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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Jan 15. 2021

<Le Samouraï>

장 피에르 멜빌, 1967


1.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가는 거의 첫번째 신에서 판가름된다.


2. 텅 빈 잿빛의 방, 두 개의 창문만 희게 빛나고 한쪽 구석 침대에는 한 남자가 조용히 누워있다. 그가 피워올리는 담배연기가 천장으로 부유한다. 방의 한가운데 새장 하나가 놓여있다. 새장 속의 새도 혼자다. 비를 밟고 지나가는 차소리, 간헐적인 새의 울음소리 그리고 침묵.


3. 그 하나의 그림이 어떤 영화인지를 말해준다.


4. 많은 필름느와르들에게 영향을 주고 변주되었지만 이 영화만의 분위기와 스타일은 아직도 이 영화만의 것 같다. 왕가위의 영화들처럼 눈에 확 띄는 스타일은 아니어도 한결 절제되고 은근한 그만의 멜랑콜리한 정서가 존재한다. 알랭들롱이 연기한 주인공 제프 역시 영화속 고독한 킬러들의 까마득한 선배 격이다.(최근에는 2049의 K도 그의 후배일 것 같다.) 오랫동안 말없이 결투를 기다리는, 그러다 문득 한순간에 승부를 결정짓는, 제프의 캐릭터가 곧 이 영화의 스타일이다.


5. 일상처럼 한 건의 청부살인을 해결한 후 그는 경찰의 추적과 의뢰인의 배신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이 정도야 왓플소개글에도 나와 있으니 상관없겠지) 그는 혼자서 싸워나가야 한다. 그는 정말이지 지독하게 혼자다.


6. 그가 특별히 좋은 사람인것 같지않은데(워낙 말이 없어서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다) 관객은 점점 그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카메라는 일부장면을 제외하곤 그만을 따라다니며 각본상으로도 미묘하게 그의 편을 들게끔 짜여져있다. 그래서 막상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어느 시점에는 그를 이해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


7. 그가 지내는 텅빈 방에는 티브이도 아무것도 없다. 그는 가만히 누워 천장으로 솟구치는 담배연기를 쳐다볼 뿐이다.


8. 가끔 그는 새장속의 새를 관찰한다. 새와 침묵의 소통을 나누는듯한, 그걸로 위기를 감지하는 재밌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9. 어쩌면 그는 새장속의 새를 이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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