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가 '소리 나는 옷'을 만드는 이유
Sound Essay No.117
패션쇼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화려한 조명? 모델의 워킹? 아니면 그 이전에, 모델이 걸어올 때 드레스가 만들어내는 '샤르르'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비단 드레스의 부드러운 마찰음, 가죽 재킷의 묵직한 '빳빳' 소리, 린넨 셔츠의 바삭한 질감음. 우리는 옷을 '보고' '만지는' 것만큼이나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패션 산업에서 이 청각적 차원은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습니다.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는 1990년대 초, 그의 시그니처인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컬렉션을 선보이며 흥미로운 발견을 공유했습니다. 그는 주름진 원단이 만드는 소리의 리듬이 착용자의 움직임을 더욱 우아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주름이 펼쳐지고 접히면서 내는 미세한 '사각사각' 소리가 마치 춤의 리듬처럼 움직임에 청각적 피드백을 준다는 것이었죠.
이 글은 직물이 가진 '소리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패션 디자이너들이 왜 점점 더 옷의 '청각적 경험'에 주목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직물의 소리는 세 가지 요소로 결정됩니다: 섬유의 종류, 직조 방식, 그리고 표면 처리.
비단(Silk)은 단백질 섬유의 매끄러운 표면 때문에 마찰할 때 높은 주파수의 '샤르르' 소리를 냅니다. 이 소리는 19세기 유럽 귀족 사회에서 부와 지위의 청각적 상징이었습니다. 무도회장을 가로지르는 비단 드레스의 소리는 그 자체로 '나는 여기 있다'는 선언이었죠(역사학자 John Styles의 연구에 따르면, 18-19세기 유럽에서 직물의 소리는 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감각적 지표였습니다).
벨벳(Velvet)은 정반대입니다. 짧고 빽빽한 파일(pile) 구조가 소리를 흡수하여 거의 무음에 가까운 마찰음을 만듭니다. 이 '침묵하는 럭셔리'는 왕실과 성직자들이 선호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움직일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절제와 위엄의 표현이었으니까요.
린넨(Linen)은 식물성 섬유의 뻣뻣한 특성상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이 소리는 청결함과 신선함을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린넨 테이블보와 냅킨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깨끗한 소리' 때문입니다.
전통 한복, 특히 여성 한복의 치마는 독특한 청각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여러 겹의 치마폭이 겹쳐지면서 만드는 '바스락바스락' 소리는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의도된 미학적 요소였습니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걸을 때 치마가 만드는 소리의 리듬으로 걸음걸이의 우아함을 판단받았습니다(국립민속박물관의 전통복식 연구 자료). 너무 시끄러운 소리는 성급함을, 너무 조용한 소리는 기력 없음을 의미했죠. '적절한 바스락임'은 교양과 품위의 표현이었습니다.
현대 한복 디자이너들 중 일부는 이 전통적 '소리 미학'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단순히 형태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원단의 두께와 층수를 조절하여 전통 한복의 소리 풍경까지 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패션쇼의 사운드는 단순히 배경음악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델의 워킹 소리, 특히 구두 소리는 쇼의 중요한 청각적 요소입니다.
하이힐이 런웨이를 걸을 때 만드는 '똑똑' 소리는 리듬을 만듭니다. 숙련된 모델들은 이 소리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이것이 워킹의 안정감과 자신감을 만들어냅니다. 일부 디자이너들은 아예 런웨이의 바닥재를 선택할 때 어떤 소리가 날지까지 고려합니다.
영국의 전위적 패션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은 2000년대 초반, 'ASMR 패션쇼'라고 불릴 만한 실험적 쇼를 선보였습니다. 극도로 증폭된 마이크를 통해 직물이 스치는 소리, 지퍼가 올라가는 소리, 단추가 채워지는 소리를 관객들이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게 한 것이죠. 그는 "옷 입는 행위의 친밀함을 청각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옷의 소리가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아웃도어와 스포츠웨어 분야에서는 '소음 없는 직물' 개발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방수 재킷의 '바스락' 소리가 대표적입니다. 고어텍스(Gore-Tex) 같은 방수투습 원단은 초기에 심한 마찰음 문제가 있었습니다. 등산이나 캠핑 중 조용한 자연 속에서 이 소리는 불쾌한 소음이 되었죠.
이에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원단 표면에 특수 코팅을 하거나, 직조 방식을 바꿔 소리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Quiet' 기술을 적용한 재킷 라인을 출시하며 "자연의 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의류"를 표방했습니다.
사냥복은 더욱 극단적입니다. 사냥꾼들에게 의류의 소리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냥복 전문 브랜드들은 완전히 무음에 가까운 원단을 개발하는데, 이는 벨벳처럼 표면에 미세한 파일을 형성하거나, 극도로 부드러운 기모 처리를 통해 이뤄집니다.
최근 패션과 기술의 융합은 새로운 차원의 '소리 나는 옷'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이리스 판 헤르펜(Iris van Herpen)은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드레스에 미세한 공명 구조를 삽입하여, 착용자가 움직일 때마다 악기처럼 소리를 내는 옷을 선보였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몸이 움직이면 드레스 자체가 하나의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이 되는 것이죠.
또 다른 방향은 '스마트 패브릭'입니다. 직물에 압전 센서를 내장하여 착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를 소리로 변환하는 기술입니다. 이는 패션을 넘어 재활 치료나 스포츠 트레이닝에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골프 스윙 자세를 교정할 때, 올바른 자세에서는 부드러운 소리가, 잘못된 자세에서는 거친 소리가 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왜 직물의 소리가 중요할까요?
심리학자들은 멀티센서리 경험(Multisensory Experience)이 우리의 인식과 감정에 더 깊은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시각만으로 경험한 옷과, 시각+촉각+청각으로 경험한 옷은 우리 뇌에 전혀 다르게 기억됩니다.
비단 드레스의 '샤르르' 소리는 단순한 청각 정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부드러움, 고급스러움, 우아함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감각 경험으로 번역해줍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보지 않아도 그것이 어떤 촉감일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패션 디자이너들이 직물의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옷은 입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완전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번 새 옷을 입을 때, 잠시 움직이며 귀 기울여보세요. 그 옷이 만드는 소리 속에서 당신은 그 직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디자이너의 의도, 그리고 수백 년간 이어져온 직물의 청각적 전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