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마샬, 1990
어디선가 이 영화의 원래 각본이 무척 암울했었다는 얘길 듣고서 호기심이 생겨서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주가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에게 3000달러를 집어던지고 그녀를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결론이 아니라서 다행스러웠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영화가 좋았다.
부자남자에게 여자가 끌리는 건 꼭 이해타산의 논리 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
돈이 많으면 그 남자가 더 매력적이고 잘 생겨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나?
돈 많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가 출장 떠나서 우연히 만난 창녀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을 3000달러를 대가로 둘이서 일주일동안 최고급호텔에서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가
그리고 어쩌다보니 서로 좋아져서 연인이 된다는 자체가 꼭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세상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로 비현실적인 부분은
이 영화가 더욱 비현실적이 되려고 노력해서 과감하게 영화적인 판타지, 백일몽을 충족시켜 주려는데 있다.
영화는 스스로 선택한 방향성에 정직하리만큼 충실하다.
호텔직원들은 비비안을 성심으로 상냥하게 대해주고
지배인은 옷도 골라주고 식사매너까지 가르쳐준다. 비비안이 원한다고 말했던 페어리테일의 바로 그 요정이다.
에드워드와의 관계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딱히 심각한(그래서 작위적인) 난관 같은 것도 없다.
그나마 위협적이었던 게 에드워드의 변호사가 그녀가 창녀인걸 알고 덤벼든 것일 텐데
그마저도 잠깐이고, 때마침 에드워드가 나타나 두들겨 패줌으로서 위기보다 더한 만족감으로 보상받는다.
시시껄렁한 위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영화는 비비안과 에드워드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그래서 관객들이 그들의 데이트를 지켜보는 대리만족을 만끽하도록 보장한다.
물론 비비안은 알고 있다. 이 달콤한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거리의 창녀로 돌아갈 것을.
관객들도 알고 있다. 영화가 끝나면 현실이 시작될 것을.
그럼에도 그런 추락의 두려움조차 에드워드의 고소공포로 슬며시 전가되어 있고,
비비안과 관객은 차분히 앉아 기다릴 뿐,
기다리면 에드워드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추락의 두려움 따윈 가볍게 극복하고
비비안과 키스한다. 그녀와 우리는 행복하다.
만약 영화의 본질이란 게 있다면 일종의 백일몽, 판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본질 따윈 없고 각자 선택한 영화를 추구할 뿐이지만 이 영화는 스스로 선택한 영화가 되려는 데 거리낌이 없다.
어떻게 보면 요즘의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훨씬 쿨하고 심지어 어느 지점에서는 한층 품위가 있다고도 여겨진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나 대사들은 의외로 청승맞지 않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그들은 꽤 많은 시간을 둘이서만 함께 보낸다. 억지스런 텐션을 형성하지 않고 다만 둘만의 시간을 공유함으로서, 관객도 그 일 대 일의 밀도있는 시간을 함께함으로서 놀랍게도 그들 관계의 호소력이 와닿는 순간마저 존재한다.
그들은 무척 잘 어울린다. 오직 영화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