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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음, '더 정제되고, 더 좋게' 디자인될 수 있을까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으로 본 스마트폰 소리의 미래

by JUNSE

생각 스케치 No.2

알림음, '더 정제되고, 더 좋게' 디자인될 수 있을까?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으로 본 스마트폰 소리의 미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또 울립니다. '카톡!', '띵!', '띠링~'. 가만히 들어보면, 요즘 알림음들은 아주 짧고, 대부분 단 하나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려했던 옛날 벨소리에 비하면, 형태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미니멀해졌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이토록 '형식적으로 단순한' 소리들이, 왜 여전히 우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 걸까요? 소리의 길이는 짧아졌지만,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이나 방해받는다는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형태만 단순해졌을 뿐, 그 역할과 목적에 충실한, 진정한 의미의 '단순함' 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doctorjoy.net-less-but-better-1.jpg 출처 : https://doctorjoy.net/dieter-rams/


여기서 우리는 평생에 걸쳐 '덜어냄의 미학'을 외쳤던 디자인 거장, 디터 람스(Dieter Rams)를 다시 한번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좋은 디자인의 원칙 중 하나로 "좋은 디자인은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고 말했습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단순히 '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더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Less, but better (더 적게, 그러나 더 좋게)." (Vitsœ 웹사이트에서 그의 10가지 원칙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Less'는 단순한 양적 축소가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정제(Refinement)'에 가깝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의 진짜 'What if?' 질문이 시작됩니다.


jWfu-ERiRTe0qTbMowNvmw.jpeg 출처 : www.wishbucket.io


만약, 우리가 매일 듣는 스마트폰 알림음이 지금의 표면적인 단순함을 넘어, 디터 람스의 '더 정제되고, 그러나 더 좋게'라는 철학을 온전히 담아낸다면 어떨까요?


지금보다 '더' 본질에 가까워지고, 우리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는 알림음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디터 람스라면, 현재의 짧고 단조로운 알림음들을 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겁니다. "이 소리들은 정말 그 기능의 '본질'에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여전히 사용자의 주의를 무분별하게 빼앗으려 하고 있는가?"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Good design is honest)"는 그의 원칙을 떠올려봅시다. 지금의 알림음들은 과연 정직할까요? 친구가 보낸 시시콜콜한 메시지 알림음과, 정말 급한 업무 연락의 알림음이 과연 그 중요도에 맞게 다른 무게감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나요?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알림음은 일단 가장 큰 소리로 "나를 봐!"라고 외치고 있죠. 형태는 단순할지 몰라도, 그 태도는 전혀 정제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알림음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Less'의 형태는 갖췄을지 몰라도, 'Better'의 본질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죠. '더 정제되고, 더 좋게'라는 철학은, 이 무분별한 '침입자'를 사려 깊은 '비서'로 바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럼 디터 람스의 철학으로 다시 빚어낸, 지금보다 '더 정제되었지만 더 나은' 알림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이런 특징들을 가지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톤(Tone)'을 넘어 '질감(Texture)'으로 : 지금의 알림음이 명확한 '음높이'를 가진 톤이라면, 한 단계 더 나아간 정제는 거의 '질감'에 가까운 소리일 수 있습니다. 마치 브라운 사의 잘 만든 제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플라스틱의 감촉처럼, 소리 역시 귀에 직접 꽂히는 대신 부드럽게 감지되는 형태인 거죠. 예를 들어, 아주 짧고 부드러운 나무의 마찰음, 혹은 작은 모래가 구르는 듯한 소리처럼, 날카로운 주파수 대역이 제거되고 소리의 시작과 끝이 급격하지 않은(부드러운 Attack/Decay를 가진) 자연스러운 소리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청각을 자극하기보다, 촉각에 가깝게 작용하며 정보를 전달합니다.


거슬리지 않음을 넘어 '배려'로 : 디터 람스는 "좋은 디자인은 거슬리지 않는다(Good design is unobtrusive)"고 했습니다. 현재의 알림음은 짧아서 거슬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집중을 깨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진정으로 거슬리지 않는 알림음은 주변 환경과 나의 상태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마이크와 센서가 조용한 도서관이나 회의실의 분위기를 감지하면, 알림음은 저절로 더 부드럽고 작은 소리로 바뀌거나, 소리 대신 미세한 햅틱(진동)으로 전환되는 겁니다. 사용자가 일일이 모드를 바꾸지 않아도, 소리 자체가 상황에 맞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죠.


정직함을 넘어 '지혜'로 : 모든 알림이 평등하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사운드 시스템. 이것이야말로 '더 좋게'라는 철학의 정수일 겁니다. "좋은 디자인은 철저하며 마지막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원칙처럼,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소리의 형태를 체계적으로 디자인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레벨 1 (단순 정보)

: SNS '좋아요'나 쇼핑 앱의 광고 푸시 -> 소리 없음. 오직 화면을 켰을 때 배지로만 확인


* 레벨 2 (확인 필요)

: 일반적인 메신저 대화 -> 아주 부드럽고 짧은, 거의 '촉각'에 가까운 소리

* 레벨 3 (중요 정보)

: 업무 관련 메일이나 일정 알림 -> 명료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차임벨 소리


* 레벨 4 (긴급 상황)

: 재난 문자나 긴급 전화 -> 이때 비로소 우리의 주의를 확실하게 끌 수 있는, 명확하고 반복적인 소리.


이처럼 정보의 가치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소리의 서열과 명확한 역할 부여를 통해, 우리는 불필요한 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기능'의 아름다움: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는 원칙. 유행을 타는 귀여운 효과음 대신, 수십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기능적인 소리. 브라운 SK4 턴테이블의 디자인이 반세기가 지나도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멋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기능에 가장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알림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오래 사랑받는 소리는, 가장 조용히 자신의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한 소리일 겁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음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소리가 시끄러워서만은 아닐 겁니다. 알림음 하나하나가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혹시 중요한 일인가?" 하는 불안감을 유발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디지털 세계로 끌어당기기 때문이죠. 어쩌면 '정보 과잉''집중력 저하'가 문제의 본질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가 집중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디터 람스의 '더 정제되고, 더 좋게' 철학을 알림음에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의 디지털 환경 자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알림은 과감히 '침묵'시키고, 꼭 필요한 알림은 최대한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 이는 우리의 소중한 집중력을 지키고, 디지털 스트레스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디지털 웰빙'에 더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요?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칼 뉴포트(Cal Newport)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자, 오늘 우리의 두 번째 생각 스케치는 여기까지입니다. 전설적인 디자이너의 눈으로 바라본 스마트폰 알림음, 어떠셨나요? 어쩌면 우리가 매일 무심코 듣는 이 작은 소리들이,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알림음을 모두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듣는 소리를 '선택'하고 '디자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디터 람스의 철학처럼, 본질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 비단 눈에 보이는 디자인뿐 아니라, 귀로 듣는 소리의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 이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술과 맺는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듭니다.


당신의 스마트폰 속 알림음들은 어떤가요? 그 소리들은 당신의 하루에 꼭 필요한 정보만을, 가장 거슬리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나요? 당신의 귀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이 작은 질문에서부터, 어쩌면 더 나은 디지털 환경을 위한 고민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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