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로 다시 읽는 헌터x헌터의 세계
관점프리즘 No.1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중의 하나인 <헌터x헌터(Hunter x Hunter)>는 저의 20대를 관통하는 만화입니다. 유유백서의 작가인 토가시 요시히로의 작업으로 하마터면 넨 능력을 배우려고 여름을 통째로 날려버릴뻔 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양의 설명으로 '정말로' 구현될 것만 같은 능력들에 대한 설명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이렇게 즐겨보기만 한 만화의 진면목을 알게된 것은 예술이 전공이었던 저의 학부시절 한 교수님으로 부터 듣게된 동양철학들로 부터 시작됩니다. 이전에는 그저 재밌게 읽었던 만화책의 내용이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철학 서적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본 만화 <헌터x헌터(Hunter x Hunter)>는 복잡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넨(念)' 능력 배틀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전투와 기발한 능력들 밑바탕에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심오한 철학적 질문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힘을 추구하는가?" 같은 질문들이죠.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의 시작점에, 주인공 소년 '곤(ゴン)'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곤'이라는 이름 자체가, 2천 년 전 동양 철학의 거장, 장자(莊子)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첫 문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요?
장자의 첫 번째 편, '소요유(逍遙遊)'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북쪽 어두운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그 크기는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그 등 또한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힘껏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 (『장자』, 「소요유」편, 동양고전종합DB 등에서 원문 확인 가능)
여기서 저의 관점 프리즘이 시작됩니다. <헌터x헌터>의 주인공 '곤'이 장자가 말한 거대한 물고기 '곤'이며, 그가 '헌터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는 여정 자체가, 물고기 '곤'이 거대한 새 '붕'으로 변하여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적 자유의 경지, 즉 '소요유'의 세계인 '천지(天地)'로 날아가려는 과정의 은유라면 어떨까요?
<헌터x헌터>의 이야기는 '고래섬'이라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곤'은 그 섬의 '늪의 주인'이라 불리는, 누구도 잡지 못했던 거대한 물고기를 낚아 올림으로써, 자신을 길러준 미토 이모에게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고 '헌터 시험'이라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허락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장자의 이야기와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이름의 일치: 주인공의 이름이 북쪽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 '곤(鯤)'과 같다는 점.
증명의 방식: '곤'이 '늪의 주인'이라는 거대한 물고기(자신의 또 다른 모습)를 낚아 올림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점.
여정의 시작: '곤'이 '고래섬'이라는 좁은 세계(북쪽 바다)를 떠나, '헌터'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남쪽 바다, 天池)로 나아가려 한다는 점.
이것은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가 의도했든 아니든, 주인공의 출발점 자체가 장자의 철학적 화두와 깊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곤은 더 이상 작은 섬의 '늪'에 만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 하늘을 나는 '붕(鵬)'이 될 잠재력을 지닌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곤이 나아가려는 '헌터의 세계'는 장자가 말한 '천지(天地)', 즉 절대적 자유의 경지인 '소요유'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장자가 말한 '소요유'는 단순히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無待)' 궁극의 자유입니다. 남의 평가(명예), 물질적인 것(쓸모), 심지어 나 자신의 능력에조차 얽매이지 않고, 그저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따르는 경지입니다.
<헌터x헌터>의 세계관은 이 '소요유'의 철학을 역설적으로 탐구하는 무대처럼 보입니다.
'쓸모(有用)'와 '쓸모없음(無用)'의 경계: 헌터 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부와 명예,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강한 힘(라이선스)을 얻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가장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장자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 알 뿐, 쓸모없는 것의 쓸모(無用之用)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기준(쓸모)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장자, 「인간세」편] 참고) <헌터x헌터>의 이야기는 곤이 이 '쓸모 있음'의 세계(헌터)에 발을 들인 뒤, 오히려 그 힘(넨) 때문에 더 큰 고통과 집착에 빠지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과정(곤육몬 변신과 각성)을 통해, 진정으로 '쓸모 있는' 힘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힘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란 무엇인지를 처절하게 묻는 과정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넨(念)'이라는 이름의 '제약': 이 만화의 핵심 능력인 '넨' 시스템에는 '제약과 서약'이라는 흥미로운 규칙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 '제약'을 걸면 걸수록, 그 힘은 역설적으로 더 강력해집니다. (예: 크라피카의 '목숨을 건 사슬') 이는 장자의 '소요유'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세계에서 왜 스스로를 얽매는 '제약'이 강함의 원천이 되는 걸까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행위입니다. 남의 기준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규칙(道)'을 세우고 그것을 따르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넨'이라는 거대한 힘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지키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곤과 크라피카 나름의 치열한 수행 방식이 아니었을까요?
이 글을 통해 제가 발견하는 것은, <헌터x헌터>가 단순히 소년의 성장담을 넘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장자의 오래된 질문을 현대적인 서사로 변주하고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곤은 아버지를 찾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거대한 물고기를 낚아 '붕'이 될 준비를 마칩니다. 하지만 그 여정 속에서 그는 '복수'라는 집착에 사로잡히고, 결국 '제약과 서약'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얻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쓸모없는' 존재(넨을 잃은)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곤의 여정은, '붕'이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화려한 성공기가 아니라, '붕'이 되려다 추락하고 나서야 비로소 '곤'이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장자가 말한 진짜 '소요유'는 하늘을 나는 '붕'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목적이나 쓸모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자유로운 마음' 그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철학가의 물음이 현대 만화 속 소년의 여정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탐구하며, '자유'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