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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Jan 16. 2021

<박쥐>의 문어체 대사

박찬욱, 2009


 “딱 꺼내는데 거의 이만… 이만했어요. 노랗고 구멍도 숭숭 나고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그걸 품에 넣고 다니는데… 길에 여자애가 동생을 업고 앉은 거예요. 딱 보니까 밥을 못 먹었더라고. 얼굴이 누렇고 동생도 축 쳐져서 울지도 않고… 그래서 딴 데 가서 먹으려고 딴 데로 가다가… 가다가… 가서 줘버렸어요. 하루 종일 품에 넣고 다녔으니까 그게 또 따뜻하잖아요. 제가 또 언제 그런 카스테라를 보게 될지 모르는데… 정신없이 먹더라고요. 동생 입에도 막 찔러 넣고… 그걸 하느님이 기억하실라나요? 30년 전 일인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어떤 살 찐 남자가 주인공 '상현'에게 털어놓는 고백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 남자는 상현의 '카스테라'로 전락한다.

 상현은 일개 인간으로서나 성직자로서나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이타주의적인 인물이다.

 먼 이국땅으로 떠나와 자기 몸에 증명되지 않은 백신과 불치의 바이러스를 투입한다.

 곳곳에 수포가 돋아나 뭉치고 부풀어 궤양이 되어 자신의 육체를 붕괴시키는데 그 와중에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입술과 혀를 짓찧으시어 그것으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며

 손톱과 발톱을 뽑아내어 아주 작은 것도 움켜쥘 수 없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결국 상현은 그 자신의 '육체'를 부정한 만큼

 그 육체에 보복당하여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無敵의 육체로 부활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 육체의 무시무시한 욕망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복수라면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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