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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Jul 05. 2022

밤 도시 산책

, 서울 한복판을 외국인처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도시의 모든 빛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밤이었다. 걸으면서 서울이 뉴욕 같거나 긴자 같아지는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로비가 넓은 호텔의 회전문을 지나고 동아일보 건물을 지나고 교보문고 건물을 지나고 동화면세점 건물을 지났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지났다.  더미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잠든 노숙인을 지났다. 놀란 마음이 덜컹거리는 찰나의 순간 서울은  이상 긴자나 뉴욕같지 않게 되었다. 다시 포시즌즈 호텔과 웃음기 많은  무리의 사람들을 지났다. 광고 전광판의 이 맞은편 고층건물의 외벽에 나무 그림자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종로 1가와 2가와 3가와 4가와 5가와 6가를 지났다. 버스 정류장들이  이렇게 단순하게 이름 지어지면 편리하겠네, 하고 생각했다가 이내 나는 인덕원이라는 이름과 길음이라는 이름과 모란이라는 이름이 좋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그곳에 살아보면 이름들은  광채를 잃고 묵직하고 덥고 떼어내버리고 싶은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곳이 인덕원이거나 길음이거나 모란이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는 광장시장을 지나고 전자올겐과 아코디언을 파는 가게를 지나 올리브영과 YBM 노란 포장마차의 불빛과 당구장 건물의 빨갛고 파랗고 초록색인 LED 내게 보여 주었다.

버스에서 내릴 즈음이 되자 비로소 눈 대신 귀가 열렸다. 내릴 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과 섞여 라디오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는 듯 모르는 듯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꿈에서 들은 것 같은 멜로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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