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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Dec 01. 2022

이름이 가능하게 하는 것들

예전에 비행을 무서워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원리를 알고 있느냐고, 알고 나면 비행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거라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원리는 양력이다. 양력이라는 단어는 적당히 과학적이고 명확하게 들려서 신뢰를 준다. 그러나 그 원리를 풀어 말하면 날개의 형태를 따라 위와 아래에 흐르는 공기의 압력 차이에 의한 힘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는 공기,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를 활주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며 적절히 사용하는 것으로 수백 톤의 철근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어쩌면 양력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 때문에 떠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이름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보안 검색대를 거치고 기꺼이 좁은 공간에 뭉쳐 앉아 무료하게 창밖을 내다보며 추락할 걱정 없이 몇 시간씩 공중에 떠 있게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나는 비행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비행기에 타면 조금 더 겸허해진다. 아래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점점 작아졌다가 흰 구름의 밭 아래로 사라지면 어딘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된다. 회색으로 된 캐빈은 작은 고해성사실처럼 느껴진다. 땅에서 이족보행하기 위해 태어난 동물들이 자연의 원리대로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빈 공간 속을 떠가고 있다. 오로지 공기의 힘에 대한 믿음 덕분에.


언제나 그곳에 있었으나 사람들이 이름 붙여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들

1. 수목한계선

2.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 판

3. 하강하는 중력과 상승하는 양력

4. 계절성 우울증

5. 대기권과 성층권

6. 환절기

7. 개기월식의 주기

8. 강과 바다가 만나는 어귀

9. 바다의 간조와 만조 시간

10. 꿈꾸는 렘(REM) 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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