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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May 26. 2019

블루보틀은 어떻게 스타벅스보다 핫한 브랜드가 되었나?

성수동 블루보틀에 다녀와서 느낀 점

성수동 블루보틀에 다녀왔다. 해외에서 방문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블루보틀과는 첫 만남이었다.

평일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

다행히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대기가 길지 않았다.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평소 커피라면 종류 불문하고 즐겨 마시는 편이라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15분 정도 기다리면서 이곳저곳 둘러봤다.

'우리는 커피 전문가야'라는 뉘앙스의 층별 구성

싱글 오리진(원두 이름을 알려줬는데, 기억이 안 난다.) 드립 커피와 마들렌(feat. 참기름)을 주문했는데, 개인적으로 마들렌은 평범하다고 느꼈고, 싱글 오리진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싹싹 해치웠다. 저 스푼은 무슨 용도일까..

산미가 강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블루보틀의 싱글 오리진은 산미가 강한 것 같은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신맛이 자연스럽고 신선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어쨌든, 블루보틀의 첫인상은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물론 주말에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데, 다시 갈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면, 그건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더라도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체험하려는 자세에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라... 누가, 주말에 가본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진 않을 것 같다. 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블루보틀의 인상 깊은 부분을 정리해 보자면,


블루보틀의 아이덴티티는 뉴올리언스 보다 싱글 오리진 아닐까?

얼마 전 커피 산업의 흐름을 물결에 빗대어 설명한 글을 읽었다.

제1의 물결은 인스턴트커피로 대변되는 믹스커피, 제2의 물결은 스타벅스로 대변되는 고압의 기계를 통해 추출한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 그리고 제3의 물결은 커피 원두가 가진 고유의 맛과 특징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데 초점을 맞춘 스페셜티.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실리콘밸리가 사랑하는 커피 / 양도영, 북저널리즘)


블루보틀은 당연히, 제3의 물결을 대표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블루보틀 자체가 커피 덕후의 덕질에서 비롯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게 덕질이건 어쨌건, 보다 맛있는 커피에 대한 집착은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가 장악한 시장에 묘하게 먹혀들어간 점이 있는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커피점들이, 와이파이와 전원 콘센트를 확보하고, 인테리어를 차별화하고, 베이커리를 메뉴에 추가하며 나름의 전략을 펼칠 때, 커피 자체에 집중하며 싱글 오리진과 슬로 드립 커피에 초점을 맞췄던 블루보틀의 전략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싱글오리진, 단어 자체가 유니크 한 거 같다.

사실, 머신을 이용한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는 빠른 추출, 즉 빠른 회전력이 수익의 핵심이다.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드립 커피 형태로 가기 쉽지 않다. 물론 가격을 높이거나 원두를 판매하면 되겠지만...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블루보틀의 시그니처는 뉴올리언스 보다 싱글 오리진이 어울리지 않나 싶다.

강하게 로스팅해서 블렌딩 한 기계식 추출 커피를 상대하는데, 싱글 오리진이라는 단어는 꽤 유니크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네가 경험하는 것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려줄게, 그러니 좀 느긋하게 기다려봐"라고 말하는 뉘앙스라고 해야 할까?


블루보틀이 파는 것과, 스타벅스가 파는 것

블루보틀에는 와이파이와 전기 콘센트가 없다. "와이파이와 전기 콘센트가 커피에 대한 집중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블루보틀 대표의 말은 인상 깊은 부분이 있다.

와이파이, 전기콘센트는 없다. 대신 여백은 많다.

커피빈이 스타벅스에 밀리면서, 매장에 와이파이와 전기 콘센트를 늘려가는 모습과 비교된다.

스타벅스가, 커피와 함께 스타벅스에서 보내는 공간과 시간을 팔고자 한다면, 블루보틀은 커피와 함께 커피 자체의 의미와 본질을 팔고자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괜찮은 전략 같다. 그리고 둘 다 소비자에게 나름의 가치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것이 '옳다', '뛰어나다'의 접근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주말에 딸 구몬 시키고, 책 읽으러 가기에, 스타벅스만큼 괜찮은 곳도 드물다. 스벅엔 딸이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도 있고, 준수한 맛의 아메리카노도 있다. 더불어 와이파이와 전기 콘센트도 있다.

행패부리기 10분 전

만약 딸이 집중력을 잃고 행패를 부릴 것 같으면, 아이패드를 던져 주면 된다는 뜻도 된다.

블루보틀에서 누구도 그런 경험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블루보틀이 주고자 하는 경험은, 커피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블루보틀에 와이파이와 전기 콘센트가 없는 건 나름 합리적 선택처럼 생각된다.


굳이 차별화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에 집중하는 것.

블루보틀은 과연 스타벅스와 경쟁하고 있을까? 블루보틀이 스타벅스와 경쟁하는 방식은 간단해 보인다.

굳이 차별화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에 집중하는 것.

태생적으로 블루보틀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에서 가치가 생긴 것 같다. 사실, 블루보틀과 스타벅스는 엄밀히 말해 경쟁 관계가 아닌 것 같다. 둘 다 각기 다른 가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도 워낙 잘 나가다 보니, 일종의 피로감 같은 게 느껴지지만, 여전히 강력하고, 좋은 가치를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고객들은 둘 다에게 지갑을 열 개연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굳이 이기려 하지 말고 다른 가치를 어필하는 것, 나음보다 다름이 낫다는 걸, 블루보틀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블루보틀과 스타벅스는 경쟁관계보다 보완적 관계가 아닐까 싶다.

블루보틀 사이트에서 추천받은 원두, 결국 Three Africas로 구매

덧붙여, 블루보틀 오픈 때,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던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기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선이 오히려 우려스럽다. 궁금하거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때, 무리해서라도 참여하고 지갑을 연다는 건 굉장히 건강하고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한국 사회에 오히려 기회와 가능성이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나온 하루키 책, 블루보틀의 터키쉬 블루가 핫하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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