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와분노 Jan 16. 202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밀로스 포만, 1975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문득 

 직감적으로 짐작되는 바가 있어 듀나의 글을 검색해봤다.(현재에는 사라진 상태, 이 영화에 대한 일반회원의 비슷한 취지의 글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 

 예상대로 그 분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짐작했던 바, 그 분으로서는 이 영화에 호감을 갖기 어려울 것 같았다. 

 뭐 그 분이 좋아하건 말건, 나는 나대로 얘기하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분의 관점에 대한 반응이 이 영화에 대한 내 얘기에 스며들지 모르겠다. 


 -메디케이션 타임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으니 영화에 대해서만 얘기하자.

 영화가 시작하면 영화史에서 악명 자자한 레치드간호사가 병동의 철망문을 열고 출근한다.

 이내 클래식 레코드가 올라가고 '메디케이션 타임'이 시작된다.

 환자들은 줄을 서서 '착한 아이처럼' 간호사가 주는 약을 받아먹는다.

 이때 병원 밖에서는 새로운 환자 맥머피(잭 니콜슨)가 도착한다. 그럴 리 없겠지만 아내와 아들을 도끼로 찍으려다 얼어뒤질 뻔 하고 여기로 왔을 것 같다.


 -병동의 권력구조

 원장은 배후에 숨어있다. 그는 의사이고 박사일 뿐이며 누군가 거친 일들을 대신하면 자신은 결정권자로서만 행세한다.

 병동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간호사와 조무사, 보호사들이다.

 병동 안의 질서, 그날그날의 스케줄에 관한 내부권력의 정점에는 수간호사 레치드가 있으며 그녀와 다른 여성간호사 그리고 거구의 흑인보호사들이 병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공교롭게도 ‘더’ 거구의 인디언 '추장'을 제외하면 환자들이 죄다 백인남성들이라서 여성과 흑인에 의해 백인남성들의 광기가 제어되는, 현재시점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시스템, 권력구조라 할 수 있겠다.


 -맥머피는 미쳤는가?

 새로운 환자 맥머피는 미치지는 않았다. 위험할 뿐이다. 그는 몇 번의 폭력전과가 있는데 화가 나서 싸웠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미성년자와 합의하에 섹스를 한 죄가 있는데(듀나의 글에서는 의제강간이라 못 박았다.) 맥머피 본인은 그 여자아이가 열다섯 살이 아니라 열여덟 살이라고 속였다고 또 반박한다. 어쨌거나 그는 아내와 아들을 도끼로 찍으려 할 정도로 미친 것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위험할 따름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기존 시스템과 기존 권력구조에 반항적이다.


 -레치드 간호사는 사악한가?

 머리를 제외한 신체 일부가 아프다면 그 일부에 한해서는 의사가 전문적 권위를 가진다. 나는 나의 머리로 치료를 할 건지 말건지 결정할 수 있다.

 머리가 아프다면?

 머리 뿐 아니라 나의 전부에 대해 의사가 전문적인 권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비교적 가벼운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더라도 그걸 들어주는 상대가나를 동등한 성인,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험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혀 버리고 나면 의사와 간호사와 보호사들은 당신을 절대 동등한 자기결정권을 지닌 성인으로 바라보지 않을 거라고... 당신에게 존대어를 구사하는 입술 위에서 한 쌍의 눈동자는 당신을 미성숙한 아이로 바라볼 거라고. 그런 불가피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적어도 영화 속의 레치드 간호사를 통해서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녀는 병동의 환자들에게 침착하고 냉정한 엄마처럼 행동한다.  

 환자들은 그녀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엄마처럼 두려워한다. 이런 비유적 뉘앙스가 영화 속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록 레치드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아주 무서운 엄마 같은 존재일 지라도 그녀 입장에서는 병동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아주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병동의 실질적인 리더이고 리더는 언제나 군중을 두려워한다. 간혹 군중에 대한 경계심이 환자에 대한 배려를 살짝 압도해버린 나머지 히스테릭한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치드 간호사는 불가해하거나 불가해한 사악한 존재라고 볼 순 없다. 그녀는 단지 스스로를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만큼 실제로는 완벽하지 못한, 시스템 내에 속한 평범한 개인일 뿐이다.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아빠의 목소리

 영화를 다시 보며 새삼 발견한 부분은 영화가 알려진 것보다는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것, 테마의 양극단 사이 무게중심을 유지하고 레치드 간호사와 맥머피는 각자 나름의 한계와 정당성을 가진다. 

