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모국어는 어떻게 악보의 리듬이 되었나
Sound Essay No.101
잠시 눈을 감고 음악사에서 가장 대조적인 두 명의 거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첫 번째는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아버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입니다. 그의 대표곡 <달빛(Clair de Lune)>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나요? 안개가 자욱한 호수, 경계가 모호하게 번지는 수채화, 혹은 공기 중에 부유하는 향기 같은 것들입니다. 피아노 선율은 마디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부드럽게 이어지고, 리듬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모를 만큼 유려하게 흘러갑니다. 마치 중력이 없는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두 번째는 독일 고전주의의 완성자,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입니다. 그의 <운명 교향곡(Symphony No. 5)>은 정반대입니다. "다-다-다-단!" 하는 그 유명한 도입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리듬은 못을 박듯 정확하고, 강세는 바위를 내려치듯 확실합니다. 선율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마치 건축물을 쌓아 올리듯 견고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극명한 차이를 단순히 '개인의 성향'이나 '시대적 사조(낭만주의 대 인상주의)'의 차이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프랑스 예술은 원래 우아하고 감성적이며, 독일 예술은 원래 엄격하고 철학적이다"라는 식의 문화적 고정관념으로 설명하려 했죠. 하지만 21세기 현대 과학자들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 차이의 근원을 작곡가의 뇌 속에 깊이 박힌 '언어(Language)'에서 찾았습니다.
"작곡가가 악보를 그릴 때, 자신도 모르게 평생 써온 '모국어의 억양과 리듬'을 음표에 투영하고 있다면 어떨까?"
이 흥미로운 가설은 단순한 추측이 아닙니다. 뇌과학과 언어학의 융합 연구를 통해, 음악이 단순히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언어의 확장'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2003년, 미국의 신경과학 연구소(The Neurosciences Institute)의 아니루드 파텔(Aniruddh D. Patel) 박사와 조셉 다니엘(Joseph R. Daniele) 연구팀은 인지과학 저널인 <코그니션(Cognition)>에 음악계와 언어학계를 동시에 뒤흔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의 제목은 "언어와 음악 리듬의 실증적 비교(An empirical comparison of rhythm in language and music)"였습니다.
연구팀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미권 작곡가(엘가, 홀스트 등)와 프랑스 작곡가(드뷔시, 포레, 댕디 등)의 기악곡 수백 개를 수집했습니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제외했습니다. 가사가 있으면 당연히 언어의 리듬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바이올린, 피아노, 관현악을 위한 순수 기악곡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곡들의 리듬 패턴을 객관적인 수치로 분석하기 위해 연구팀은 'nPVI(Normalized Pairwise Variability Index, 정규화된 쌍별 변이 지수)'라는 언어학적 도구를 도입했습니다. 이름은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직관적입니다. nPVI는 ‘연속된 두 소리의 길이 차이'를 측정하여 수치화한 값입니다.
높은 nPVI 값 : 긴 소리와 짧은 소리가 번갈아 나오며 리듬의 변화폭이 크다. (예: 깡충깡충, 울퉁불퉁, 덜컹덜컹)
낮은 nPVI 값 : 소리의 길이가 비슷비슷하게 이어지며 리듬이 고르다. (예: 주루룩, 매끈매끈, 슬금슬금)
연구팀은 먼저 '영어(English)'와 '프랑스어(French)'를 사용하는 화자들의 말하기 리듬을 녹음하여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영어는 강약의 차이가 커서 nPVI 수치가 높았고, 프랑스어는 비교적 평탄하여 낮게 나왔습니다. 여기까지는 언어학계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충격적인 결과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작곡가들이 만든 '음악의 nPVI'를 측정하여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언어의 리듬 그래프와 음악의 리듬 그래프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즉, 영국 작곡가의 음악은 영어처럼 울퉁불퉁하고 역동적이었으며,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은 프랑스어처럼 매끈하고 유려하게 흘러갔습니다. 가사가 없는 교향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멜로디 안에는 작곡가가 평생 사용해 온 모국어의 리듬이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고유한 리듬 구조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독일어와 영어는 언어학적으로 대표적인 '강세 박자 언어(Stress-timed Language)'에 속합니다.
강세 박자 언어의 특징은 문장 안에서 중요한 단어(강세가 있는 음절)는 길고 강하게 발음하고, 중요하지 않은 기능어(전치사, 관사 등)는 짧고 약하게 후다닥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발화의 간격이 음절 수가 아니라 강세의 횟수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살펴봅시다. 겨울왕국의 노래 가사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을 읽을 때, 우리는 모든 글자를 똑같은 속도로 읽지 않습니다. "Do-you-WANT-to-build-a-SNOW-man?"처럼 강세가 있는 'WANT'와 'SNOW'는 길어지고, 나머지 단어들은 뭉개지듯 짧아집니다. 이 길이의 대조(Contrast)가 매우 큽니다.
