 에밀레종은 다릅니다.
종을 치면 처음엔 큰 소리가 나다가 1~2초 뒤에 소리가 잦아듭니다. 그런데 3초 뒤에 다시 "우우웅~" 하고 소리가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고, 또다시 커집니다. 마치 종이 살아서 '숨을 쉬는(Breathing)' 것 같은 이 현상이 무려 1분 이상 반복됩니다.
이것이 바로 '맥놀이'입니다. 맥놀이란 진동수(주파수)가 아주 미세하게 다른 두 개의 소리가 섞일 때 발생하는 파동의 간섭 현상입니다.
보강 간섭: 두 파동의 마루가 만나면 소리가 증폭됩니다(커짐).
상쇄 간섭: 마루와 골이 만나면 소리가 소멸합니다(작아짐).
이 두 현상이 교대로 일어나면서 규칙적인 리듬감(Waviness)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미세한 주파수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비밀은 종의 '두께'에 있습니다. 에밀레종은 겉보기엔 완벽한 대칭 원통형 같지만, 정밀 스캔을 해보면 부위마다 두께가 미세하게 다릅니다.
완벽하게 균일한 종이라면 딱 하나의 주파수(예: 64Hz)만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두께가 불균일한 에밀레종은 타종 시 서로 다른 두 개의 주파수, 예를 들어 64Hz와 64.3Hz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이 0.3Hz의 차이가 바로 맥놀이의 주기입니다.
놀라운 점은 신라 시대의 장인들이 이것을 의도했느냐는 것입니다. 현대 학자들은 이것이 실수가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비대칭'이라고 추정합니다. 종의 내부를 깎아낼 때 일부러 편차를 주어, 두 소리가 서로 싸우지 않고 아름답게 섞이도록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복원된 종들은 이 미묘한 오차를 재현하지 못해 그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에밀레종에는 서양 종이나 중국 종에는 없는 독특한 구조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종 머리 꼭대기에 솟아 있는 대나무 모양의 관, '음관(음통)'입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단순한 장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음향 실험 결과, 이 구멍은 '잡음 제거 필터(Low-pass Filter)'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종을 칠 때 발생하는 날카로운 금속성 고음(High Frequency)과 잡음들은 이 관을 통해 밖으로 빨리 빠져나가 버립니다. 반면, 웅장하고 부드러운 저음(Low Frequency)은 종 내부에 남아 오랫동안 맴돕니다.
덕분에 에밀레종은 쇳덩어리를 때리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귀를 찌르는 소음 없이 묵직하고 거룩한 저음만이 천 년을 넘게 울려 퍼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설 속의 아이는 쇳물에 녹지 않았습니다(실제 성분 분석 결과 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장인들은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더 호소력 짙은 소리를 '과학'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종소리가 3초 간격으로 "웅~... 웅~..." 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리듬은,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호흡 주기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때 알 수 없는 안도감과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슬픔을 느낍니다.
가장 완벽한 기술은 보이지 않습니다. 에밀레종은 천 년 전의 하이테크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감성을 가장 깊은 곳까지 건드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세계 음향학의 불가사의이자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