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시간을 종이 위에 디자인하려는 인류의 투쟁
Sound Essay No.112
고대 로마의 격언처럼, 소리(Verba)는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집니다. 이것은 음악의 숙명이자 약점이었습니다. 위대한 연주도, 천재적인 멜로디도 기록할 방법이 없으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인류에게는 '소리를 붙잡아둘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녹음기(Edison's Phonograph)가 발명된 것은 불과 150년 전입니다. 그전까지 인류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시각화(Visualization)'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파동인 소리를, 보이는 기호로 치환하여 종이 위에 박제하는 것. 바로 '악보(Musical Notation)'의 탄생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3차원적이고 시간적인 예술인 음악을, 2차원의 정지된 평면에 억지로 구겨 넣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보의 역사는 소리를 기록하려는 욕망과, 그 기록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디자인의 투쟁사'입니다.
9세기 이전, 서양 음악에는 통일된 악보가 없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수천 곡의 성가를 오직 기억력에 의존해 암기해야 했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지면 멜로디는 변형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최초의 기보법 '네우마(Neuma)'입니다. 네우마는 그리스어로 '손짓' 혹은 '숨결'을 뜻합니다. 가사 위에 지렁이처럼 꼬불꼬불한 선이나 점을 찍어놓은 형태였는데, 이것은 정확한 음높이를 알려주는 데이터가 아니었습니다. 지휘자가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는 모양을 본뜬 '제스처(Gesture)의 기록'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목소리를 올려라(/), 여기서는 굴려라(~)."
네우마는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암호였습니다. 단지 멜로디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까먹지 마세요"라고 상기시켜주는 '기억 보조 장치(Mnemonic Aid)'에 불과했습니다. 소리는 아직 종이 위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11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냅니다.
"가상의 가로줄(Line)을 긋고,
그 줄 위에 점을 찍으면 음의 높이(Pitch)를 고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4개의 선을 긋고, 선 위나 선 사이에 네모난 점을 찍었습니다. 이것이 현대 '오선보(Staff Notation)'의 시초입니다. 이것은 디자인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데카르트가 좌표 평면을 만들기 수백 년 전에, 귀도 다레초는 음악에 '좌표값'을 부여한 것입니다.
X축 (가로): 시간의 흐름 (Time)
Y축 (세로): 음의 높이 (Pitch)
이제 음악은 추상적인 '감각'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Data)'가 되었습니다. 파리에 있는 작곡가가 쓴 곡을, 로마에 있는 연주자가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도 똑같이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각적 인터페이스(UI)'의 발명 덕분에 서양 음악은 복잡한 다성 음악(Polyphony)과 교향곡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습니다. 오선보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서양 음악은 '정량화될 수 없는 소리'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선보는 디지털 픽셀과 같습니다. '도'와 '레' 사이에는 무수한 미분음(Microtone)들이 존재하지만, 악보에는 오직 정해진 칸에만 점을 찍어야 합니다.
- 음색(Timbre)의 실종 : 악보는 '어떤 음(Pitch)'을 '언제(Time)' 낼지는 정확히 알려주지만, '어떤 질감'으로 낼지는 아주 빈약하게 설명합니다. 기껏해야 'Dolce(부드럽게)' 같은 추상적인 단어로 적을 뿐입니다.
- 즉흥성의 거세 : 모든 것이 좌표로 찍히자, 연주자의 자유로운 해석이나 국악의 '시김새', 재즈의 '스윙감'처럼 악보로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들은 "틀린 연주"로 간주되어 배제되었습니다.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악보는 소리를 보존하는 도구인 동시에 소리를 규격화하고 통제하는 '감옥(Prison)'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서양 음악이 그토록 건축적이고 수학적인 구조를 갖게 된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오선보)가 애초에 '그리드(Grid)' 기반의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중반, 존 케이지, 조지 크럼, 펜데레cki 같은 현대 음악가들은 이 감옥을 부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소리(소음, 불확정성, 전자음)는 기존의 콩나물 대가리(음표)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선지를 찢어버리고 캔버스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것이 '그래픽 스코어(Graphic Score)'입니다.
존 케이지(John Cage) : 그의 악보는 지도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합니다. 연주자에게 "직선에서는 곧게 연주하고, 구불구불한 선에서는 떨리게 연주하라"고 시각적인 암시를 줍니다.
조지 크럼(George Crumb) : <마크로코스모스(Makrokosmos)>의 악보는 나선형 은하계 모양이거나 십자가 모양입니다. 연주자는 악보를 뱅글뱅글 돌려가며 연주해야 합니다.
코넬리우스 카듀(Cornelius Cardew): 그의 대작 는 193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그래픽 디자인 서적 같습니다. 음표는 하나도 없고, 기하학적인 도형과 선들만 가득합니다.
이들은 음악을 다시 '데이터'에서 '이미지'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악보는 더 이상 지켜야 할 법전이 아니라, 연주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각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 기술은 악보의 개념을 한 번 더 확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관심을 가지는 '비주얼 사운드(Visual Sound)'와 '오디오 비주얼라이저(Audio Visualizer)'가 바로 그 최전선입니다.
이제 우리는 소리의 파형(Waveform)과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을 실시간으로 봅니다. 이것은 오선보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동시에 훨씬 더 직관적인 '현대판 네우마'입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Ryoji Ikeda)나 알바 노토(Alva Noto)의 작품을 보면, 소리는 곧 빛이고 데이터는 곧 영상입니다.
과거에는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억지로 시각화했다면, 이제는 소리 자체를 시각적 예술로 경험하기 위해 디자인합니다. 청각과 시각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악보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은, 인류가 '보이지 않는 것(Invisible)'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하려 했는지 살펴보는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허공에 손짓을 했고(네우마), 그리드를 만들어 가뒀으며(오선보), 다시 그 그리드를 깨고 자유로운 그림(그래픽 스코어)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소리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붙잡으려 했던 디자이너들의 치열한 고투였습니다.
당신이 만약 디자이너라면, 혹은 기획자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가치(경험, 시간, 감정)를 어떻게 시각화하고 있는가?" "내가 만든 그리드(프레임)가 혹시 본질적인 내용을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악보 속의 음표들이 감옥 문을 열고 나와 춤을 추듯, 진정한 디자인은 규격화된 틀을 깨고 본질을 자유롭게 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