이러한 언어적 습관은 음악으로 그대로 옮겨집니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엘가의 악보를 분석해 보면 '점음표(Dotted Note)'가 유독 많이 사용됩니다. 점음표는 앞의 음은 길고(3), 뒤의 음은 짧은(1), 전형적인 '불균형의 리듬'입니다.
마치 "따-안 따" 하는 말발굽 소리처럼, 독일 음악 특유의 그 절도 있고 묵직한 에너지는 바로 독일어와 영어가 가진 강렬한 강세와 억양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토벤 교향곡이 주는 그 강력한 타격감은 독일어의 "ACH-tung(주의)!"이나 "WUN-der-bar(놀라운)!" 같은 단어가 주는 청각적 질감, 즉 자음이 부딪히고 모음이 폭발하는 언어적 특성을 음악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어는 대표적인 '음절 박자 언어(Syllable-timed Language)'입니다. 강세의 위치와 상관없이 모든 음절이 거의 비슷한 길이로 발음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기관총 리듬(Machine-gun rhythm)'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다다다 쏘는 총알처럼 각 음절의 길이가 균등하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어로 "사랑해(Je t'aime)"를 말할 때, 영어처럼 특정 부분에 강한 악센트를 줘서 튀게 하기보다는 "쥬-뗌-므" 하고 물 흐르듯 비슷한 간격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단어와 단어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연음(Liaison)' 현상이 발달해 있어, 문장 전체가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긴 멜로디처럼 들립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가진 드뷔시나 라벨, 포레의 음악을 보면, 점음표보다는 길이가 균등한 8분 음표나 16분 음표들이 연속해서 나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리듬의 도약이 적고 선율이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드뷔시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가 '몽환적이다' 혹은 '부유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인상주의 화가들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프랑스어 자체가 가진 '경계 없는 흐름'과 '균등한 음절 호흡'이 악보에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음악은 딱딱한 벽돌을 쌓아 올리는 독일식 건축이 아니라, 붓에 물을 묻혀 색채를 덧칠하는 수채화와 같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와 음악의 관계를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의 창작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올린 작곡가도 있습니다. 바로 체코의 국민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Leoš Janáček)입니다.
그는 평생토록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시장 바닥, 기차역, 공원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할 때 생기는 억양, 감정에 따라 변하는 말의 속도와 리듬을 오선지에 음표로 받아 적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말의 선율(Speech Melody)'이라고 불렀습니다.
체코어는 첫 음절에 강한 강세가 오는 독특한 언어입니다. 야나체크는 이 체코어만의 투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리듬을 자신의 음악에 그대로 심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 <예누파>나 현악 사중주 <비밀 편지>를 들어보면, 악기들이 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람들이 격렬하게 토론하거나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생생한 언어적 질감이 느껴집니다.
그는 "음악은 텍스트의 정서적 그림자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에게 모국어의 억양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민족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자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작곡가들은 왜 굳이 가사가 없는 기악곡에까지 모국어의 리듬을 심었을까요? 뇌과학자들은 이것을 뇌의 '암묵적 학습(Implicit Learning)'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먼저 발달하는 것은 '청각'입니다. 태아는 임신 24주가 되면 엄마 뱃속에서 외부의 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뱃살과 양수를 통과하면서 구체적인 단어의 발음은 뭉개지지만, 말의 '리듬(Rhythm)'과 '억양(Intonation)'인 운율 정보는 고스란히 태아의 뇌에 전달됩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분석해 보면, 프랑스 아기는 끝을 올리는 프랑스어 억양으로 울고, 독일 아기는 끝을 내리는 독일어 억양으로 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즉,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이미 모국어의 리듬에 튜닝(Tuning)되어 있는 것입니다.
평생을 그 리듬 속에서 살고, 생각하고, 꿈꾸고, 대화한 작곡가들에게 모국어의 억양은 이미 뇌의 신경회로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영감을 받아 멜로디를 흥얼거릴 때, 그 멜로디가 자신의 모국어 리듬을 닮아 있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필연인 셈입니다.
nPVI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베토벤과 드뷔시의 음악에서 발견된 리듬적 차이는 단순한 미학적 우위를 떠나, 그 시대 작곡가들이 가졌던 언어학적, 민족적 특성 즉, 환경적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듣는 서양 고전 음악은 예술적 절대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창작자의 모국어와 당시의 문화적 토양이 필연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그 이후의 흐름입니다. 현대 예술은 다양한 시대정신의 반영을 통해 이러한 무의식적인 언어적, 문화적, 관념적 귀속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익숙한 모국어의 억양과 관습적인 리듬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며 전혀 새로운 표현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 바로 그 시대정신(Zeitgeist)의 지점에서 비로소 현대예술이 태동하고 발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생각날 때 마다 한 부분씩 함께 살펴보시죠:)
그렇기에 오늘의 글을 통해 ‘음악은 만국 공통어’가 아닌, 각각의 음악에도 국적에 있구나‘ 라고 생각해 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