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대지 않고 소리로 뇌를 수술한다 (HIFU)

수전증을 멈추게 하는 1,000개의 소리 파동

by JUNSE


Sound Essay No.99


칼을 대지 않고 소리로 뇌를 수술한다 (HIFU)

NEJM이 입증한 '집속 초음파'의 기적 : 수전증을 멈추게 하는 1,000개의 소리 파동

new-hifu-9472.jpg 출처 : www.utsouthwestern.edu

1. 수술실 풍경이 바뀌었다


"환자분, 이제 물을 마셔보세요."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는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깨어 있습니다. 머리에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고, 메스로 짼 자국도 없습니다. 하지만 평생 손을 심하게 떨어 물컵조차 들지 못했던 '본태성 진전(수전증)' 환자가, 거짓말처럼 떨림을 멈추고 안정적으로 물을 마십니다.


이것은 SF 영화가 아닙니다.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공식 승인한 '고집속 초음파(HIFU: High-Intensity Focused Ultrasound)' 치료 현장입니다. 소리가 듣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뇌를 치료하는 정교한 '보이지 않는 메스'가 된 것입니다.



2. 돋보기 원리 : 1,024개의 초음파가 만드는 60도 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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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리만으로 뇌 깊은 곳의 병을 고칠까요? 원리는 어릴 적 실험했던 **'돋보기'**와 같습니다. 햇빛은 따뜻할 뿐이지만, 돋보기로 한 점에 모으면 종이를 태울 만큼 뜨거워지죠.


이스라엘의 의료기기 기업 인사이텍(Insightec)이 개발한 '엑사블레이트 뉴로(Exablate Neuro)' 장비는 이 원리를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개별 파동 : 헬멧 모양의 기계에서 1,024개의 초음파 빔을 발사합니다. 각각의 파동은 에너지가 약해 두피나 뇌 조직을 통과할 때 아무런 해를 주지 않습니다.


초점 집중 (Focal Point) : 하지만 이 1,000여 개의 파동이 뇌 깊숙한 목표 지점(예: 시상복측핵) 한 곳에서 만나는 순간, 강력한 공명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열응고 : 초점 부위의 온도는 순식간에 60~80℃까지 치솟으며, 손 떨림을 유발하는 문제 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태워 없앱니다.



3. NEJM에 실린 임상 결과

image.png 출처 : archive.news.virginia.edu ‘Innovator of the Year’ Pioneers Procedure to Treat Essential Tremor'


이 기술의 효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 저널인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2016년, 버지니아 대학교(UVA)의 제프 엘리아스(Jeff Elias) 박사 팀은 임상 시험 결과를 발표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 연구 결과 : 초음파 뇌수술을 받은 본태성 진전 환자 76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시술 3개월 후 손 떨림 증상이 47% 이상 개선되었으며 그 효과가 지속됨을 증명했습니다. 이 논문은 HIFU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 국내 사례: 한국에서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진우 교수팀이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으며, 이미 수많은 파킨슨병 및 수전증 환자들이 머리뼈를 여는 공포 없이 이 수술을 통해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4. 치매 치료의 새로운 열쇠 : 뇌혈관 장벽(BBB) 개방

image.png 출처 : 위키피디아 'Sunnybrook Health Sciences Centre'

이 기술은 이제 '태우는 것'을 넘어 '여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난치병인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입니다. 뇌에는 혈액 속의 나쁜 물질을 막는 '뇌혈관 장벽(BBB)'이라는 튼튼한 방어막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막이 치료 약물까지 막아버린다는 점입니다.


캐나다 써니브룩 보건과학센터(Sunnybrook Health Sciences Centre) 연구진은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혈관에 미세한 공기 방울(마이크로 버블)을 주입한 뒤 약한 초음파를 쏘면, 버블이 진동하면서 뇌혈관 장벽을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엽니다. 그 틈을 타 치료 약물을 뇌 속으로 침투시키는 것입니다. 소리가 굳게 닫힌 뇌의 문을 여는 '노크(Knock)'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5. 사람을 살리는 소리


우리는 흔히 소리를 감상의 대상이나 정보 전달 수단으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 소리는 가장 안전하고 정교한 '에너지원'입니다.


머리뼈를 자르는 톱 소리 대신, 웅웅거리는 초음파 소리가 채운 수술실. 그곳에서 소리는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며 병든 곳만 정확히 도려내는, 가장 따뜻하고 혁신적인 '치유의 도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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