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여백이 들려주는 진실
Sound Essay No.100
1952년 8월 29일, 미국의 우드스탁(Woodstock).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가만히 앉아 시계만 보았습니다. 1악장 33초, 2악장 2분 40초, 3악장 1분 20초. 총 4분 33초 동안 그는 건반을 단 한 번도 누르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동안 저의 글에서 여러번 소개했던 현대 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작품 <4분 33초>입니다. 처음엔 관객들이 웅성거리고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케이지의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침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연주하지 않는 동안 들려온 빗소리, 관객의 기침 소리, 환풍기 소리... 그 우연한 소음들도 음악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인지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그는 '의도된 소리(음악)'를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하는 소리(자연)'를 듣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음악사적으로도 큰 관점의 확장을 가져왔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렇다면 소음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제거된 '절대 침묵'의 공간에 들어가면 어떨까요? 미국 미네소타주의 오필드 연구소(Orfield Laboratories)에는 기네스북이 인정한 '지구상에서 가장 조용한 방', 무향실(Anechoic Chamber)이 있습니다.
이 방의 소음도는 -9.4dBA. 인간의 가청 임계점(0dB)보다 훨씬 낮은, 완벽한 침묵의 공간입니다. 1m 두께의 콘크리트와 유리섬유 쐐기가 모든 소리를 흡수합니다. 설립자 스티븐 오필드(Steven Orfield)는 이곳에서의 체험 결과를 이렇게 전합니다.
환청과 공포 : 외부 소리가 차단되자, 뇌는 소리를 찾기 위해 내부 감각을 극도로 증폭시킵니다.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고, 위장이 움직이는 소리,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평형감각 상실 : 소리의 반사가 없어서 공간감을 잃고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대부분의 체험자는 45분을 넘기지 못하고 "제발 꺼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완벽한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우며, 우리는 적당한 소음(배경음)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소음 과잉입니다. 절대 침묵은 공포지만, '적당한 침묵'은 뇌를 위한 최고의 보약입니다.
2013년, 미국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의 임케 커스테(Imke Kirste) 박사 연구팀은 생물학 저널 <Brain Structure and Function>에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쥐에게 다양한 소리 자극(백색 소음, 모차르트 음악, 침묵)을 주었을 때 뇌의 변화를 관찰한 것입니다.
- 결과 : 뇌의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에서 새로운 신경세포(뉴런)가 가장 많이 생성된 조건은 음악도, 백색 소음도 아닌 '하루 2시간의 침묵'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청각 정보를 처리하느라 지친 뇌는, 소리가 멈춘 '쉼'의 시간 동안 비로소 정보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치유(Regeneration)했던 것입니다.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글을 쓰며 항상 맴돌았던 생각이 있습니다. 소리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더 큰 소리'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를 비워야 할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어 단어 'Listen(듣다)'의 철자를 다시 배열해보세요. 정확히 'Silent(침묵)'가 됩니다.
타인의 말을 경청(Listen) 하려면 내가 먼저 침묵(Silent) 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싶다면, 내 안의 시끄러운 소음을 먼저 꺼야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고자 합니다. 나를 알아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나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내가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느 위치에 있는 상태인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등이죠. 여기에 더해서 내가 실제로 있는 물리적인 장소도 나를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실제로 내가 있는 곳은 나의 생각과 생활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그곳에 서서 잠시나마 눈을 감고 내가 있는 '그곳'의 소리를 생생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디에 있고 내 주변이 나를 어떻게 둘러싸고 있는지 모든 감각으로 느끼실 수 있을테니까요.
내 주변의 소리들은 언제나 당신에게 힌트를 가져다 주더라구요, 당신은 그저 '잘' 듣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