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도된 '불일치'가 어떻게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창조하는가
Sound Essay No.17
영상과 소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싱크(Synchronization)'라는 개념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입니다. 입 모양과 대사가 정확히 일치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슬픈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이처럼 소리와 이미지가 한 몸처럼 완벽하게 맞물릴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이야기에 깊이 몰입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청각 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문법이자 약속이라고 우리들 스스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 약속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깨뜨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 평생에 걸쳐 그 약속을 깨뜨리는 실험을 감행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혁신적인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햄입니다. 그는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와 함께, "춤과 음악은 각자 독립적인 예술이며,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뿐 서로에게 종속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종종 공연 당일 처음 들어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고, 음악과 춤은 서로의 박자나 감정을 따르지 않은 채 우연히 만나고 흩어졌습니다.
이 글은 머스 커닝햄의 전복적인 아이디어를 영상과 사운드 디자인의 세계로 가져와, 의도적인 '불일치'와 '우연성'이 어떻게 관습적인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싱크의 함정: 우리는 왜 불일치를 두려워하는가?
우리가 싱크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정보의 명확성'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 사이의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찾으려 합니다. 싱크는 이 인지적 부담을 덜어주고, 화면 속 세계를 현실처럼 믿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도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종종 다음과 같은 창의적 함정에 빠지게 합니다.
클리셰의 양산: 슬픈 장면엔 슬픈 음악, 긴박한 장면엔 빠른 비트의 음악을 사용하는 공식은 너무나 효과적인 나머지, 모든 창작물이 비슷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클리셰를 양산하게 됩니다. 소리는 이미지의 감정을 설명하는 '주석'으로 전락하고, 독립적인 표현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수동적인 관객: 완벽한 싱크는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모든 정보가 완벽하게 가공되어 떠먹여 주는 형태이기에, 관객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정을 주입받을 뿐, 영상과 소리의 관계에 대해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상상할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예측 가능한 세계: 모든 것이 예측대로 맞아떨어지는 세계는 안정적이지만, 결코 우리에게 놀라움이나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창작의 본질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라면, 싱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를 안전하지만 지루한 영토에 가두는 울타리가 될 수 있습니다.
'커닝햄 메소드': 영상과 사운드를 해방시키는 3가지 실험
, 우리는 이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실험 1: 블라인드 스코어링 (Blind Scoring) 사운드 디자이너에게 완성된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오직 몇 개의 키워드('쓸쓸함', '금속', '느린 호흡')나 짧은 시놉시스만을 제공한 채 사운드트랙을 제작하게 합니다. 이후, 완성된 영상 위에 이 '눈을 가리고 만든' 사운드트랙을 그대로 얹어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영상 제작자의 의도와 사운드 디자이너의 해석이 충돌하고 뒤섞이며,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던 기묘하고 흥미로운 조합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실험 2: 우연성 조작 (Chance Operations) 존 케이지가 주사위를 던져 음악을 작곡했듯, 영상의 타임라인 위에 사운드를 배치하는 과정에 '우연'을 개입시키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10개의 중요한 사운드 이펙트를 준비하고, 1부터 100까지의 숫자 중 무작위로 10개를 뽑아 해당 초(second)에 사운드를 강제로 배치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어색하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인물이 하늘을 보는 순간에 새소리가 '우연히' 배치되거나, 침묵이 흐르는 순간에 기계음이 '우연히' 삽입된다면, 그 장면은 원래의 의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실험 3: 의도된 감정의 불일치 (Juxtaposition) 가장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기도 한, 영상의 감정과 정반대의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기법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시계태엽 오렌지>의 폭력적인 장면에 경쾌한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듯, 행복한 장면에 불안한 노이즈를, 고요한 풍경에 격렬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배치함으로써 관객에게 복합적이고 불편한 감정을 유발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주입을 넘어, 관객에게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지적인 질문을 던지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앞서 설명한 방법들은 저자가 진행하는 사운드 워크숍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토론하는 내용이며,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사운드와 영상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위 내용들은 예술 음악 분야의 오래된 담론이며, 이미 어느정도의 논의가 마친 상황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물론 예술음악분야에서는 이를 다루는 여러가지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청자의 예상을 벗어나거나 또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기회가 된다면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창조하는 '제3의 의미'
이러한 실험의 결과, 영상과 소리는 더 이상 1+1=2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영상(A)과 소리(B)가 만나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C)를 창조하는 '의미의 연금술'이 일어납니다.
능동적 해석을 유도: 영상과 소리의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을 때, 관객의 뇌는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능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 소리가 여기에 나왔을까?"를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에 대한 깊은 몰입과 개인적인 해석을 유도합니다. 작품은 감독이 던지는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완성되는 '열린 텍스트'가 됩니다.
감각의 확장: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에 익숙하지만, 커닝햄의 방식은 우리에게 '눈으로 듣고, 귀로 보게' 만듭니다. 소리는 더 이상 이미지를 보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미지는 소리의 지배에서 벗어나 순수한 시각적 힘을 발휘합니다. 관객은 두 개의 독립적인 예술을 동시에 경험하며 훨씬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감각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완벽한 조화를 넘어, 자유로운 춤을
머스 커닝햄의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영상과 사운드의 관계를 '주종 관계'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의 관계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명확성과 감정 전달을 위해 싱크는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도구입니다. 커닝햄의 방식을 모든 작업에 맹목적으로 적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완벽한 조화'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때로는 영상과 소리가 각자의 길을 가게 내버려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파트너에게 자유를 주었을 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우연히 만나 추는 예측 불가능한 춤은, 잘 짜인 군무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생명력 넘치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타임라인을 그들이 춤출 수 있는 무대로 만들어보십시오. 그곳에서 어떤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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