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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Oct 03. 2021

피아노시티

아홉 살 때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 피아노 선생님과 택시를 타고 콩쿨 대회장에 가서, 분장실에서 치맛자락에 얼룩이 있는 드레스를 빌려 입고, 무대로 올라가서 열심히 외운 소나티네를 쳤다. 그날 나는 지역 어린이 콩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다시는 레슨에 나가지 않았다.


레슨을 그만두고 처음 몇 년 간은 건반에 손을 가져다 대면 몸이 기계인형처럼 다시 소나티네를 저절로 연주했다. 그러다가 그 기억도 점점 흐려졌다.


피아노를 치는 법을 잊으면서 악보 보는 법도 조옮김하는 법도 잊어버렸다. 이제 나는 음악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악보에 납작하게 누워 있던 음악이 몸을 일으켜 물성을 지니고 다가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높은음과 낮은음: 피아니스트는 두 가지 소리를 펴 바르듯이 연주를 한다.

낮은음은 버터처럼 뭉개진다. 한 음과 다음 음이 서로를 지그시 누르며 자기소개를 한다.


높은음 건반의 해머가 나무에 닿는 소리에 공기는 잠을 깬다. 그대로 잠시 건반에 손을 대고 있으면 수면에 퍼지는 동심원처럼 여백이 생긴다.


*


알맞은 시간과 공간, 날씨에서라면 이 여백에 햇빛을 가둘 수 있다.

이제 방이 조금 더 밝아졌다.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의 손을 떠올린다. 둥글게 손등을 모아서, 작은 달걀들을 품고 건반을 눌러야 한다고 배웠었다. 손을 건반에서 살짝 들어 올려 누르고 있던 반투명한 달걀들이 공중으로 천천히 떠오르는 상상을 한다.


높은음을 다시 땅 하고 누른다.




어디선가 도서관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밝은 날 책꽂이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워지는 풍경이다. 누군가 서랍을 열고, 닫는다. 서가의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열쇠의 소리.


가을 즈음 낯선 도시에 처음 방이 생겼다. 4평 정도 되는 방이었다. 가구를 살 돈은 없었고 그 대신 방을 음악으로 채웠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한순간도 음악이 끊기는 일이 없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온갖 잡다한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들었다.

나는 곧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보도블록과 지붕과 건물과 지하철역 종점까지 가슴속에 담아 마음이 뻐근해질 만큼.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 위 창문 너머로 도시의 하늘이 보인다. 여기는 공항이 네 개나 있는 곳이다. 새벽 비행편이 남긴 긴 구름들이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그어져 있다. 가만히 누워서, 오늘은 어떤 길을 따라 걸을지,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코너를 돌아 슈퍼마켓을 지나고. 방금 문을 연 카페 앞을 지나면서는 뜨거운 원두의 냄새를 맡고. 대도시에서는 한 순간도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항상 다리를 움직이면서 동시에 하늘도 쳐다보고, 건물도 봐야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들도 구경해야 하며, 자전거를 타고 앞에서 오는 사람에게 눈인사도 해야 한다. 도시를 사랑하는 일은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울릴 것 같아서 일부러 피아노곡을 꺼내 들은 건 아니었다. 걷다 보면 피아노곡은 늘 가장 어울리는 순간에 흘러나왔다. 높은 음마다 햇빛을 가득 담고 건물의 테라스마다 얹혀 있었다. 운명적이다.


낯선 도시에서 반년을 살면서 나는 한 유명 피아니스트와 길에서 세 번 마주쳤다.

한 번은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장에서, 한 번은 공영주차장에서, 한 번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서.

이것 또한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어쨌든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감각이다.

2. (감각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강물에 햇빛이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날씨가 맑은 날은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 앞 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보이는 강은 늘 묽은 커피우유 같은 색깔이었다. 현지인들은 강물이 흐리다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 강도 사람들도 도시와 닮아 있었다. 흙탕물 표면에서 부서지는 빛을 눈이 시리도록 내려다보던 시간. 준비해 간 빵가루를 던지면 갈매기들이 둥글게 날면서 모여들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물가 가까이까지 가서 앉았다. 이미 와서 앉아있는 노숙인들과 목례를 했다. 그곳은 그런 문화였다.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아도 무섭지 않았다.


강물은 도시를 떠나는 날에만 푸른빛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시리게 새파란 강물을 내다보며 세상일이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날씨야 하늘이 하는 일이니 뭐든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마지막에서야 인사처럼 보여 주는 푸른 얼굴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늘 보던 흙탕물 속에 부서지는 햇빛이 그립기도 했다. 어쨌든 그 모습은 피아노 높은음과 함께 언제든 다시 눈앞에 돌아온다. 소리와 소리의 사이, 창틀에 얹힌 먼지도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은 그 여백 속에 도시의 햇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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