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지 못하는 뇌는 병든 것이다

리듬은 청각이 아니라 '운동'이다

by JUNSE

Sound Essay No.111

춤추지 못하는 뇌는 병든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임상 보고와 기저핵(Basal Ganglia)의 비밀 : 리듬은 청각이 아니라 '운동'이다


1. 멈춰버린 육체를 깨우는 메트로놈

nate-qSUTZdzeg00-unsplash.jpg 사진 : Unsplash의 Nate

여기 한 노인이 있습니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습니다.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고갈되어, 근육이 강직되고 움직임을 시작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지만 발이 바닥에 본드로 붙은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의학 용어로 '보행 동결(Freezing of Gait)'이라고 합니다. 그의 의식은 멀쩡하지만,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치료사가 그에게 헤드폰을 씌워줍니다. 헤드폰에서는 화려한 멜로디가 아니라, "틱, 틱, 틱, 틱" 하는 단순하고 규칙적인 메트로놈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꼼짝도 못 하던 노인이 박자에 맞춰 벌떡 일어나더니, 군인처럼 절도 있게 걷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리듬이 빠른 댄스 음악을 틀어주자, 굳어있던 몸으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춥니다.


음악이 멈추면 그는 다시 그 자리에 얼어붙습니다. 도대체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왜 '소리'가 마비된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요? 이 극적인 장면은 음악이 단순한 감상용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다시 배선(Rewiring)할 수 있는 강력한 '신경학적 보철 장치(Neural Prosthesis)'임을 증명합니다.



2. 올리버 색스의 통찰 : 음악은 생명이다

image.png 출처 : www.nytimes.com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s)>의 원작이 된 자신의 저서에서, 기면성 뇌염 환자들이 음악을 통해 일시적으로 깨어나는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은 그들에게 사치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줄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정상인처럼 움직였고, 음악이 멈추면 다시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문제는 '근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타이밍 시스템'이 고장 난 데 있습니다. 우리가 걸을 때 "왼발, 오른발"을 내딛는 것은 뇌가 무의식적으로 보내는 0.5초 단위의 신호 덕분입니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이 내부 시계가 멈춥니다. 신호등이 꺼진 교차로처럼, 뇌는 언제 발을 떼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집니다.


이때 외부에서 들려오는 '리듬(Rhythm)'이 뇌의 고장 난 내부 시계를 대신합니다. 청각 신호가 뇌에 "지금이야! 움직여!"라는 명확한 큐(Cue)를 1초마다 찔러주는 것입니다. 환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리듬이라는 외부의 엔진에 몸을 싣고 움직이게 됩니다.



3. 기저핵(Basal Ganglia) : 리듬과 운동의 교차로

image.png 출처 : www.flintrehab.com

뇌과학적으로 볼 때, '듣는 것''움직이는 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우리 뇌의 깊은 곳에는 '기저핵(Basal Ganglia)'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이곳은 운동 제어, 습관 형성, 그리고 **'리듬 지각'**을 담당하는 핵심 영역입니다.


운동 : 우리가 자전거를 타거나 춤을 출 때, 생각하지 않고도 몸이 움직이게 만드는 '자동화된 운동'을 관장합니다.

리듬 :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까딱거리거나 발을 구르는 박자 감각을 관장합니다.


놀랍게도 fMRI 촬영 결과,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기만 해도 뇌의 운동 영역(기저핵, 소뇌, 전운동피질)이 활발하게 불타오릅니다. 뇌는 음악을 듣는 순간 이미 '춤출 준비'를 마칩니다. 리듬은 본질적으로 청각 정보가 아니라, 뇌가 근육에게 보내는 '운동 명령(Motor Command)'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니체의 말처럼, 춤추지 못하는 뇌(기저핵이 손상된 뇌)는 실제로 병든 것입니다.



4. RAS 치료 : 소리로 걷는 법을 배우다

image.png 출처 : propelphysiotherapy.com

이 원리를 이용한 치료법이 바로 '리듬 청각 자극(Rhythmic Auditory Stimulation, RAS)'입니다. 현재 재활 의학계에서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환자의 보행 훈련에 표준적으로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치료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환자의 현재 보행 속도(분당 걸음 수)를 측정합니다. (예: 80 BPM)

그 속도에 정확히 맞춘 메트로놈 소리나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들려줍니다. (동기화, Entrainment)

환자가 리듬에 적응하면, 템포를 아주 조금씩(5~10%) 올립니다. (예: 88 BPM -> 96 BPM)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빨라진 비트를 따라잡으려다 보폭을 넓히고 속도를 높이게 됩니다.


임상 연구 결과, RAS 훈련을 받은 환자들은 걷는 속도, 보폭, 균형 감각이 약 20~30% 향상되었습니다. 약물이나 수술 없이, 오직 '소리의 규칙성'만으로 뇌의 운동 회로를 재건한 것입니다.



5. 그루브(Groove)는 생존 본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리듬에 민감하게 진화했을까요? 왜 우리는 펑키(Funky)한 비트를 들으면 가만히 있지 못할까요? 진화생물학자들은 이것을 '효율적인 움직임'과 연결합니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동물입니다. 이족 보행은 매우 불안정한 이동 방식이며, 넘어지지 않으려면 고도의 리듬감이 필요합니다. "쿵-짝-쿵-짝" 하는 규칙적인 리듬은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생존 기술'입니다.


군인들이 행군할 때 군가를 부르는 이유, 노동요를 부르며 밭을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의 리듬에 동작을 일치시키면(Synchronization), 뇌는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여 근육의 피로도를 낮추고 더 오래, 더 강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음악에서 느끼는 '그루브(Groove)'란, 단순히 즐거운 기분이 아니라 "지금 움직이면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뇌의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6. 음악은 가장 원초적인 언어다


언어 기능을 잃은 실어증 환자도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치매 환자도 리듬에는 반응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파킨슨병 환자도 비트가 있으면 걷습니다. 이것은 음악(특히 리듬)이 인간의 뇌에서 가장 깊고, 오래되고, 튼튼한 '하드웨어'에 각인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언어나 이성은 대뇌 피질이라는 뇌의 겉면(진화적으로 최근에 생긴 부위)에 존재하지만, 리듬은 뇌간과 기저핵이라는 뇌의 중심부(파충류의 뇌)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마가 뇌의 겉면을 갉아먹어도, 심연에 있는 리듬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7. 리듬은 약이다

ardian-lumi-6Woj_wozqmA-unsplash.jpg 사진 : Unsplash의 Ardian Lumi

우리는 흔히 "음악이 영혼을 치유한다"고 은유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이 말은 은유가 아니라 '임상적 사실(Fact)'입니다. 리듬은 도파민을 대신해 신경망을 연결하고, 끊어진 운동 회로에 전기를 공급하는 물리적인 치료제입니다.


당신이 오늘 이어폰을 꽂고 길을 걸을 때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당신의 기저핵이 비트에 맞춰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완벽하게 조율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음악은 귀로 들어와서 다리로 나갑니다. 우리는 소리로 걷고, 소리로 춤추며, 소리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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