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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Jan 15. 2021

적룡, 강대위의 <대혈투>

장철, 1971


 계속되는 킬 빌의 레퍼런스 

 이 영화 역시 보다보면 유년시절의 타란티노가 열광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소년들의 특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순수한 마초이즘을 만끽하는 판타지로서의 영화...

 오프닝 시퀀스가 멋지다. 

 영화가 시작하면 주인공 적룡이 상반신을 드러내고 누워 가슴복판에 나비문신을 새기는 중이다. 문신 새기는 영감한테 뭐라 뭐라 중얼대면서...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이 나비라는 뜻인데 

 부디 그 사랑이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는 것 같다.

 나비의 윤곽만을 새기고 색깔은 내일 물들이자며 적룡은 검은 옷을 걸치고 집을 나오는데 그의 동생이 벽에다 칼 던지기를 하고 있다. 적룡은 동생의 옆에 서서 농담한다. 동생이 칼을 던지는 순간, 순식간에 적룡이 달려가서 한 손에 단검을 낚아챈다. 그는 껄껄껄 웃으며 골목 반대편으로 뛰어가 또 동생에게 단검을 던지는데(장난으로...) 갑자기 벽모서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강대위가 이 단검을 낚아채며 시뻘건 타이틀과 함께 무려 ‘2001스페이스오딧세이’의 웅장한 오프닝 스코어(차라투스트라...)가 울려퍼진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마음에는 들었다. 영화를 함축하는 오프닝이기도 하다. 


 적룡은 조직보스의 양아들로 길러졌다. 타 조직과의 싸움에서 보스가 죽자 보스자리는 다른 형제가 물려받고 적룡은 살육전의 책임을 진 채 시골로 도피한다.

 하지만 거기서도 적룡을 위협하는 손길이 다가오고... 결국 보스(양아버지)의 죽음에는 조직 내부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솔직히 내러티브를 소개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일본의 핑크무비에 몇 번의 섹스신이 다른 체위로 등장해야 한다는 식의 규칙이 있다던데 이 영화의 플롯도 액션과 액션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 그리고 싸움의 정서를 불어넣는 애무역할에 충실한 것 같다. 갱스터 영화기 때문에 바글바글한 조직원들이 단검과 손도끼로 서로 살육하는 아수라판이 펼쳐진다.


 강대위 얘기를 안했는데... 강대위는 적룡의 보스(양아버지)가 죽기 전 바로 얼마 전에 조직에 들어 온 남자다. 시종 기침을 콜록대면서도 담배를 입에 물고 싸우는 허세가 매력적이다.(볼수록 유희열 닮았다). 사실 그가 보스를 죽인 장본인이고 여기에는 당시 중국의 군벌과 폭력조직과 관련된 복잡한 사정이 있다. 얘기하기도 복잡하다. 아무튼 이 사실을 알게 된 적룡은 강대위가 나중에 자신의 목숨도 구해주기 때문에 갈등하게 된다. 의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내 목숨을 구한 그를 죽여야만 할 것인지.


 영화에서 조금 불만스러웠던 게 적룡이 가슴에 새긴 나비...

 즉 적룡이 사랑하는 그녀가 매력적이지 않다. 얼핏 지하철 자리 가로채는 아주머니처럼 보인다. 그녀는 적룡이 떠나있는 동안에 창녀로 전락해버렸다. 나중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적룡은 그녀의 손님으로 찾아간다. 흠칫 놀란 그녀가 어떻게 돌아왔냐고 물으니 네 벌거벗은 모습을 보기 위해! 라고 적룡은 대꾸한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니 부르지 말라고, 니가 나의 이름을 부르면 악취가 난다고 그는 퍼붓는다.(말씀이 좀 심하다.) 한편 적룡은 사랑하는 그녀를 보지 못하는 시간동안 가슴의 나비문신에 색깔을 물들였다. 이제는 그의 가슴에서도 악취가 날까? 


 영화의 액션 연출은 무자비하며 현재 기준에서도 화끈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워낙 오래 전 영화라서 썩 리얼하게 이입되지는 않는다. 아니면 혹시 내게 억눌린 뭔가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영화는 일상에서 분노 같은 에너지가 이빠이 충전되었을 때 비로소 만끽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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