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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Jun 11. 2021

마지막 하드보일드 탐정


그는 뉴욕의 마지막 남은 하드보일드 탐정이었다.


(‘마지막’의 정의란 사실 모호했지만, F는 이 부분에 꽤나 자부심을 가졌다. 일이 없는 밤이면 - 그러니까 대체로의 밤들엔 - F는 단골 바에 앉아 낡은 노트북으로 ‘하드보일드 탐정’을 검색하고 그 수식어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립탐정과 해결사들을 찾아내 그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타깃이 정해진 후에는 집요하게 그들에게 협박 메일을 보내거나 집 창문을 깨고 협박 쪽지를 던져 그들이 수식어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남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타이틀이란 이렇듯 피와 땀으로 얼룩진 비정한 노력의 결과였다.)


비 오는 밤이면 F는 차를 몰고 거리로 나갔다.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다만 "어디론가 향한다"는 느낌을 좋아했다. 20년 넘게 살아온 도시는 이제 늙은 개와 주인의 관계처럼 서로에게 편안하게 치부를 내보여주었다. 해가 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아마도 늙은 개의 쪽이 F 자신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가 뉴욕에 사는 20여년 동안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십, 수백 편의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어떤 것들은 경멸했고 어떤 것들은 꽤나 그의 마음에 들었다. F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좋아했다. 다만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한 여성으로부터 “그 좆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는 남자는 꼴불견이에요,” 하는 말을 들은 후로는 그 화제를 꺼내는 데에 조금 소심해졌다. 여자는 시립대학교의 영화학도라고 했다. 싸구려 모텔에서 그는 곰팡이 얼룩이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택시 드라이버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싫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번화가를 지나 골목길로 차를 몰았다. 하수도로 흘러드 빗물에 정지 신호등의 핏빛이 녹아들었다. 사실 뉴욕의 치안은 그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 놀랍도록 개선되어, 엄밀히 말하면 더 이상 도시의 누구도 그의 '서비스'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어떤 의무감에 이끌려  오는  밤마다 차를 몰았다. 뉴욕 정도 되는 도시라면,  오는 밤거리를 순찰하는 하드보일드 탐정이 하나 있어야 하기 나름이라는  그의 변함없는 신조였다.


밤이 늦어져 배가 고프면 장갑 칸에서 프레첼 과자를 꺼내 씹었다. 봉지를 다물어놓는 것을 매번 잊었기 때문에 과자는 대개 눅눅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이제 그도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물론 그의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중절모를 쓰고 깊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옆모습의 흑백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드보일드 탐정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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