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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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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Jul 03. 2022

여름


여름에는 무엇 하나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

하늘이 시시각각 변한다. 바깥에 내놓은 복숭아가 무르고 터진다. 보도블록은 수면으로 올라온 물고기 떼처럼 찢어질 듯이 밝게 일렁인다. 그러다 비가 오면 움푹 파인 곳마다 우산 속빛이 담기고, 비가 그치면  위로 무겁게 노을이 진다. 뜨겁게 달궈졌다가 다시 식는 도로의 간판. 우르릉거리는 버스 엔진 소리어스름이 내린 주택가 골목의 적막. 매미가 미친 듯이 번식을 외치며 울다가 제풀에 나무에서 떨어져 빙글빙글 돌다가 죽는다.


도시는 여름의 꿈을 꾼다. 혹은 여름은 도시가 눈을 감고 꾸는 하나의 긴 꿈이다. 매년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꿈. 눈꺼풀 아래로 정신없이 필름이 돌아간다. 뇌파를 측정하는 기계가 사각거리며 비밀을 기록한다. 어둠 속에서.


가끔은 과거에 두고 온 사람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년, 10년을 거슬러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면 여느 때와 같은 표정과 서늘한 실루엣으로 멈춰서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다시 말을 걸어보아야 하나. 손을 내밀어보아야 하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상자를 계속 끌러 본다. 그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부끄러워 눈을 돌린다. 치기 어린 계절으로부터 온 것들을 손가락으로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켜켜이 지난해, 또 그 지난해 여름의 훈기가 전해져 올 것이다. 상자를 닫는다. 처음 열었을 때처럼 곱게 담지는 않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넣고 뚜껑을 닫는다. 다시 열게 되면 그 안의 것들이 쌀벌레처럼 쏟아져 나올까봐, 자물쇠를 걸어 옷장 속 어둠에 넣고 문을 닫는다. 여름에 일어난 일들은 여름에 머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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