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디자인,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듣게' 만드는 법
Sound Essay No.38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을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황량하고도 장엄한 아라키스 행성의 이미지만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감아도 귓가에 맴도는, 거대한 모래 폭풍의 포효, 사막을 가르는 거대한 모래 벌레의 울림,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묘한 향신료의 속삭임 같은 소리들. '듄'의 세계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귀로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아라키스 행성은 존재하지 않고, 모래 벌레는 상상 속의 생명체이며, 미래 기술의 소리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 없는 소리들을 그토록 현실처럼, 아니 현실보다 더 강렬하게 만들어낸 걸까요?
이 글은 영화 '듄'의 경이로운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소리의 영혼'을 불어넣는 창조의 과정을 탐험해보려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효과음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깊은 상상력과 음향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만나 탄생하는, 경이로운 '소리의 건축'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쩌면 폴 아트레이데스가 아니라, 아라키스 행성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사운드 디자인팀의 가장 큰 과제는, 이 끝없는 사막 행성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에게 영혼을 주다: 아라키스의 바람은 그냥 '휘잉-' 부는 바람이 아닙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거대한 모래 폭풍의 분노처럼 들리고, 때로는 향신료 '스파이스'의 환영을 속삭이는 요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사운드 팀은 단순히 바람 소리를 녹음하는 대신, 동물의 울음소리, 마찰음, 심지어 사람의 속삭임 같은 소리들을 변조하고 겹쳐서, 바람에 '감정'과 '의지'를 부여했습니다.
모래의 질감을 '듣게' 하다: 사막 영화에서 모래 소리는 당연하지만, '듄'의 모래는 다릅니다. 발걸음이 모래에 푹푹 빠지는 소리, 모래 언덕이 바람에 깎여나가며 흘러내리는 소리, 그리고 거대한 모래 벌레가 다가올 때 땅 전체가 진동하며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까지. 사운드 팀은 모래의 종류(고운 모래, 거친 자갈)와 상태(마른 모래, 습한 모래)에 따라 다른 질감의 소리를 디자인하여, 우리가 눈을 감고도 아라키스의 땅을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소리가 어떻게 공간의 '재질감'을 전달하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예시입니다.
'듄' 세계관의 가장 상징적인 존재, 거대한 모래 벌레 '샤이 훌루드'. 수백 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생명체의 소리를 만드는 것은 사운드 디자인 역사상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 소리는 단순히 '괴물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아라키스 행성의 신성한 힘 그 자체를 대변해야 했으니까요.
'존재' 자체가 소리가 되다: 샤이 훌루드의 소리는 특정 '목소리'라기보다, 그것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사운드 팀은 거대한 몸체가 모래 속을 가르며 나아갈 때 발생하는 엄청난 마찰음과 진동에 집중했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서로 부딪히고 쓸리는 소리, 땅 전체가 울리는 듯한 극저음의 진동(실제로는 귀로 듣기보다 몸으로 느껴지는 영역)을 결합하여, 존재 자체가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듯한 압도적인 스케일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경외와 공포의 줄타기: 샤이 훌루드는 프레멘 부족에게는 신성한 존재('샤이 훌루드')이지만, 외부인에게는 파괴적인 공포의 대상입니다. 사운드 디자인은 이 이중적인 면모를 절묘하게 담아냅니다. 땅을 뒤흔드는 위협적인 저음 속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신비로운 울림을 함께 담아낸 것이죠. 우리는 그 소리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듄'의 세계에는 오니솝터(잠자리 비행선), 개인용 방어막, 상대의 정신을 조종하는 '목소리' 등 독특한 미래 기술들이 등장합니다. 사운드 팀은 이 기술의 소리들을 단순히 '삐빅-'거리는 미래적인 효과음으로 처리하는 대신, 현실에 발 딛고 있는 듯한 독특한 감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오니솝터, 기계 잠자리의 날갯짓: 잠자리처럼 날개를 파닥이며 비행하는 오니솝터의 소리는, 실제 곤충의 날갯짓 소리와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 그리고 기계적인 작동음을 정교하게 결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비행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물리적인 원리가 느껴지는 듯한 현실감을 얻게 됩니다.
방어막, 보이지 않는 벽의 감촉: 개인용 방어막이 작동할 때 나는 미묘한 '웅-'하는 소리나, 총알이나 칼이 방어막에 부딪힐 때 나는 '팅!'하는 소리는 어떨까요? 이 소리들은 단순히 에너지 효과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와 그 '단단함'을 청각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방어막을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지는 시각 효과와 결합되어, 우리는 마치 끈적한 막을 통과하는 듯한 독특한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목소리', 음향학적 세뇌: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베네 게세리트의 '목소리'는, 단순한 에코나 변조 효과를 넘어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겹치거나, 특정 주파수 대역을 강조하여 듣는 이의 뇌리에 직접 파고드는 듯한 불쾌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만들죠. 이는 소리가 어떻게 심리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영화 '듄'의 사운드 디자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상상력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깊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약 이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소리를 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음향 물리학과 청각 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답을 찾아나갑니다.
그들이 빚어낸 소리는 단순히 화면을 보조하는 효과음이 아니라, 아라키스라는 행성의 공기를 만들고, 샤이 훌루드라는 신화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미래 기술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듄'의 세계가 그토록 강렬하게 우리 마음에 각인되었다면, 그 절반의 공로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소리의 건축가들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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