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어떻게 귀로 세상을 만지는가 Part.2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감촉을 더하는 장인들의 비밀

by JUNSE

우리는 어떻게 귀로 세상을 만지는가 Part.1

Sound Essay No.27

소리의 촉감 2부 - 폴리 아티스트처럼 소리를 빚는 법

: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감촉을 더하는 장인들의 비밀


valentin-balan-wn2Gqyvq2ts-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Valentin Balan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소리의 마법


지난 1부에서 우리는 뇌가 샐러리 줄기 부러지는 소리를 뼈가 부러지는 소리로 기꺼이 착각한다는 놀라운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뇌는 소리의 진짜 출처보다, 그 소리가 가진 '물리적 속성'과 눈앞의 '상황'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죠.


바로 이 지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직업 중 하나인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의 세계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영화 속 거의 모든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의 마법사'입니다. 주인공의 발걸음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칼을 뽑는 소리까지,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하지 않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현실의 소리를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때로는 현실에 없는 소리를 창조하고, 때로는 현실의 소리보다 '더 진짜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어, 우리가 영화 속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소리의 장인들로부터 그들의 비밀을 배워보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폴리 아티스트처럼 소리를 '빚어내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만져질 듯한 생생한 감촉을 더할 수 있을까요?



폴리 아티스트의 비밀 - '진짜'가 아닌 '진짜처럼'


ling-app-p5VW_ZUon7o-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Ling App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폴리 아티스트가 영화 속 사물과 똑같은 사물로 소리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배우가 주먹을 날리는 장면에 실제 주먹 소리를 녹음해서 넣으면, 대부분 '퍽'하는 싱겁고 재미없는 소리가 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귀에 착착 감기는 '찰진' 타격감과는 거리가 멀죠.


그래서 폴리 아티스트들은 얼린 양배추나 고깃덩이를 내리쳐서 훨씬 더 과장되고 강력한 타격음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폴리 아티스트의 첫 번째 철학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현실을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즉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초현실)'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번역가: 폴리 아티스트는 현실의 소리를 '복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장면에 담긴 '감정'과 '에너지'를 소리로 '번역'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주인공이 분노에 차서 내리치는 주먹 소리는 슬픔에 잠겨 내려놓는 주먹 소리와 달라야 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주먹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소리'와 '슬픔의 소리'를 디자인하는 것이죠. 소리의 물리적 정확성보다, 듣는 이의 심리적 공감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장인의 도구함 - 소리의 물성을 조각하는 기술


foley-artist.jpg 출처 :wordpress27649.wordpress.com "Shh… did you hear that: Foley artist, the forgotten sound."


그렇다면 폴리 아티스트들은 어떤 기술로 이런 '하이퍼리얼리티'를 만들어낼까요? 그들의 도구함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비밀이 있습니다.


겹겹이 쌓아 올리는 '레이어링'의 미학: 훌륭한 그림이 수많은 색의 겹침으로 깊이를 더하듯, 실감 나는 소리 역시 여러 소리의 '레이어링'으로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기사가 무거운 갑옷을 입고 걷는 소리를 만든다고 상상해보세요. 단순히 쇠붙이를 짤랑거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겹의 소리가 필요합니다. 먼저, '쿵, 쿵' 하는 발걸음의 무게감을 표현할 낮은 소리의 '기초'를 깔아줍니다. 그 위에 갑옷의 금속 판들이 서로 부딪히는 '철컹'거리는 소리를 더합니다. 마지막으로, 갑옷 안의 가죽 옷이 삐걱거리는 섬세한 소리와 옷자락이 스치는 '사락'거리는 소리까지 추가합니다. 이 모든 소리가 한데 어우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눈을 감고도 그 기사의 육중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온몸으로 연기하는 '퍼포먼스'의 힘: 폴리 아티스트의 작업실은 녹음실이라기보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작은 연극 무대와 같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연기'하기 때문입니다. 지친 주인공의 발걸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정말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겁게 발을 끌며 걷습니다. 그 미세한 에너지의 차이가 소리에 그대로 담겨, 듣는 이에게 인물의 감정 상태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폴리 아티스트에게 모든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연기인 셈입니다.


붓을 고르듯, 마이크를 고르는 감각: 마이크는 소리를 그리는 화가의 붓과 같습니다. 어떤 붓을 쓰느냐에 따라 그림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듯, 어떤 마이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소리의 질감이 결정됩니다. 옷감이 스치는 소리의 섬세한 결을 담고 싶을 때는 아주 예민한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넓은 공간의 웅장한 울림을 담고 싶을 때는 마이크를 멀리 떨어뜨려 공간 전체의 공기를 담아냅니다. 그들은 그리고자 하는 소리의 그림에 가장 어울리는 붓을 고르는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폴리를 넘어서 - 우리 모두의 창작을 위하여


john-hult-xxgkYSD-ek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ohn Hult

폴리 아티스트들의 지혜는 비단 영화 사운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음악을 만들거나, 게임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등 소리를 다루는 모든 창작자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음악에 감촉을 더하다: 당신이 만드는 신시사이저 소리는 어떤 감촉을 가졌나요? 차가운 유리인가요, 아니면 부드러운 벨벳인가요? '벨벳' 같은 소리를 만들고 싶다면, 날카로운 고음역대를 살짝 깎아내고, 따뜻한 울림을 더해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돌'처럼 단단한 드럼 소리를 원한다면, 짧고 강렬한 어택감과 낮은 저음의 무게감을 강조해야겠죠. 음악 역시 소리의 물성을 디자인하는 과정입니다.


상상 속 세계에 현실감을 부여하다: 게임 속 '파이어볼' 마법의 소리는 어때야 할까요? 단순히 '불타는' 소리만 넣는다면 시시할 겁니다. 폴리 아티스트처럼 생각해보는 겁니다. 에너지를 모으는 '응축'의 소리, 마법이 발사되는 '폭발'의 소리, 그리고 그것이 적에게 부딪혔을 때의 '타격' 소리. 이 모든 과정에 '불'이라는 재질의 뜨겁고 격렬한 느낌을 담아낼 때,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을 마치 손에 쥔 것처럼 실감 나게 느끼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만지는 장인이 되어


georg-arthur-pflueger-54jz7ax_jcg-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Georg Arthur Pflueger


폴리 아티스트들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소리의 물성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기술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감촉과 무게, 온도를 불어넣는 창의적인 예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당신의 주변을 둘러싼 소리들을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모든 소리는 그것이 태어난 사물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창작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그 이야기의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사용하여 우리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끝에서, 귀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운 세계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만지는 소리의 장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사운드에세이 #사운드브랜딩 #사운드디자인 #사운드워크숍 #프로덕트사운드디자인 #비주얼사운드디자인 #제품사운드 #서비스사운드 #사운드기회 #사운드디자이너 #온라인워크숍 #soundesssay #soundbranding #sounddesign #soundworkshop #productsounddesign #visualsounddesign #productsound #servicesound #appsound #sounddirecting #sounddesigner #onlineworkshop #폴리아티스트 #foleyartist


https://linktr.ee/soundfoundrynco

https://blog.naver.com/soundfoundrynco/224000026690

https://www.instagram.com/junse/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어떻게 귀로 세상을 만지는가 Par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