 물론 기본적으로 맥머피가 주인공이고 추장이 관찰자이긴 하다. 그렇다고  영화가 무식하게 일방적으로 레치드 간호사를 몰아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잭 니콜슨의 열연으로 관객이 이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레치드 간호사를 싫어하게 된다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영화를 다시 보거나 약간 거리를 두고 보면 레치드와 맥머피 둘 다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측면을 인정할 수 있다. 

 레치드와 맥머피가 저마다의 광기를 분출하는 시점은 두 사람이 조우해서 충돌하면서부터다.

 맥머피는 왜무엇 때문에 레치드 간호사의 질서에 맞서 싸우는가?

 그는 자신과 환자들에게 월드시리즈 야구경기를 보게 해 달라고 투쟁한다.

 그는 음악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담배 때문에 미쳐 날뛰는 환자에게 그냥 담배를 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점점 폭주하여 환자들을 이끌고 병원 밖으로 탈출하여 다함께 보트를 타고 여자를 만나고 낚시를 즐긴다. 레치드간호사와 맥머피는 병동의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스템을 신뢰하는 레치드 간호사는 환자들을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고로 자신이 정한 계획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지만

 맥머피는 그런 잣대에 반발하며

 임마, 느그들 다 컸어 임마! 야구도 보고 어?! 담배도 피우고 같이 낚시도 하고 어?! 보트도 타고! 여자도 만나고 어?!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뭐 이렇게... 집(시스템)밖에서 뛰어놀라고 외친다. 

 그러므로 레치드와 맥머피는 아이에 대한 양육관점이 다른 부모처럼 서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점점 과민하고 과잉된 반응을 보이는 엄마 아빠로 변해간다.

 영화의 절정으로 치닫는 비극에서 드디어 맥머피는 미쳐 폭발하는데

 (레치드 간호사가 환자의 정신적 약점을 환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일면 그의 분노는 이 비극에 자신의 책임 또한 있다는 죄책감으로 표출된 반응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시종 맥머피가 근원적으로 적대하는 대상은 눈앞의 레처드 간호사라기보다 레치드 간호사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시스템의 견고한 질서일 것이다. (영화 밖 상식으로는 당연히 모든 환자는 병원 측 시스템과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고민하는 문제의식이 그 시스템과 질서 자체까지 닿아있으므로 적어도 영화 속에 한해서는 맥머피의 입장에 조금은 무게를 싣고 함께 고민하며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유치하게 보는 방법

 유치한 영화들은 유치하게 봐도 상관없다. 그런데 유치하지 않은 영화들은 쉽게 특정인물을 완벽한 해답이라거나 완벽한 오답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섣불리 계몽을 읽어내려는 몸짓, 혹은 反계몽을 읽어내려는 몸짓 그리하여 계몽과 反계몽으로 섣불리 나눌 수 없는 현실을 또 섣불리 이분법적으로 나눠버리는 몸짓은 유치하지 않은 영화나 유치하지 않은 현실에서는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그럼에도 확실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있다면 환자들을 대하는 시스템의 어떤 측면 같은데... 영화 속의 전기충격이라거나 뇌절제술 같은 것들 말이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좀 얄미웠던 존재라면 이런 시스템의 축조에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한 (레치드 간호사가 아닌) 병원의 원장 같은 인물일 것이다. 그는 표면으로 나서 악역을 맡을 필요가 없다. 모든 비극이 끝난 후 뒤늦게 나타나 '자신을 제외한' 누가 잘못했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결정해버리면 그만이다. 잘못과 책임을 따지는 것 뿐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자체에 모순이나 오류는 없는지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원장도 불완전한 인간이고 우리 모두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구축한 시스템과 질서는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결코 완전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의 늑대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