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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Jan 15. 2021

재능의 의미 <에드 우드>

팀 버튼, 1994


1. 재능이란, 냉정하게 정의하면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이다. 


2.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유일하게 나 자신만 인정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걸 꼭 재능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재능이란 단어를 신경 쓰는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인정을 간절히 원한다는 뜻이다.) 


3. 반 고흐에게는 재능이 있다. 그의 사후 그의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화폐가 되었기 때문이다. 


4. 에드우드 역시도 재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나중에 그의 영화들은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5. 영화 <에드우드> 속의 에드우드는 아직 감독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여자옷을 입는 취향?에 대해서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충분하게)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좀 다른 차원의 인정투쟁이다. 


6. 영화감독으로서 뛰어남과 부족함을 논하는 것과는 달리, 여자옷을 입는 나에 대한 인정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면 부정 당하느냐의 문제다. 어쩌면 이쪽이야말로 훨씬 사적이고 인간적으로 중요한 인정이다. 


7. 바로 이 사적이고 인간적으로 절실한 인정(있는 그대로의 자기존재에 대한 수용)이 좌절될 때... 불행한 유년기나 사회적인 배척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종종 사람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재능을 인정받는 것으로 대신 충족하려는 경향이 있고 더 나아가 인정받지 못한 개인을 작품속에 침투시키기도 한다. 영화 <에드우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에드우드가 직접 여장을 하고 자기영화에 출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8. 하지만 재능을 인정받는 것은 개인을 인정받는 것보다 훨씬 냉정한 현실이다.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나 통할 재능을 지금까지 아무도 알아봐주지 못했다는 게 해리포터의 판타지나 다름없거니와... 설령 그 숨겨진 재능을 기적적으로 인정받았다 할지라도 그게 곧 개인으로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불특정 다수는 불특정 다수일 뿐 대중은 내 일부에 열광하거나 비난할 뿐, 그들은 나를 모른다.


9. 영화 <에드우드>가 나름의 해피엔딩을 획득하는 방식은 에드우드가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는 차원을 떠나, 한 사람의 소박한 개인으로서 자기실체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감동적으로 연출함에 있다. 놀이공원 유령의 집을 통과하며 에드 우드는 연인 캐시에게 여자 옷을 입는다는 자기취향을 고백한다. 캐시가 잠시 고민한 후 ‘좀 이상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정지했던 유령열차는 다시 움직이고 무시무시한 괴물 사이를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스쳐지나간다. 


10. 영화는 엔딩 이후에도 캐시가 끝까지 에드우드와 함께했고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암시한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게 사실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행복이고 거기에 비하면 재능이나 불특정 다수의 인정 따위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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